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피하지 않기로 한 용기

느린 사랑이 가르쳐준 것들 — 회피 대신 마주함으로써 시작된 변화

by 웰다잉말그릇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내가 평생 회피해온 것들이 사실은 나 자신이었다는 것을.
오랜 세월 나는 눈을 감았다. 불의 앞에서, 부당함 앞에서, 존중 없는 권위 앞에서. 여성을 하대함으로써 자신의 우월감을 확인하려는 불안한 남성들, 아랫사람을 도구로 여기는 이들, 자식을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아 가스라이팅해온 부모들. 상담실에서 만난 사람들은 모두 타인의 기쁨이 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었고, 그들의 얼굴에서 나는 나를 보았다. 때로는 그것이 나의 부모 앞에 선 나 자신의 모습 같아서, 나는 회피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 폴 투르니에는 말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나 역시 그랬다. 내 안의 상처와, 불의에 맞서지 못한 비겁함과, 타인의 시선에 갇힌 나약함으로부터 도망쳤다. 회피는 생존의 방식이었고, 동시에 나를 지우는 일이기도 했다.
남편과의 19년은 한 편의 긴 각성의 시간이었다. 그는 최선을 다해 살았지만, 외동아들로 자란 그에게 가정 내 갈등을 읽어내고 해결하는 언어는 없었다. 그의 어머니처럼 여자가 모든 것을 혼자 끌어안고 살아가는 것을 당연히 여겼고, 나는 육아와 가정과 사업과 사역을 병행하며 홀로 버텼다. 공황장애가 왔다. 2년 반의 회복 기간이 지난 후에야, 나는 비로소 말할 수 있었다.
"뭐가 그리 답답하냐고? 19년 동안 단 한 번도 당신은 내 입장에서 나를 이해하지 않았어!"
1분도 채 되지 않는 그 말을 19년 동안 하지 못했다. 빅터 프랭클이 말한 것처럼, "고통 그 자체는 의미가 없다. 하지만 우리가 그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의미가 생긴다." 나는 고통을 회피하며 살았지만, 그 고통이 결국 나를 직면하게 했다.

그 말을 기점으로 우리 집의 풍경이 바뀌었다. 어느 날 남편은 정신을 차렸다. 아내 혼자 너무 고생했다며, 이제 자신이 집안일을 전담하겠다고 했다. 매우 느리고 답답하지만, 그는 빨래와 설거지, 청소를 맡았다. 퇴근 후 녹초가 되어 새벽 1, 2시까지 집안일을 하며 늦게 잠드는 남편을 보며 생각했다. '나도 18년 동안 혼자 저렇게 살았구나.'
금요일 저녁, 남편은 모임이 있어 집에 없었다. 아이들 둘과 셋이 식탁에 앞았다. 아들의 요청으로 계란말이를 만들려 했다. 그러나 참사였다. 계란은 눌어붙고 모양은 무너졌다. 찜으로 만들어 모양이 실패한 것을 만회하려 했지만 더 엉망의 요리가 식탁까지 왔다.
아이들이 말했다. "아빠는 집안일도 많이 하지만, 요리는 진짜 맛있게 해." 아들이 덧붙였다. "아빠 손은 너무 느려서 답답할 때도 있지만, 음식은 항상 요리 방법을 제대로 지키면서 열심히 하셔."
그 순간, 나는 멈칫했다. 19년 동안 나는 남편의 느림과 둔감함을 문제 삼았다. 그런데 나 자신은 어땠던가. 요리 방법을 지나치게 창의적으로, 대충 하기만 했던 나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사춘기를 갓 지난 아들과 사춘기를 시작하는 딸이, 그들의 아버지를 통해 내게 가르쳐주고 있었다.
속도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정성과 방법을 지키는 일의 가치를. 그리고 내가 당연하게 여겼던 나의 방식 또한 돌아봐야 한다는 것을.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진정한 만남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가능하다." 결혼 19년 차,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아이들의 입을 통해, 남편의 느린 손길을 통해, 실패한 계란말이를 통해. 평생 성장하는 한 존재로서, 나는 오늘도 내 자신을 마주한다.

