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는 애도가 필요하다

30대 엄마였던 나를 애도하며

by 웰다잉말그릇

사춘기 아들의 사춘기 4년이 끝나갈 즈음, 사춘기 딸의 본격적인 불꽃이 시작되었다. 타이밍이라는 게 참 묘하다. 하나가 지나가면 하나가 온다. 엉뚱하게 화를 내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고, 온갖 감정을 한 바퀴 다 쏟아낸 뒤에 딸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 마음에 전에 없던 생각이랑 느낌들이 막 들어.”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잘 크고 있구나. 그래, 그게 정상이지.


하지만 ‘정상’이라는 말이 늘 견딜 만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들과 딸의 사춘기는 결이 달랐다. 아들은 감정 표현의 폭이 비교적 단순했고, 엄마와의 얽힘도 어느 정도 선이 있었다. 거리를 조금 두면, 어느새 배고프다며 “뭐 맛있는 거 없어?” 하고 슬그머니 문을 두드리며 나왔다. 반면 딸의 감정은 선이 복잡했다. 높낮이가 많고, 방향이 많고, 무엇보다 엄마를 향해 있다. 딸은 깊은 곳의 마음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정확하게 긁어낸다. 기가 막히다. 건방짐과 안하무인의 스펙트럼도 따라올 자가 없다.


만약 공황장애와 ‘멈춤’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나는 아이를 전부 받아주거나, 아니면 완전히 회피했을 것이다. 늘 그 두 극단 중 하나였을 테니까. 하지만 나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그리고 나 자신과 건강한 경계를 연습하면서, 딸과의 간극을 조절하는 중이다. 밀착도 아니고 단절도 아닌 어딘가. 쉽지 않지만, 그 자리에 머물러 보려고 한다.


가족 안에는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관계에는 언제나 거리가 필요하다. 사랑이 깊을수록, 오히려 더 그렇다. 이 거리를 가정 안에서 연습하지 못하면, 사회에서의 관계는 피상적일 수밖에 없다. 무조건 참거나, 무조건 밀어내거나. 그 중간을 모르면 늘 관계는 버겁다.


나는 20대보다 30대가 더 전투적이었다. 버텨야 했고, 증명해야 했고, 밀리지 않기 위해 애썼다. 40대가 되니 힘은 많이 빠졌다. 대신 분명해졌다. 불편한 것, 무례한 것, 불쾌한 거리에 대해서는 예전보다 훨씬 명료하게 선을 긋는다. 설명도 덜 하고, 죄책감도 덜 느낀다. 그런데 자녀는 여전히 어렵다. 남편도 쉽지 않다.


20년을 같이 살아왔지만, 남편은 여전히 나를 잘 모른다. 젠틀함과 배려를 온몸에 장착한 그는, 나의 자기표현과 거리 요구를 낯설어한다. 그는 가까워지려 하고, 나는 숨을 쉬기 위해 떨어지려 한다. 서로 다른 언어로 사랑을 말하고 있는 셈이다.


첫째의 사춘기가 끝나가고, 둘째의 사춘기 정점을 지나면서야 이것이 내 삶으로 체득되고 있다. 관계에는 거리 조절이 필요하다는 것, 사랑한다고 해서 다 내어줄 필요는 없다는 것, 나를 지키는 것이 곧 관계를 망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러고 보니 영유아 시기의 부모들은 오죽했을까 싶다.


나는 영유아를 키우던 나의 30대를 떠올린다. 늘 부족했고, 늘 미안했고, 늘 화가 나 있었던 그 시절의 나를 위로한다. 그리고 애도한다. 너무 많은 걸 혼자 감당하려 했던 시간들을.


그래서 올해 상반기 강의에서는 조금 더 따뜻하고, 조금 더 어른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싶다. 잘하라는 말보다, 정상이라는 말보다, 관계에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부모도 자라는 존재라는 말을. 지금도 여전히, 아주 천천히 자라고 있다는 말을. 관계는 실패를 받아들임을 통한 체득화의 연습이 필요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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