3년 전 이맘때 나는 도쿄의 다이칸야마의 츠타야에 있었다.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서점이라는 컨셉에 반한 나는 언젠가 하코다테 츠타야도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렇게 다짐한 지 3년 만에 나는 기어코 하코다테 츠타야를 방문할 수 있었다. 사실 이번 여행은 삿포로 여행이 메인이었으나 사랑하는 사람의 배려로 하코다테의 아름다움과 애정 하는 츠타야의 매력을 흠뻑 느끼고 올 수 있었다.
하코다테에 대해서 잠시 말하자면 일본에서도 손꼽히는 미항 도시로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하코다테의 야경은 세계 3대 야경으로 치켜세워지는 곳이다. 비교적 개항이 빨랐던 이곳은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서양식 건축물이 많은데 동시에 일본의 빈티지한 근대가 어우러지며 은은한 멋스러움을 풍긴다. 아름다움과 동시에 약간의 쓸쓸함도 느껴지는데 빠른 노령화로 인해 도시는 생기발랄함을 잃고 점잖게 나이 들어가고 있었다.
하코다테는 신치토세공항에서 JR을 타면 3시간 30분이 걸린다. 일본의 다양한 편의점 간식을 즐기며 여행기분을 내기에는 기차여행이 좋고 야경과 항구만 얼른 보고 다른 곳을 가야 하는 일정이라면 신치토세공항에서 국내선을 이용하는 게 좋다. 하코다테행 국내선은 외국인 할인 요금으로 이용할 수 있고 소요시간도 1시간밖에 걸리지 않아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도착 첫날 하루 온종일 하코다테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즐기고 다음날 하코다테 츠타야를 가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하코다테역에서 츠타야까지 버스로 35분 도보로 15분 정도 걸리는데 넓은 매장을 여유 있게 둘러보려면 적어도 반나절은 잡고 와야 하는 곳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와 하코다테 츠타야 모두 3000평이 넘는 대형 기획 서점으로 지역의 랜드마크 역할을 하며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들고 있다. 규모 때문인지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에서는 동떨어져있는 경우가 많아 차가 없는 여행자들은 어느 정도 발품을 팔아야 한다.
하코다테 츠타야는 다이칸야마 츠타야의 성공 이후 대형매장을 통한 지역 랜드마크 전략을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첫 서점이다. 츠타야는 하코다테의 시민들이 사랑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을 만들었고 그 시민들을 고용해 지역의 실업률에 기여했다. 또한 현지법인으로 분리하여 하코다테 시에 세금을 내며 완벽하게 지역경제와 하나가 된다. 무네아키 사장의 인터뷰에 따르면 일본 전국에 이와 같은 대형 거점 매장을 100개 이상 확장할 계획이라고 한다. 한국에서 가장 멋진 도서관을 기획하는 것이 꿈인 나에게 츠타야는 그야말로 멋진 신세계로 다가온다.
드디어 도착한 츠타야 특유의 시그니처 폰트 간판이 우뚝하니 우리를 맞아주고 있었다. 다이칸야마도 그렇고 하코다테도 그렇고 어렵게 찾아가서 그런지 파란 하늘 안에 낮게 갇혀있는 츠타야를 마주하니 애틋함마저 느껴졌다.
정문에 들어서면 중앙로는 쭉 뻗어 나가며 책으로 가득한 진열대가 펼쳐지고 우측에는 스타벅스 좌측에는 식료품 스토어가 자리 잡고 있다. 낯선 여행지에서 만난 익숙한 스타벅스는 여행자들에게 푸근한 안정감을 준다. 스타벅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스타벅스 특유의 매장 분위기와 커피맛을 통해 현실과의 작은 단절을 경험할 수 있다. 이들에게 스타벅스는 하나의 세계다. 그리고 츠타야는 스타벅스를 품은 더 큰 세계다. 츠타야 또한 스타벅스의 브랜드에 힘입어 고난스러운 삶과의 분리 그리고 즐거운 장소로서 자리매김한다.
