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에 하루씩 살아가기

분열적인 상황, 흔들리는 자아를 위로하며...

by 흰 점

"수치심은 우리를 너무나 꼭꼭 숨어 있게 만들기 때문에, 우리는 방어기제에 대부분의 에너지를 사용한다. 감정의 억압으로 인해 우리의 마음은 좁아지고 우리의 인식은 매우 제한적이 되었다." (존 브레드쇼, 가족, 342쪽.)


진짜 자기를 발견하고, 진정으로 자유롭게 되기 위한 과정으로써 우리는 내면의 수치심, 상처, 고독과 직면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치심을 숨기기 위해 마련해 놓은 온갖 장치들, 부인, 최면, 환상을 넘어 통제와 비난과 완벽주의, 그리고 강박과 중독 등의 방어기제를 돌파해야 한다고. 그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지만 쉽지 않다. "한 번에 하루씩 사는 것" 존 브레드쇼의 처방이자 제안이다. 즉 '나'는 무언가를 통제하거나 완벽하게 이루어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기꺼이 인정하여 나의 의지를 상대화시키고, 나의 고집스러움과 대결하는 훈련을 하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가고 경험이 쌓이면서 고집스러움도 함께 커가는 것인지, '고집스럽다'는 그 싫은 말을 인정하고 덜 고집스럽게 스스로를 바꾸어가는 과정이 못내 고통스럽다. 내가 지향하는 '나의 됨됨이'가 어느 순간 실제의 나와 상당한 괴리감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어떤 상황들에 자주 맞닥뜨리면서 수치심을 내면화하는 과정을 실제로 겪게 되었던 것 같다.


새로이 시작한 일들 속에서 낯선 나를 발견하며, 스스로 자주 충돌했던 경험. 뭐 대단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소한 것에 고집스러운 나를 마주하는 것이 괴로웠다. 나의 기대만큼 나 자신이 너그럽지도 않았고, 자유롭지도, 지혜롭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것을 직면하고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괴로운 일이었다.


때마침 주어진 코로나 핑계, 회피의 기회가 찾아왔다. 평소 잘 보지 않았던 미디어와 가까워졌다. 눈으로 보고 생각은 덜하니 좋았나 보다. 닥치는 대로 읽고 보았다. 주로 생각할 필요가 없는 이야기들. 조금이라도 고민거리를 던져주거나 깊은 사고를 요하는 것들은 뇌가 거부했다. 아예 사고가 멈춰버리는 신기한 경험. 존 브래드쇼가 말한 부인, 회피, 중독의 과정을 고스란히 답습했나 보다.


원가족의 '주문'과 세속적 사회의 '최면'에 맞서 나의 지향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의미 있는 삶이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멋있다' 한다. 어떤 사회적 환경에서 살든지 대체로 '선'을 지향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현실과 타협하기보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삶에 대한 동경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비록 '무모하다', '현실감 없다', 혹은 '배부르다'며 비아냥거릴지라도 조금은 '다른 삶'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한다. 그리고 그런 기대가 픽션으로, 다양한 매체와 이야깃거리로 재생산되기도 한다. 나 자신은 전혀 그렇지 않지만, 다르게 사는 사람들의 삶을 보며 대리 만족하고, 내 안의 불편함을 해소하고 싶어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수치심의 원인이 된, 되지도 않을 완벽주의와 능력에 대한 착각, 최면. 그리도 보고 싶지 않았고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들. 부인하고 회피하니 마음은 더 좁아지고 인식도 제한되는 경험을 하였다. '한 번에 하루씩!' 나는 결코 완벽할 수 없고 무언가를 통제할 수 있는 능력도 제한되어 있으며, 단지 하루를, 현재를 자유롭게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벅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나의 삶은 여전히 과정 중에 있고, 길 위에 존재한다. 자꾸 더 나은 내일이나 찬란한 계획 따위에 에너지를 쏟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 번에 하루씩만 제대로 살다 보면, 그렇게 나의 고집스러움과 대결하다 보면 언젠가 정말로 자유로운 나를 맞이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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