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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위승범 Nov 10. 2015

클래식을 팝 위에 놓다

에릭 카멘, 그도 클덕이었을거야


'클래식 처음 들으려고 하는데 곡 추천해 주실 수 있으세요?'


클밍 아웃(클래식 듣는 덕후임을 인정)을 하고 살아간 이후로 간간히 지인들에게 듣는 질문이다.


처음엔


'그냥 아무거나 들으세요,

KBS 클래식 FM 틀어놓고 있어보세요'


라고 하는둥 마는둥 한 답변을 하고 지나가기가 일쑤였다.


그러다 한번은 초등학생들과 클래식에 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다. 알쏭달쏭한 눈으로 '선생님' 하는 모습들.

'그냥 아무거나 들어 인마' 라고 넘어가기엔 그들의 눈빛이 너무 초롱초롱했다(물론 동태눈깔도 있었지만)


너희
All by Myself 라는
노래 알어?


대충 에릭 카멘(Eric Carmen)이 라흐마니노프(Rachmaninoff) 곡을 샘플링했다는 것을 알고 있던 나이기에, 원곡과 팝을 들려주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해나갔다.


'왜 있잖아 오빠 만세라고 부르는 노래 말이야, 또 요즘 광고음악으로도 쓰이잖아'


'아 들어봤어요 쌤!'


All by myself 곡을 차용한 베니건스 광고


생각보다 반응이 괜찮으니, 클덕 본능이 꿈틀대며 톤이 높아지고 말이 빨라지며 아이들과 신나게 시간을 보냈다.


그 날 귀가 후 본격적으로 에릭 카멘의 곡들에 대해 탐색해보았고,

이후론 클래식 곡 추천을 바라는 사람들에게 에릭 카멘의 팝과 원곡을 함께 추천해주기도 한다.


에릭 카멘(1949-), 미국 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All by myself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에릭 카멘의 가장 큰 히트곡이라고 부를 수 있는 All by myself(1975), 이 곡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의 주제선율을 차용해서 작곡한 곡이다.


앨범 작업을 하던 중이었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인 라흐마니노프를 듣고 있었죠, 그 때 듣던 선율을 차용해All by myself의 한 구절(verse)을 만들었습니다.
- 에릭 카멘, Pogoda와 인터뷰 중


에릭 카멘은 싱글로 먼저 발표한 이 곡을 통해 솔로로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다.

(U.S. 차트 2위, U.K. 차트 12위, 밀리언 셀링 앨범)


Eric Carmen, All by myself(1975)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던
에릭 카멘



사실 에릭 카멘은 어린 나이부터 클리브랜드 음악원에서 교육을 받았다. 클리브랜드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단원이었던 고모 Muriel Carmen에게 레슨을 받기 시작했던 것이 그의 나이 다섯이었다.


전 정말 바이올린이 싫었어요. 그저 저는 피아노만 치고 싶었지요. 그래서 6살에 그만둬버렸습니다.
그리고, 11살이 되던 때 전 부모님을 설득해 다시 클리브랜드 음악원에서 수학했고, 7년 과정인 클래식 음악 교육을 4년만에 마쳤습니다.
- 에릭 카멘, Pogoda와 인터뷰 중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All by myself 다음으로 발표한 싱글이었던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1976, 사실 75년에 발매한 첫 앨범에도 수록되어있다)

은 그에게 또다른 영광을 안겨주었다.


빌보드 핫 100차트에서 11위, 탑 40에 10주간이나 위치했던 인기 곡이 된 것이다.


Eric Carmen,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1976)


그는 이번 곡도 클래식 곡의 주제를 그대로 가져왔는데 이번엔 더 노골적으로 가져온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 3악장의 주제를 그대로 가져온 그는 한 인터뷰에서 작곡의도에 대해서 언급했다.


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을 들으면서 앉아있는데 너무 아름다운 멜로디가 들리더군요.
제가 이 곡을 차용한 이유가 두 가지 있어요.
먼저 이 곡에 너무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곡을 들을 때마다 전율과 함께 닭살이  돋아요.
둘째로, 이런 황홀한 클래식 음악의 멜로디를 대중에게 전달하지 않는다면 그건 범죄라고 생각했습니다.
- 에릭 카멘, Pogoda와 인터뷰 중




러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에릭 카멘



에릭 카멘은 1949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브랜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러시안-유대인 이민자였다.