얼마 전 목회자 세미나에서 한 60대 목사님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전도사님, 요즘 한국교회 젊은 부부들 문제의 원인이 여성의 패미니즘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목사님, 박사까지 공부한 내 딸이 결혼하며 시댁이 일을 그만두라고 했다면, 친정아버지로서 어떤 마음이 드시나요? 저는 최근 10년간 영아부에서 가정사역을 하며 느꼈습니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자매들과 젊은 여성을 내 딸, 나의 누나와 여동생을 향한 시선과 같은 사랑과 존중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존중의 부재와 그 무례함은 패미니즘과 결을 달리합니다."
그것은 오랜 기간 여성과 모성을 향했던 나의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프랭클은 "삶의 의미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발견하는 것"이라 했다. 올해 3월, 46세에 나는 다시 학생이 되기로 했다. 어제 모여대 면접에서 교수님들은 말씀하셨다. "140년 전 한국에서 여성을 존중하며 여성의 가치를 재발견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대한민국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겁니다. 학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통해 회복되고 현장 경험이 학문으로 승화되기를 바랍니다."
작년 글쓰기 모임에서 읽었던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자유를 넘어서 남성에게도 진정한 자유를 선물한다." 나는 그 문장을 오래 들여다보았다.

나는 이제 회피하지 않기로 했다. 겁 많은 한 남자아이가 한국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 강한 척하고 거들먹거리며 오만한 남성으로 성장할수도 있는 이 문화를, 이 현실을 직면하고 저변에서부터 인식과 편견을 변화시키는 "문화 조성을 돕는 플래너"가 되기로 자칭 결심했다.
내가 사랑하는 나의 아들이 자유로운 남성이 되기를 바란다. 내가 회피하지 않기로 용기를 낼 수 있도록 내 인생에 진실한 나의 남편과 신실한 형제 동역자들을 만나게 하신 하늘의 뜻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남성은, 여성을 존중하고 귀하게 여길 때 자신을 또한 존중할 수 있다. 우리 주변의 수많은 관계 안에서 오랜 시간 관찰한 순환의 비밀이다.
목숨보다 사랑하는 나의 딸이 자유로운 인생을 살기 바란다. 여성이기에 주어진 권리와 강점들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원한다. 자신이 소망하는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학업과 직업의 기회를 가질 수 있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내 딸이, 자녀의 생명을 살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온기와 생명력을 불어넣는 여성이라는 한 존재가 되어 세상 가운데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기를 원한다.
내 딸 또한, 내가 평생 그러했듯 존중과 사려깊음을 장착하고 자신의 곁 한 자매의 고통을 보고 함께 울고 슬퍼했던 진짜 괜찮은 남성들을 편견없이 격려하며 세상을 건강하게 바라보고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인생을 누리길 바란다.

상담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의 아픔은 대부분 부모에게서 기인했다. 그들은 자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여기고 가스라이팅하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 이것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다. 무지로 인한 죄다. 부모 자신도 한때 누군가의 자녀였고, 그들 역시 상처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를 대물림하는 순간, 무지는 죄가 된다.
오랜 기간 교회 사역 현장에서 나는 목격했다. 영적 갈증과 우울, 불안, 낮은 자존감으로 내면의 치열한 전쟁 속에 살아가는 지체들. 그들의 아픔을 거슬러 올라가면 언제나 부모의 무지가 있었다. 사랑한다는 이름으로 행해진 통제와 억압, 무시와 폄하. 그것이 한 사람의 영혼을 얼마나 깊이 파괴하는지, 나는 상담실에서, 예배당에서, 사역 현장에서 반복해서 관찰해왔다.
그리고 내가 엄마가 되고, 내 아이들이 사춘기를 맞이하면서 깨달았다. 나 역시 그런 부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내 안의 상처와 분노, 불안이 아이들을 향할 수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두려움이었고, 동시에 각성이었다.
나는 결심했다. 결코 그런 부모가 되지 않기 위해, 이 땅에서의 사명을 다하는 평생 동안 애쓰고, 의미를 찾고, 성숙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그것이 내가 회피하지 않기로 한 용기의 시작이었다. 나 자신을 마주하는 일, 내 안의 어둠을 직면하는 일,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상처가 아닌 축복을 물려주는 일. 그것이 내가 평생 걸어갈 길이다.
투르니에는 이렇게 말했다. "인격의 성장은 평생에 걸친 여정이다." 더 이상 회피하지 않기로 낸 용기를 통해, 올해는 학업과 집필로, 학문으로 나의 고민과 질문들을 아름답게 승화하고 싶다. 용기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려움의 부재가 아니라, 두려움을 알면서도 그 너머를 응시하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한 걸음 내딛는다. 회피하지 않기로 한 용기를 안고.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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