더 나은 삶을 제안하는 츠타야 그리고 매거진
1층의 스타벅스를 지나 반대편 통로 끝에 도달하면 커다란 매거진 코너를 만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매거진이 소비될 수 있을까 쓸데없는 걱정이 될정도로 다양한 종류의 매거진들이 진열되어있었다. 다이칸야마는 매거진 보다 일반 단행본 도서를 연계한 진열이 많았다면 하코다테는 책 보다 매거진과 상품의 연계가 더 촘촘하게 기획되어있었다. 또한 매거진의 카테고리에 따라 작은 상점들이 숍인숍으로 입점되어있는데 패션 매거진 진열대는 옷 매장을 둘러싸고 있고 미용 매거진 코너에는 화장품 숍이 자리 잡고 있다. 이들은 칸막이로 공간이 분리되어있지 않고 매거진과 상품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한 몸처럼 느껴진다. 이들 상품의 공통적인 성격이 있는데 패션이라고 해서 과도하게 멋있는 고급 브랜드가 아니라 언제나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가족의 일상복이나 아동복이 주를 이루었고 화장품을 비롯한 그 외 상품들도 가족이 함께 쓰기 부담 없는 상품 위주로 판매되고 있다. 멋쟁이들이 오는 다이칸야마와 가족 단위로 오는 하코다테의 상품 구성은 확실히 차별화되어있었다.
일본의 매거진들도 한국과 유사하게 부록의 상품들이 다양하게 제공되고 있었는데 고무밴딩으로 상품과 매거진을 한데 묶어 제공하는 게 일반적인 경우로 보였다. 패션 매거진을 지나 중앙 통로로 길을 걷다 보면 자동차 매거진 구역이 나오는데 볼보와 협업한 콜라보레이션 전시공간이 넓게 펼쳐진다. 가족 혹은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아웃도어 콘셉트의 자동차로 자연에서 가족과 행복한 일상을 즐기는 모습이 연상되는 공간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을 볼보에 태우고 하코다테의 파란 하늘을 기분 좋게 달리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이런 분위기라면 가족을 이룬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다. 좋은 공간은 생각을 바꾸는 힘이 있다.
책이나 매거진이 잘 팔리지 않고 전체 산업 규모가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네모 반듯하게 눕혀있는 책이나 매거진에게는 애정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프라인에서 책들은 너무도 순종적인 모습으로 누군가 집어 들기를 기다리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너무나 폭력적으로 지금 봐야 하는 책이라며 싸구려 팝업창을 불쑥불쑥 내밀어 고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매거진이나 책이 잘 표현될 수 있는 공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안의 텍스트를 끄집어내어 매장에 현신화 시킨다. 매거진 안의 잘 편집된 이미지를 뽑아내 매장 안에 구현할 수 있는 매장이 있다면 우리는 충분히 그들을 위해 지갑을 열 것이다.
그곳에는 가족이 있다.
츠타야는 하나의 매거진이다. 다이칸야마의 츠타야는 프리미엄 에이지 세대를 위한 멋진 개인의 삶을 제안하는 매거진이다. 값비싼 만년필과 레코드판을 판매하고 젓가락 하나도 미적으로 뛰어난 상품만을 진열한다. 하지만 하코다테는 행복한 가족의 삶의 제안하는 매거진으로 개인보다는 가족을 위한 컨셉과 상품으로 가득하다. 하코다테 자체가 지역적으로 전통성과 가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강한편인데 츠타야는 그점을 착안해 하코다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서점을 만든 것이다.
다이칸야마 츠타야가 살짝 어둡고 고급스러운 공간을 추구한 느낌이라면 하코다테 츠타야는 보다 밝고 따듯한 느낌의 공간으로 이루어졌다. 거대한 통유리를 통해 서점 곳곳에 햇살이 떨어져 포근함이 느껴지고 밖의 날씨와 시간을 체크할 수 있어 답답함을 해소한다. 각 층의 층고가 높고 위층에서도 아래층의 중앙 광장과 아이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를 훤히 내려다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있다. 각 서가와 상점들의 간격이 여유로워 아이의 손을 잡고 여유롭게 쇼핑을 할 수 있다.
1층의 메인 코너에는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놀이터가 마련되어있다. 놀이터를 중심으로 유아 매거진 > 장난감 > 놀이터 > 어린이 생활용품 > 반찬용 식품 코너가 물 흐르듯 이어져있고 그 매장들을 어린이 도서들이 둘러쌓고 있는 모습이다. 아이들은 친구들과 뛰어놀고 아버지는 아이의 장난감을 고르며 어머니는 그날 저녁을 위한 반찬거리를 산다. 2층에는 레스토랑과 음반 그리고 DVD 가 주로 전시되어있는데 1층에서의 놀이와 쇼핑이 끝나면 2층에서 식사를 하고 부모는 교대로 자신이 원하는 음악과 영화를 고르며 그들의 취미생활을 즐긴다.
