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에 글쓰기부터 블로그에 글쓰기까지...
8월 초 브런치에서 "쓰다" 관련한 이벤트를 한다는 공지를 봤다. "쓰다"에 대해 무엇을 쓰는 게 좋을까? 생각해보다가 "그동안의 내 글쓰기"에 대해서 한번 써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마음만 먹고 말았다. 막상 생각만 할뿐 어떻게 써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어느새 8월 말이 됐다.
이제 딱 하루 남았다. 마감시간에 쫓기게 되니 부담이 든다. 의무감에 글을 쓰는 건 부담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그런 부담감이 있어 이번 기회에 정리하게 됐다. 이벤트 덕분에 '나의 글쓰기'에 대해 돌아보게 됐다.
28년 동안의 글쓰기
학교 숙제가 아닌, 정말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1989년부터 2004년까지 16년 동안 노트 35권에 일기를 썼다.
1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까지. 인생에서 가장 많은 변화가 있는 시기를 일기장과 함께 했다.
2003년 이후 여러 번 이사를 다니게 되서, 일기장을 들고 다니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보관하기도 애매해서 사진만 찍고 버렸다.
2003년에 블로그를 오픈하면서부터 온라인에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2003년부터 2006년까지 운영했던 블로그는 사이트가 폐쇄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쉽다.
2006년부터 2017년 현재까지 약 10년간 티스토리 블로그에 삶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2016년 이곳 브런치에도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라인에만 글을 쓰다 보니 뭔가 아쉽다. 그래서 가끔 공책에 글을 남긴다.
공개할만한 글은 온라인상에 두고, 공개할 수 없는 글은 오프라인 - 즉 종이에 -에 남기고 있다.
글 쓰면서 얻은 것과 잃은 것
그냥 내가 좋아서 쓰기 시작한 거라, 딱히 "내 글쓰기의 역사"라고 거창하게 말하기도 민망하긴 하다. 그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글쓰면서 얻은 건 바로 "'글쓰기'라는 친구"다. 하루를 마감하면서 답답하거나 고민이 있을 때, 너무 좋아 흥에 넘칠 때, 화가 많이 나서 참을 수 없을 때 등등 여러 감정이 교차할 때 글을 쓰면 뭔가 정리되는 느낌이 든다.
살아 있는 생물은 아니지만 누군가 묵묵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든든함이 있다.
언제부턴가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노트를 가방에 넣어가지고 다닌다. 자투리 시간에 낙서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끄적 낙서는 그야말로 낙서여서 쓰고 버리지만, 그래도 좋다. 지하철 타고 다닐 때, 카페에서 음료수 마실 때, 누군가를 기다릴 때 참 좋다.
머리 속 생각을 글로 옮기는 과정이 덜 부담스러워진 것도 글 쓰면서 얻은 점이다.
'잃은 것'도 있을까? 생각해봤는데,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글쓰면서 잃는건 없을듯 하다.
나중에 시간 지나서 내가 쓴 글을 읽으며 당시를 떠올리거나, 그때의 느낌을 복기해보기도 한다. 이런 때가 있었지. 잘못했었구나. 아니면 잘 넘겼구나. 힘들었겠구나. 그래도 잘 살았네. 하며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한다.
나이 먹는 것과 별개로 아주 느리게 조금씩 자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글쓰기'라는 친구 덕분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