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 그리고 조성진
단연코 올해 쇼팽 콩쿨에서 가장 큰 우승후보 중 한명이 조성진이었다.
한국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최근 가장 주목받는 젊은 피아니스트임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승까진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좀 더 우세했는데 가장 큰 이유가 '쇼팽'이라는 레파토리 때문이었을테다.
이전에 그가 연주했던 쇼팽을 보면 분명 잘 치는데 뭔가 감정 과잉이 보이고, 때론 완급조절이 잘 되지 않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사실 작년 조성진의 루빈스타인 콩쿨 참가 소식을 듣고 굉장히 의아했었다. 올해 쇼콩을 위해 프랑스에서 연마했던 그가 루빈스타인콩쿨이라니 말이다.
물론 이는 쇼콩 우승으로 가기 위한 디딤발을 놓기 위함이었을 것이고, 그는 놀랄 만한 연주로 청중을 휘잡았다. 특히 파이널A에서 브람스 피아노 퀄텟은 그가 얼마나 발전했는지 보여주는 대단한 연주였다.
그러나 결과는 의외로 3위, 협주곡에서 인상적인 모습이 부족했다 하더라도 타 참가자와 비교했을때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결과적으로 올해 쇼콩을 앞두고 루콩에서 3위의 성적을 받아든 그에겐 부담이 없짐 않았을 것이라.
3위 성적표를 받아든 조성진, 쇼팽 콩쿨에 대한 부담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가 지난 5월 예선 현장에 나타났다. 연습곡과 판타지 등을 선보인 그는 한결 완숙하고 여유있는 쇼팽을 보여주었다.
물결처럼 흘러가던 판타지, 연습곡이서 슬러와 스타카토의 기막히고 고급스런 표현은 유튜브라는 약점에도 사람들에게 전달되는데 아낌없었다.
(필자도 이 때 처음으로 어쩌면 우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10월, 드디어 5년만에 다시 바르샤바가 클래식 팬들의 중심에 섰다. 그리고 열린 본선 뚜겅, 예선과 같은 프로그램의 1R에서부터 그는 막힘 없이 연주를 해갔다.
에튀드의 가벼운 실수도 있었지만 탄탄한 기본기를 바르샤바 청중에게 보여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발라드 4번을 엄청나게 연주한다고 알려진 조성진은 그 곡 대신 2R에서 2번을 선택했다. 역시 흠잡기 힘든 고른 연주를 보여준다.
그리고 폴로네이즈에서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준 그는 바르샤바 청중으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3R에서 보여준 전주곡은 원래 호연이 엄청 어려운 곡인데 곡들간 유연하게 연결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었지만 큰 틀에선 잘한 연주였다. 마지막으로 연주한 스케르초에서 사실상 다른 모든 연주자들을 압도했다.
또한, 성(Last name)이 Cho라 가장 먼저 연주하게 되는데 아마 이 배치도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리고 파이널, 협주곡 1번은 사실 미스터치 없이 연주하는 것이 쉽지 않은 곡 아닌가, 그렇게 고른 연주는 참 오랜만에 보았던 것 같다. 콩쿨 파이널이라는 압박스런 무대를 생각하면 더욱 대단하다 하겠다. 서정에 짖눌리는 모습 없이 담백하면서 조절해나간 적절한 감정선도 기대 이상이었다.
자신의 진가를 확실히 보여준 조성진, 바르샤바 청중으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는다
조성진의 우승, 가장 큰 원동력은 기본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 그는 루바토는 최대한 자제하며 연주를 해 나갔다. 가장 기복 없이, 가장 매끄러운 연주였다.
혹자들은 블레하츠 더 나아가선 지메르만을 들먹이며 그들 수준은 아니지 않냐고 한다. 물론 조성진이 그들 보단 부족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는 충분히 우승할 만한 실력을 보여주었고, 이는 쥬리들이 더욱 냉정히 평가했을 것이다.
(후에 공개된 채점표를 보니 한 심사위원에게 1점을 받고도 우승한 그였다)
마지막날 밤을 꼴딱 새며 발표를 꽤나 기다렸다. 분명 연주만을 봤을 땐 우승이 유력한 조성진이었지만 또 세상이 늘 그렇게 납득할만하게 돌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긴장감이 들었다.
캐쥬얼한 가디건 셔츠를 입고 등장한 그도 이번만큼은 얼굴에서 긴장감을 훔칠 수 없었다. 마지막이다고 생각한 콩쿨, 정말 다 걸은 상황이었을 것이기에 당연한 결과였다.
2위 호명에서 본인 이름이 등장하지 않자 그의 얼굴은 상기되보였다. 정말 우승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그를 휩싸고 있었을테다.
그리고 마침내 1위 호명, 다른 것도 아니고 콩쿨 끝판왕 쇼팽 콩쿨 1위. 아마 기쁨보다 안도감이 더 강하게 들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콩쿨 결과를 보면 납득이 될만한 결과였다. 5년전 전혀 예상 못했던 율리아나의 우승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또한 이번 콩쿨에서 정말 혜성처럼 등장한 괴물은 없었고, 전반적으론 참가자들의 수준이 많이 떨어졌다.
하마평에 오르던 조지리, 무섭게 치고 올라가던 문지영 등을 비롯해 참가를 포기한 연주자들도 그의 우승 분위기를 만들어내는데 한 몫했을테다.
4년 주기로 열리는 차이콥스키 콩쿨과 같은 해에 열린 점도 좋은 결과를 부르는 징조였을지 모른다.
또한 올해 처음으로 도이치그라모폰과 계약한 쇼팽콩쿨협회가 1위 없는 2위와 같은 결과를 내놓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고, 다행히 그런일은 없었다.
쇼팽협회와 도이치그라모폰의 계약으로 조성진은 단번에 데뷔 앨범을 내놓게 된다
클래식 시장이 자본의 사양길로 들어섰음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테다. 애석하지만 메이저 콩쿨에서 우승하고도 잊혀진 연주자들이 많다.
(물론 쇼팽 콩쿨은 다른 메이저 콩쿨과는 다르긴 하다. 모든 콩쿨의 최고봉이기에)
이런 냉혹한 현실도 잘 파악해서 그가 정말 롱런해서 거장의 반열에 오를 수 있기를 바라본다.
원래 잘 치던 베토벤 등 다른 레파토리로도 충분히 대중을 설득할 수 있을테니 차근차근 확장되는 모습도 기대한다.
연주도 정말 중요하지만 그를 매니징할 수 있는 좋은 기획사 등을 통해 사람들의 가슴속에 깊이 기억될 수 있는 연주자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본다.
냉혹한 클래식 시장의 현실, 그 어려움을 딛고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 잡는 좋은 연주자가 되길 바라본다
메인 사진 출처 - instagram.com/zuzannagasiorowska
#조성진 #쇼팽콩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