패션 매거진 코너에는 패션피플을 위한 유행 상품보다 아이들을 위한 외출복과 가족들이 편하게 입는 일상복이 판매되고 있고 자동차 매거진 코너에는 소형차량이나 스포츠카가 아닌 가족과의 행복한 아웃도어 일상을 꿈꿀 수 있는 SUV가 전시되어있다. 개인을 위한 값비싼 상품보다 아이와 가족을 위한 안전하고 믿을만한 상품들이 주로 제안되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하나의 커다란 라이프 스타일 제안 속에 촘촘히 아이를 위한 부모를 위한 아빠를 위한 엄마를 위한 제안이 설계되어있다. 하코다테 츠타야는 확실히 가족과 함께 하는 삶을 파고들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츠타야의 유려한 흐름이 빛을 발하는 이유는 어디 하나 격벽으로 막힌 곳이 없고 하나의 라이프스타일 제안 속에 다양한 브랜드들이 녹아들었다는 것이다. 국내의 경우 복합 쇼핑공간의 실내 놀이터는 대부분 동물원처럼 격리된 형태를 띤다. 그런 곳에 부모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격리시키듯 맡기고 쇼핑을 다녀오고 영화를 보고 온다. 멀티플렉스와 상점들이 즐비한 고층 상가 건물은 다양한 브랜드가 각자 도생하기 때문에 어우러지는 아름다움도 없고 무언가를 사야 한다는 흥미도 일지 않는다. 오로지 상품 구매를 목적으로 방문할 수는 있어도 좋은 경험을 위해서라면 가족과의 방문이 꺼려지기도 한다. 효율이 아니라 사람을 생각한 좋은 기획 그리고 그 좋은 기획이 실제 비즈니스에서도 성공하는 츠타야의 모습이 국내에서도 움트기를 기대해본다.
아름다운 서가는 책을 집어 들게 만든다.
더 좋은 책이 더 많이 발견되도록 하는 진열은 무엇일까?
보통의 서점들은 책을 눕혀 표지가 훤히 보이는 매대를 선호한다. 누군가 찾아봐서 보는 책이기보다는 한껏 치장한 표지가 발견되어 판매되기를 기다리는 모양새다. 구간이 되었거나 카테고리가 협소한 책들은 모두 벽면 깊숙한 서가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기 마련이다.
반면에 츠타야는 매대가 난무하는 서점보다 책을 찾는 즐거움을 주는 도서관의 느낌을 더 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책을 눕히는 매대보다 세로로 책을 꽂는 책장이 주를 이루는데 소외되는 책들 없이 모두가 분류표에 따라 자신의 자리를 단단히 지키고 있다. 책은 주로 표지를 통해 마케팅을 하는데 세로형 서재는 책등만(제목이 쓰여있는 옆면) 보이기 때문에 책을 알리는 데는 분명 한계가 있다. 책의 표지가 보이지 않아 책의 발견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다양한 방법으로 보완한 흔적이 보인다. 우선 사람 눈높이 부근에 있는 책장의 책들은 모두 표지를 노출하며 앞면을 향해있다. 이들은 주요 신간이거나 해당 카테고리의 베스트셀러 혹은 유명 작가의 책들로 구성되어있다. 세로로 높은 서가는 V자 형태로 아래서 위로 넓어지는 형태라 비좁은 공간의 긴장감이 해소되는 효과를 준다. 위에서 아래로 비추는 책장의 은은한 조명은 꽂혀있는 책들의 책등을 비추며 책들의 제목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오게 한다. 비록 표지가 노출되지 않고 책등으로 꽂혀있는 책이라도 소외시키지 않겠다는 느낌이 든다.
