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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Aug 26. 2024

국문과 나왔습니다, 선입견에 관하여

청자몽 연대기(4)

마침 눈도 내린다. 옛날 얘기하기에도, 듣기에도 딱 좋은 그런 날. (그런 날에 썼던 글) 멈췄던 이야기를 하나씩 천천히 풀어갈까 한다.

네 번째 이야기 :




멈췄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하며...
잠시 연재를 멈췄던 변명부터 하자면


눈 덮인 의자가 포근해 보인다. 그냥 앉아버리긴 아까울 듯... ⓒ청자몽


1월 중순쯤, 뜬금없이  이야기를 했다. 바로 다음 편에 이야기를 쓸 것처럼 해놓고는 하지 못했다.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라고만 써놓고 말았다.

다음 편이 없었던 게 아니고, 너무 많았다. 어디서 어디까지 얘길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문제가 생겼다.

아니, 그렇게 치열하고 멋지게 잘 살아놓고, 지금 뭐 하니? 이게 뭐야? 싶은 현실자각 타임, 일명 '현타'가 온 것. 예전에 그 멋지다면 멋지고, 치열하다면 치열했던 생활과는 비교가 안 되는 자연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래서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다가 뜬금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계속 글을 쓰기도 하고, 못 쓰기도 하고. 하필이면 또 명절. 연휴가 있으면, 그나마도 쥐어짜면 생기는 자유시간이 반에 반토막 나버린다.

그런데..
어쨌든 연휴도 끝났다. 내일이 벌써 금요일이지만, 그래도 할 일은 하자. 싶었다. 서류 뗄 것도 있고, 볼일도 있는데 오늘은 접었다. 잘 써질지 모르지만, 다시 연재를 시작해야겠다. 밖에 눈이 내린다.

예전에 블로그 등에서 옛날이야기를 드문드문하기도 했는데, 그때와 지금은 다를 것 같다. 이곳은 이곳만의 장점이 있다. 바로 이어쓰기와 댓글들. 그리고 응원. 비록 내 이야기지만, 함께 쓰는 게 될 거라 믿는다. 믿으면서 내 이야기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본다.

이야기의 시작은 몇십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문과 나왔습니다./ 국문과 졸업했습니다.
선입견에 관하여...


국문과 졸업했는데, 프로그램을 공부해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이력서를 내면 당연히 면접 볼 때, '아주' 신기해하면서 제일 먼저 묻는 질문은 이거였다.


"(개발자 지원하는데) 국문과 나왔다고요?"

느낌은 대충 두 가지였다.


신기하다 : 어떻게? 프로그래머? 가 됐죠?

웃긴다 : 아니, 여기가 어디라고.. 감히! 국문과 주제에 원서를 넣어.



살면서 이제까지 면접은 한 70번쯤 봤다. 별일이 다 있었다. 신기해서 부른 경우도 있고, 웃겨서 얼마나 뻔뻔한 인간인지 보고 싶어서 부른 경우도 있었다.

신입시절에는 한숨부터 쉬고, 웃으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고부터는 굉장한 장점이 되었다. 치명적인 단점이 어느새 매력적인 장점이 되었다.

졸업하고 따로 프로그램 공부를 하다가 들어가서, 남들보다 1~2년 늦게 시작한셈이다. 게다가 하필 IMF때 신입시절이라.. 험난한 시절을 보냈다. 어쩌다가 프로그램을 공부하게 됐는지 또 '다음에' 천천히 나눠볼까 한다. 할 이야기가 많다.


외국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던 한 중년 남성이 내게 무슨 학과를 다니는지,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래서 나는 국어국문학과를 다니고 있고, 글을 쓰고 싶다고 했다. "요즘 국문과 남자는 인기 없지 않나, 책 좋아하는 여자들도 다 못생겼던데." 그 말은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10년도 넘게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 정지우, "만인에 대한 만인의 악역이 되어가는 사회" 중에서 발췌



작년 여름에 본 글인데, 이어쓰기를 할까 말까 하다가 링크만 갈무리하고 말았다. 그때 이어주고 싶었던 말은, 말씀하신 신사분께 "당신의 얼굴부터 보고 말하라"였다. 정지우 님은 위에 언급한 말이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속상하셨다고 했다. 내 생각엔 그렇게 말한 신사분이 정작 자기 얼굴이 별로니까 남의 얼굴 평하고, 괜히 애꿎은 청년한테 탓하는 것 같다. 읽다가 발끈했었다. 왜냐하면 나도 국문과 출신이니까!


국문과 나왔다고 하면, 생기는 선입견 중에 하나가 '글 잘 쓰시겠네요.' 다. 글을 잘 써서 간 건 절대 아니다. 국문과를 어떻게 가게 됐는지, 그것도 사연이 있다. 글쓰기를 배우려면 '문예창작과'를 가야 한다. 일명 '문창과'. 국어국문학과는 주로 '학문'쪽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그다음 선입견은 '책 많이 읽으셨겠네요./ 책 좋아하시겠네요.' 아니요. 책 별로 많이 안 읽었어요. 그리고 별로 좋아하지도 않고, 빨리 잘 읽지고 못해요.라고 매번 대답했다.

'국문과 나왔다면서 그것도 몰라?' 네. 맞아요. 몰라요. 국문과가 만물박사과도 아니고, 모르는 거 투성이다. 왜 국문과는 뭐든지 잘 알아야 할까?

'한자 잘 아시겠네요.'라는 말도 많이 들었다. 아니요. 잘 몰라요. 예전에는 옥편 찾아보세요.라고 답했다. 요샌, 구글 검색하면 다 나온다.

'아! 역시 국문과 나와서 말 잘하네.' 어쩌다가 맞는 말하면 그런다. 아니에요. 그건 그건 편견이다. 물론, 반대 경우에도 욕을 먹는다. 국문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에 대해 이야기해도 뭐가 많다. 꼭 다 그런 건 아닌데, 어디 출신, 뭘 공부했다 등으로 받는 선입견이 많다. 그래서 쉽게 무슨 과 나온 사람이라고 말을 꺼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졸업논문은 '원고지'에 썼다. 한글이랑 한자랑 같이 표기했다. 꾹꾹 눌러서, 넘겨가며 정성스럽게 썼다. 제목은 '1950년대 실존주의와 청년정신'. 내용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1990년대 초중반임에도 '현대문학'이라고 배운 게, 1950년대 전후 문학이었으니.. 역시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건, 쉽지 않다. 한참 포스트모더니즘이 뜨던 당시였다.

논문 내용이 기억나진 않지만, 전쟁 끝나고 암울한 젊은 시절을 보냈던 분들에 관해 연구해서 썼다. 어느 시절이든 젊은이들이 고민이 많다. 몇 살까지를 젊은이라고 봐야 할지 모르겠지만, 죽을 때까지 젊은이로 살아가야 할까 싶다. 나이 먹어도 고민이 계속 쌓여있다. 오늘도 오늘치 고민을 하다가, 자리를 정리한다.




원글 링크 :






저의 두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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