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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ulsum Mar 22. 2024

스리랑카 여행 시작

극P의 꼼꼼한 여행 계획

스리랑카에 간다고 했을 때 엄마가 물었다.

거기 뭐가 있는데?

뭐든 있지, 사람 사는 덴데.


원래 엄마와 함께 동남아 휴양지를 다녀올 생각이었으므로 엄마에게 가장 먼저 홀로 여행하게 되었음을 알렸다. 매년 11월은 효행주간으로 밀렸던 효도를 임팩트있게 선사해 1년 내내 울궈먹는 것이 관행(응, 내 관행)인데, 작년 11월의 엄마는 코로나19 여파로 건강을 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효도는 비교적 항공권이 저렴한 2~3월로 미뤄졌고, 엄마는 마음이 바빴다. 열흘 정도 시간을 내라는 말에 실은 기다리는 소식이 있노라 답했다. 엄마가 일하는 카페는 1년 단위로 아르바이트생을 기용하는데, 아직 합격 전화를 못 받은 모양이다. 그래,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1월말 즈음이었다.


겨울만 되면 극도로 게을러지는 나는, 겨울 색이 한풀 꺾이는 시점을 못 견디고 항상 항공권을 결제했었다. 지난 겨울이 고요할수록, 집에 있는 시간이 길수록, 고독이 외로움을 넘어 우울로 치닫을 무렵의 시간을 못 견딘다. 지난 겨울에는 10월부터 얘기가 오가던 일을 상대가 내 사정을 봐 12월부터 시작하는 걸로 미뤄줬고, 12월 마감을 하고 새해가 되기까지 2주 가까운 시간을 그 일에 할애했다. 그러나 처음 약속과 달리 자료를 계속 보내왔고, 2월부터 시작하자, 3월부터 시작하자, 하면서 일의 범위도 기간도 계속 바뀌기에 용감하게 발을 뺐다. 쓸 수 있는 시간을 최대로 계산해 보니 2주, 엄마와 함께 가야 하는 효도 여행지 동남아를 제외하고, 아직 날이 차니 가고 싶었던 리장도 접고 내전 중인 미얀마를 제외하고 나니 스리랑카가 남았다.


극P의 대단히 꼼꼼한 여행 계획
텅 빈 스리랑카 항공 여객기와 단출한 기내식
버스 안에 있던 선풍기 / 공항 내 환전소 & 통신사 환율은 다 같았고 dialog가 가장 잘 터진다기에 줄 서서 기다림


스리랑카 행을 망설이게 하는 유일한 건 항공권 가격이었는데, 하필 스리랑카항공에서 00주년 기념 세일을 시작했고, 이것은 나를 꼬시는 신호라 여기고 급하게 결제했다. (경유보다 직항이 저렴할 때는 국가 차원에서 플러팅하는 거로 여겨야 한다) 스리랑카 여행은 그렇게 결정됐다. 마감하는 사이사이 스리랑카 가서 하고 싶은 일의 리스트를 작성했고,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를 훔쳐봤다.


스리랑카 행 항공권을 끊었다고 하자 사람들이 물었다. 거기 안 위험해? 위험한 짓 안 하면 돼.

일상에 변수가 많아진다는 것과 매 순간 무언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에서 신경 쓸 일이 많아 피곤하긴 하지만, 사람 사는 데는 다 같다는 생각이다. 나는 술을 즐기지 않고 (취하도록 마시는 게 싫다) 밤 늦게까지 돌아다니지 않으며 (차라리 새벽 산책을 즐기는 편) 유흥에 관심이 없기 때문에 (이제 에너지가 달린다) 여행하며 위험을 마주한 경험이 거의 없다. 갑자기 호기심이 동하여 사람을 쫓아가지만 않으면 되는데 (이게 내 가장 큰 문제), 의심이 많아서 주변 사람을 물귀신처럼 끌어들여 함께 따라가며 위험 요소를 줄이면 된다. 치안이 안 좋은 나라일수록 사람에 의지하게 되는데, 그런 여행은 풍경보다 사람이 많이 남기니 그것 또한 나쁘지 않다. 나는 의심이 많다. 본능처럼 위험을 감지하고 나를 보호할 방법을 찾아낸다. 매우 부지런하게.