또 다른 가족을 만나는 곳 츠타야
하코다테 츠타야에는 곳곳에서 다양한 커뮤니티가 이루어지고 있다. 츠타야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강연과 프로그램만 연간 1,000건에 달할 정도로 지역 시민들의 참여가 활발한 곳이다. 책을 읽는 모임부터 벚꽃사진을 찍는 작가와의 대담 그리고 카드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곳곳에 모여 그들만의 놀이를 즐기고 있다. 다이칸야마의 츠타야는 나와 같은 외국인 관광객부터 일본 각지의 외부인들이 방문하여 북적북적한 관광지 느낌이었다면 하코다테 츠타야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대부분이었다. 낯선 외국인이나 관광객들이 불쑥 끼어들지 않아 그들만의 유대관계가 더 끈끈하게 이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서울은 트레바리나 크리에이터 클럽이 젊은이들을 한데 묶어 새로운 가족을 안겨주었다. 또래의 친구들과 같은 세대관을 공유하며 서로의 생일을 챙겨준다. 대도시에서는 이들이 비즈니스로서 수요와 공급이 맞는 편이지만 지방 소도시는 그렇지 않다. 비교적 젊은 인구가 많지 않고 또 독신보다는 가족과 함께 지내는 구성원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거대한 츠타야의 우산 아래 작은 취향 집단들이 숨 쉬게 해주는 역할이 적절하다고 본다. 멋스러운 도서관에 깔끔한 시설 다양한 편의 시설이 맞이하는 이곳에 넉넉한 공간까지 지역의 다양한 문화 커뮤니티가 살아 숨쉬기 적합한 곳이다. 지역 거점 대형 도서관 기획자가 꼭 생겼으면 한다. 나중에 내가 하면 더 좋고...
효율은 행복과 정반대에 있다는 말
종전 이후 사람들이 편리성을 추구하면서 다방면에서 효율을 높이는 것에 필사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야 효율이 반드시 행복을 불러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즉, 효율을 추구한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라는 것을요. 바로 지금이 사람의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돌이켜봐야 할 때입니다. 사람의 행복은 필시 효율의 정반대 방향에 있을 겁니다. (츠타야 그 수수께끼 본문 中)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공장은 대량생산을 시작했고 회사는 모두가 똑같은 상품을 쓰는 것이 옳다고 광고한다. 효율을 추구하다 보니 맛도 가격도 손쉬운 프랜차이즈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깊은 맛을 지닌 점포들은 사라지고 있다. 상점들은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딱딱한 의자와 자동 주문기를 들여놓고 기업들은 고객 한 명당 생애 가치를 측정하여 뽑아낼 수 있는 최대 매출이 얼마인지만 집중한다. 고객의 행복이 최고라고 말하던 초기 기업들은 매출이 생기자 수익을 높이기 위한 효율을 제외한 모든 효율은 제거하기 시작했다.
츠타야가 만약 효율을 생각했다면 이렇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간 적자가 나는 지역 거점 서점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고작 하늘 때문에 주차타워를 포기하고 노면 주차장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이동하는 길을 굳이 식물이 가득한 가든 스트리트로 꾸미지 않았을 것이다.
공간당 매출을 포기하고 가족이 함께 거닐 수 있는 넉넉한 공간을 만들지 않았을 것이다.
기업의 목표를 고객당 유료 결제 비용을 높이는 데만 두어선 안된다. 기존 고객들에게 더 많은 매출을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새로운 고객들을 맞이하여 사업을 확장하기는 어려워진다. 그래서 츠타야는 고객 매출의 최대화가 아닌 고객 가치의 최대화라는 말을 쓴다. 이 말은 고객 행복을 위한 끊임없는 변화를 뜻하기도 하다. 츠타야의 모든 기획은 휴먼스케일에 따른 집요한 집착으로 이어진다. 지역, 하늘, 식물, 가족 모두 돈이나 효율과는 상관없는 말들이지만 우리의 행복에는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다. 행복이 곧 효율의 척도가 되는 시기가 오고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기준을 위해 다음 스테이지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하코다테 츠타야 홈페이지 메인 텍스트를 보면 이렇게 적혀있다. (https://www.hakodate-t.com/about/)
本とおいしいコーヒーがあって、家族や友達とおしゃべりしたり、子どもたちもワイワイできる場所
책과 맛있는 커피가 있는, 가족 또는 친구와 이야기하거나, 아이들도 와글와글할 수 있는 곳
다이칸야마 츠타야 방문기 : https://brunch.co.kr/@soulstory/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