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청자몽 Sep 02. 2024

학력고사 세대, 점수 맞춰 국문과에 갔습니다.

청자몽 연대기(5)

집에 와보니 책상 위에 원서가 놓여있었다. 엄마가 써오신 원서라고 했다. 재수냐 국문과냐를 놓고 저울질하다가... 그냥 시험 보러 갔다.

다섯 번째 이야기 :



아주 오래된 이야기
: 1991년 겨울에 본, 학력고사 전기대에 떨어졌다.


그러고 보니 32년 전 이야기다.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라니... 쓰면서 나도 놀란다. ⓒ청자몽


국문과 나왔다고 했는데, 사실 '국어'과목을 싫어했다. 책을 좋아했을 리도 없다. 그렇다고 쓰는 걸 엄청 잘하거나 재능이 있지도 않았다. 원래 이과에 가고 싶었는데, 이과는 전체 13반 중에 딱 2~3반 있었다. 자동으로 문과에 갔다. 특별히 뭐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고등학교 3년을 그냥 흘러 다녔다. 국어과목 싫어하는데, 국어 I과 국어 II를 배웠다. 고전문학, 현대문학 시간도 있었던 거 같다.

나는 중고등학교 때 한 번도 교복을 입지 않은 세대다. 그런 시절이 정말 있었어요?라고 반문하지도 모르지만.. 나보다 한 3~4살 많은 언니들은 전통적인 교복-까만 치마에 하얀 윗도리 교복-을 입었고, 내 밑으로 2살 밑에 후배들부터 교복을 다시 입기 시작했다. 중간에 딱 낀 세대다. 영화 <써니>나 드라마로 치면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주인공들과 비슷한 나이다.

학력고사 세대다. 2년 후배들부터 수능을 봤다. 나는 대학을 먼저 지원하고 시험을 나중에 보는 세대였다. 전기대와 후기대로 나눠 시험을 봤다. 12월 중순쯤 본 전기대 시험에 떨어졌다.

전기대는 '경제학과'를 지원했다. 모의고사 점수 맞춰서 학교를 정하다 보니, 그냥 좋아 보여서 지원했다가 낙방했다. 시험은 그럭저럭 봤는데, 하필 그해 전체적으로 시험이 쉬웠단다. 그래서 떨어졌다. 시험 보는 날, 겨울치고 비가 왔고 굉장히 습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 3교시에 후회를 많이 했다. 그래서 '전기대학 시험 마지막 3교시'는 오랫동안 '단골 악몽'이었다. 마치 '군대 다시 가는 꿈'처럼요. 최선을 다하지 못한 자신에게 원망스러웠나 보다.

전기대 시험 끝나고, 언니가 시험장 앞에 마중을 나왔다. 시험 끝나고 집에 가서 답 맞추는데, 대충 점수를 알 수 있었다. 그냥저냥 본 거 같아. 하니까 언니가 그럼 너 큰일 난 거야! 했다. 그리고 정말로 떨어졌다. 시험은 내가 떨어졌는데, 소식 듣고 엄마가 우셨다. 너 어떻게 하냐고. 하도 슬프게 우셔서, 아직도 기억이 난다. 정작 나는 울지도 못했다.




그리고 후기대 지원
: '시험지 도난사고'로 시험이 연기 됐다.


재수해야 되나? 고민하다가 공부하고 집에 왔더니, 책상 위에 원서가 놓여있었다. 뭐지? 하고 열어보니 처음 보는 학교의 원서였다. 문제는 '국문과'였다. 국문과?!

엄마한테 여쭤보니, 국문과 좋다고 했다. 등수 안에 들면, 교직 이수할 수도 있다고 하셨다. 교직이수하면, 일반대학인데도 임용고시 시험 볼 자격이 주어진다고 하셨다. 옆집 사는 여고 국어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가 보다. 엄마는 여기저기에 많이 알아보신 것 같았다. 그런데 여기, 이 학교는 어딘대요? 했더니, 집에서 그렇게 멀지 않으니 붙으면 다니라고 하셨다.

"야, 너 글 잘 쓰잖아. 전에 쓰던 일기처럼 글 써봐."

그렇다. 내 글의 첫 번째 애독자는 바로 친정어머니였다. 엄마가 보시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쓰다가 발각돼서 엄마한테 엄청 혼났다. 그땐 속상해서 내가 울었다.

학교도 마음에 안 들고, 특히 학과가 마음에 안 들었다. 후기대 시험도 떨어지면, 어차피 재수해야 돼서 그냥 보기로 했습니다.

마침 '시험지 도난사건'이 일어났다.




( 이미지 출처 : 구글 검색 캡처 )


시험 날짜가 연기되는 바람에, 며칠 더 공부할 시간이 생겼다. 그래서 '후기대 입시반' 등록하고 빠싹 며칠 더 공부를 했다. 떨어져도 그만, 붙어도 그만. 약간 그런 마음으로 시험장에 갔다. 심지어는 3교시에 막 찍고 시간이 남아서, 책상 위 엎드려서 잤다. 그런데 덜덜 떨며 제발 붙어라 했던 전기대 시험은 똑 떨어지고, 대충 찍고 자버린 시험은 붙었다.

1992년 초에는 대입시 합격 여부를 전화 ARS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학교 구경도 할 겸 눈으로 확인하러 갔다. 커다란 종이에서 수험번호와 이름을 확인했다. 합격한 건 좋은데, 아.. 문제다. 큰일이네. 고등학교 내내 싫었던 과목을 전공하라고? 어떻게 하지. 싫은 걸 어떻게 전공하냐. 한숨부터 나왔다. 인생이 참... 쉽지 않다. '국어를 싫어하는 자의 험란한 생존기'가 시작됐다.




에피소드


개발자가 되어, 면접 다닐 때 그놈의 '국문과'가 발목을 여러 번 잡았다. 아킬레스건처럼 늘 공격을 당했다. 내가 공부 좀 열심히 해서 다른 과를 나왔으면, 아니면 하다못해 좀 더 좋은 학교 나왔으면 더 유리하지 않았을까? 매번 그렇게 생각을 했다. 학교나 학과가 별로 맘에 들지 않은 데다가, 졸업할 즈음에 취업도 안 돼서 졸업식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국문과에 진 빚을 깨닫게 됐고, 뒤늦은 감사를 하게 됐다. 다닐 때 너무 원망하지 말걸 그랬다. 어쩌면 늘 나쁜 것만 보이고, 정말 고맙고 좋은 건 잘 안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원글 링크 :






저의 두 번째 이야기 :


이전 04화 국문과 나왔습니다, 선입견에 관하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