4시에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 집에서 3시 30분에 나왔고, 못 다 쓴 원고를 쓰면서 활주로 너머로 어둠이 가시고 안개가 거둬지는 걸 지켜봤다. 7시에 출발해 12시면 도착한다던 비행기는 8시가 훌쩍 지나 인천을 출발해 2시가 넘어서야 콜롬보에 도착했다. 스리랑카 항공의 기내식은 참 조촐했고, 남은 원고를 쓰다 밤을 새다시피 했던 나는 비행 내내 잠을 잤다.

스리랑카는 어딜 가도 환율이 같고 유심과 데이터 역시 크게 차이가 없다고 하기에, 공항에서 환전을 하고 유심칩을 갈아 끼운 다음 공항 바깥쪽으로 나가 툭툭을 타고 아누라다푸라로 행 버스가 서는 정류장으로 향했다. 코앞에서 버스를 놓쳐 한 시간 정도 기다렸는데, 3시간이면 도착할 거라던 버스는 5시간이 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그래도 여행자 티 팍팍 내는 내게 사람들이 자리를 양보해줘 창밖을 구경하며 길고 지루한 시간을 견뎠다.

그리고 아누라다푸라에 거의 다다랐을 때 급하게 숙박 앱에서 숙소를 예약했다. 바깥은 어둡고 공기는 습했다. 살짝 무서워 구글맵을 보며 잰 걸음으로 걸었다. 아마도 배낭을 매고 하는 마지막 여행이겠구나, 생각하면서.


자꾸 콜롬보로 가자 꼬시던 툭툭 아저씨 1 / 아누라다푸라 행 버스가 서는 정류장 / 콜롬보로 가자 꼬시던 툭툭 아저씨 2
물을 한 병 사고 잔돈은 사탕으로 / 아누라다푸라 행 럭셔리 버스 / 해변을 따라 한참 달리던 버스가 잠시 정차했을 때의 풍경



스리랑카를 여행하며 알아낸 몇 가지


1.     버스와 기차는 제 속도를 내지 못한다

스리랑카는 세금을 거의 걷지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 선거에 나오는 후보들은 앞다퉈 세금을 낮춘다는 공략을 내새웠고, 결국 세금이 걷히지 않아 사회간접자본에 투자를 못해 도로와 철도 정비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다. 기차와 철로는 영국 식민시절의 것을 그대로 사용하는 듯 했고, 도로 사정도 좋지 못했다. 60km를 이동한다고 하면, 우리나라는 고속도로 기준으로 30~40분 걸리지만 스리랑카에서는 서너 시간이 걸렸다. 버스는 대형 시내버스와 사설 에어컨 버스(미니밴)가 있는데, 에어컨 버스의 에어컨 상태는 시원찮은 경우가 많다. (그냥 창문 열고 가는 게 나음) 시내버스는 공영이 있고 사설이 있는데, 당연히 공영버스가 들르는 정류장이 많아 훨씬 늦다. (휴대폰을 사느라 예산의 절반 이상을 써서 주야장천 버스만 타고 다녔는데 끝까지 공영 버스와 사설 버스 구분 못함)


2.     치안은 좋고 성범죄율은 낮고

(인도와 가까우니) 인도와 비슷할 거라 여기고 매우 긴장해 있었는데, 일단 성추행이 없었고 (물론 술 취한 아저씨들 피해 다녀야 하는 건 만국 공통이고, 마약하는 사람들을 피해 다녀야 하는 것도 만국 공통임. 밤늦게 다녀 위험하지 않은 나라는 없음) 사기치는 사람이 드물었다. 인도 사기꾼들은 100루피를 10달러씩 불러 화를 돋웠는데, 80루피를 100루피 정도 부른다. 이정도는 외국인 프리미엄이라 치고 참아야함. 물론 사기꾼도 있으니 대략의 가격을 알아두는 게 좋음. (가격을 지불하기 전에 주변 사람에게 물어 보면 대부분 정가를 알려줌) 흥정하는데 에너지를 적게 써서 덜 피곤함.


3.     인도와 달리 시스템이 있음

인도와 가장 큰 차이는 사회를 지탱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점이다. (연착이 되기는 하나) 정시에 기차와 버스가 출발한다. 기차역에는 연착 시간을 고지함. (인도에서 하루 넘게 언제 올 지 모르는 기차를 기다려본 경험이 있다면, 이게 얼마나 반듯한 시스템인지 이해할 것임) 중부 산간지대는 연착이 잦지만, 남부 해안 지대는 거의 정시에 출발, 도착했음.


한 마디로 여행하기 편하다는 얘기임. 인도 하위 버전을 예상했으나 태국 정도의 난이도였음. 나중에 꼭 다시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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