러시아 사람들에게 가장 대표적인 러시아 작곡가를 물으면 대답은 차이콥스키가 아니라 라흐마니노프가 더 많이 나온다고 한다.


클래식 음악의 교육을 받았기도 했지만 러시아인의 피가 흐르는 것도 그의 작품 활동에 영향을 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의 대표적 작곡가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



My Girl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All by myself와 같이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샘플링한 곡이 한 곡 더 있다. 바로 첫 앨범 'Eric Carmen'의 여섯번 째 곡으로 수록된 My Girl이다.  


이 곡에선 All by myself에서 사용했던 2악장을 사용하진 않고, 1악장의 코다 전의 호른 솔로를 차용해서 작곡했다.


위의 언급한 곡들과 같이 그는 특유의 작곡으로 이질감없이 잘 녹여냈다.


Eric Carmen, My Girl(1975)



Love is all that matters &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그의 클래식 차용은 이후에도 계속 되었다. 1977년 발표한 앨범 'boats against the current album' 의 수록곡인 Love is all that matters가 대표적이다.


차이콥스키의 운명 교향곡이라도 불리는 교향곡 5번의 2악장 선율을 차용해 작곡한 이 곡은 달달한 멜로디와 가사로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는다.


원래부터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2악장은아름다운 혼 솔로로 널리 알려진 작품인데도 그는 딱 적절하게 원곡의 느낌을 살려주면서 곡을 만들어 나갔다.


Love is all that matters를 작곡할 때 TV를 보고있었어요.
Leonard Bernstein(지휘자, NYphil을 오래 이끌었다)이 아이들을 위해 클래식 음악에 대해 설명해주던 프로였죠.
바흐 음악에 대한 이야기 였는데 멜로디가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을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그 것을 보고 저도 이 곡의 코러스 첫 주제를 만들고 반복되게끔 작곡 했습니다.
- 에릭 카멘, Pogoda와 인터뷰 중




Last Night &
쇼팽 에튀드 Op. 10 No. 3



쇼팽 곡을 이용해 만든 곡도 있다. 첫 앨범 'Eric Carmen' 에 수록된 곡인데, 쇼팽 에튀드 중 가장 널리 알려진 10-3 을 활용했다.


다만 이전에는 그대로 멜로디를 썼다면 이 곡에선 자세히 듣지 않으면 알아채기 힘들만큼 변형을 주어 차용한 점이 다르다.


게다가 보통 샘플링 해 작곡했던 곡의 장르가 발라드에 가까웠다면 이 곡은 라큰롤에 가깝다는 점도 다른 점이 될 수 있겠다.



쇼팽의 멜로디 중 가장 아름다운 부분을 가져다 써봤어요. 차용했다는 것을 거의 알아챌 수 없게 작곡했구요.
쇼팽이 들었다면 무덤에서 라큰롤을 외쳤을 겁니다
- 에릭 카멘, Pogoda와 인터뷰 중



Chopin, Etude Op.10 No.3



다음 세대에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소개하고 싶었어요



에릭 카멘은 엄밀히 클래식 음악 아티스트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 교육을 받았다곤 하나, 그보다 더 많은 영향을 줬던 그룹은 비틀즈와 같은 그룹이었다.


그는 솔로로 활동하기 전 'Go all the way'로 밀리언 셀러를 기록했던 Raspberries의 창단 멤버 이기도 하였다.


싱어송라이터와 더불어 기타리스트로도 널리 알려진 그가 왜 이러한 클래식 음악을 이용한 작곡을 하였을까? 단순히 멜로디가 좋아서 차용한 것일까?


이 질문에 답이 될 수 있는 인터뷰를 그가 한 적이 있다. Never gonna fall in love again 의 작곡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클래식 음악의 일부분을 가져와 팝송에 접목시키는 것이 저만의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세대에게 클래식 음악의 아름다운 선율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소개해주지 않으면 그냥 모르고 지나칠 멜로디를 말이죠.
그것이 이 곡의 숨겨진 작곡 배경이기도 합니다.
- 에릭 카멘, Pogoda와 인터뷰 중



Eric Carmen, 2014




달달한 클덕임에 분명한
에릭 카멘과 함께



Lost in a dance
Waiting for the chance
All I really needed was to love you
Night after night
Searchin' for the light
You saved me
You gave me something
I could feel

-Love is all that matters, 가사 중




-편집자 주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할 때 에릭 카멘도 하나의 다리(bridge)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팝 자체만으로도 곡이 아주 좋기에 시간이 되실 때 찾아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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