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두고 온 것

죄책감이라는 이름의 짐

by 웰다잉말그릇


어떤 밤은 고요하지 않다. 그날 밤도 그랬다. 온 가족이 어렵게 날을 맞춰 미용실에 앉아 있었고, 커트와 펌의 냄새가 공기를 채우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울음 섞인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왔다. 4년을 함께했던 후배였다.

"언니, 남편이 이상해요. 혼잣말을 하고, 실실거리며 웃기까지 해요."

나는 그녀의 연애 1년과 신혼 1년을 함께 알았다. 갈등이 시작되어 별거에 이르고, 이혼을 요구하는 남편과 시댁의 이야기까지 오롯이 들어왔다. 언제까지 이야기를 들어줘야 하나 싶어, 가끔은 답답함과 짜증이 밀려오기도 했다. 늘 이야기만 듣다가 한숨만 지었지, 불러 앉혀놓고 따뜻한 식사 한 끼 두 사람에게 먹이지 못했다는 사실이 지금도 가슴에 남아 있다.

"내가 갈까? 오늘 우리 집에 올래?"

남편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달려갈까 하다가, 피로감이 몰려왔다. 우리의 은사이신 선생님께서 주례를 섰으니 만나보라고 권했다. 그렇게 마지막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새벽, 사랑했던 나의 동생은 남편으로부터 잔혹하게 살해당했다. 다음 날 아침 울면서 전화했던 H는, 3년 동안 성인지감성은 찾아볼 수 없는 오만하고 남성중심적인 표현을 성추행 수준으로 나에게 쏟아냈던 사람이었다. 시신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고 참혹하게 죽임당했다며 오열하는 그 목소리에, 내 분노와 당혹스러움은 누구를 향한 것인지도 구분할 수 없었다.
한 생명을 돌보고 지키지 못했던 죄책감이 나를 뒤흔들었다. 수개월 동안 계속된 오한과 머리털이 쭈뼛 서는 가슴 철렁임이 이어졌다. 내가 그날 밤 그녀를 불렀더라면.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더라면. 그 '만약'들이 나를 묶었다.

그 해 여름, 오롯이 6개월을 살아냈을 때 딸아이가 학폭위 피해자가 되었다. 최근 한 해를 꼬박 넘어서까지 계속된 상대 엄마의 보상 청구로 남편은 지리한 싸움을 했다. 남편의 직장 동료였으며 구청 신우회의 독실한 크리스천이었던 그 엄마는 가정폭력 피해를 입고 혼자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 아이가 동네 깡패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나에게 깊은 일침을 가했다. 나와 내 가족, 내가 맞닿은 공동체만을 돌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그 무렵, 폴 투르니에의 《노년의 의미》를 읽었다. 그는 말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성장의 과정이며,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통해 새로운 존재가 된다"고. 나는 깨달았다. 죄책감은 나를 묶는 족쇄가 아니라, 내가 더 깊이 사랑할 수 있는 존재로 성장하라는 신호였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죄책감'을 두고 오기로 했다. 나를 묶고, 내가 지키지 못했다고 나를 정죄하는 목소리를 끊어내기로 했다. 그리고 내가 할 수 있고, 지금 당장 즉시 함께할 수 있는 한 사람과 내가 해야 할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누군가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슬픔, 내 딸을 돌보고 지키고 편이 되어주지 못했던 아픔은 나로 하여금 내 곁의 한 사람에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효율을 추구했던 인생에 가지치기를 하게 했다.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분하게 했다.

이제 나는 안다. 완벽하게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모든 것을 구할 수 없다는 것을. 하지만 지금 내 앞에 있는 한 사람을 향한 온전한 집중의 사랑이,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두고 온 죄책감 너머에서 발견한, 평생 성장하는 한 존재로서의 좌충우돌 스토리다.
두고 온 것은 짐이 아니라, 날개였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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