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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Aug 19. 2024

저는 '개발자', 늦게 시작했던 여자 프로그래머였어요.

청자몽 연대기(3)

은퇴 아닌 은퇴를 해버린, 나는 전직 '개발자'다. 남들보다 좀 늦게 시작한 비전공 여자 프로그래머였.

세 번째 이야기 :



저를 소개합니다.


국문과를 졸업했다. 프로그래머로 20년 정도 일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PC에서 돌아가는 애플리케이션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는 웹사이트를 만드는 웹프로그래머였다.

지금은 늦게 낳은 8살(만 6세) 딸아이를 키우는, 잔업주부다. 전업이라고 쓰려다가 '전업'은 좀 무거워 보여서.. 수많은 잔업을 하는지라, 잔업주부라고 고쳐 썼다. 집에서 자잘한 고치는 일도 내가 한다.

어쩌다가 프로그래머가 되었는지는, 차차 나눠볼까 한다. 국문과는 점수 맞춰서 갔는데, '국어'는 학교 다닐 때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었다. 그것도 같이 나눠볼까 한다.

프로그래머는 '나의 능력치를 훌쩍 뛰어넘는 과분한 직업'이었다. 퇴근하면서 절여진 배추처럼 하늘하늘 힘이 쭉 빠져서 컴퓨터 끄고 자리 정리했다. 끝!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마감했다. 다행이다 싶었지. 지겹고 힘들어서 도망치고 싶은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립다. 대부분이 그러하듯 지나고 보면 그리움이 남는 모양이다.

일을 놓았지만 관심 있는 분야는 여전히 재밌다. 관찰하는 건 그때 지금이나 여전하다. 좋아하는 건 숨길 수가 없는 거니까!




이 글을 쓰게 된 이유
제3의 성, 여자 프로그래머



어렸을 때부터 기계가 좋았다. 뭘 조립하고 만드는 걸 좋아했다. 언제부터였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건담, 뿌까, 스누피.. 등 모두 내 거! ⓒ청자몽


글쓰기 플랫폼에 회원 가입하고 글을 쌓아간 지 몇 개월이나 됐지만, 전에 무슨 일을 했었는지 말한 적이 없다. 기계를 좋아한다/ 조립하는 게 좋다/ 요리하고 집안일하는 건 정말 싫다/ 저질 체력이다. 등은 자주 이야기 했지만, 그건 말할 수가 없었다.

안 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일부러 이야기하기도 뭣했다. 예전에 그랬으면 뭐 하나.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데. 어차피 은퇴 아닌 은퇴를 해버린지.. 6년짼가? 그렇다. 2016년에 하던 일을 마지막으로 놓아버렸다. 그래도 20년이나 일했는데... 아쉬웠지만, 그때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때도 지금도 앞으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앞이 안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막연함.
이제 인생 2막을 써야 하나? 근데 뭘로 인생 2막을 시작할까? 를 놓고 고민 중이다. 2016년 당시에 그랬는데, 아직도 고민한다. 낡지 않고, 차근차근 나이를 먹어가기를 바란다. 매일 잘 살아보려고 한다.

지나간 이야기지만 한번 해볼까 한다.
전에 이웃님이 댓글에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대답하지 못했다. 전공이랑 하던 일이랑 궁금해하셨는데, 그땐 선뜻 답하기가 애매했다.

그러다가 작년 마지막날 <여자는 프로그래머가 될 수 없나요>라는 글을 봤다. 제목을 보자마자 흐억.. 소리가 났다. 피가 끓었다. 여자는? 왜? 프로게이머가 되면 안 되나? 아니, 요새도 저런 편견이 있나? 글을 읽어보니 21세기에도 쉽지 않구나 싶었다.

프로게이머 중에 여자분들이 많으면, 괜찮았을 텐데.. 척박한 환경인가 보다. 나도 일하면서 힘들었다. 프로그래머는 지금은 여자분들이 많이 하실 것 같다. 많아졌다고 해도, 당연히 남자분들이 훨씬 더 많을 테지만.

한창 일할 때는 이런 말도 했다. 나를 놀리면서 하는 말이었는데...

"세상에는 3종류의 사람이 있어.
남자/ 여자/ 여자 프로그래머.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뭐냐?"

뭐긴 뭐예요. 그냥 프로그래머죠. 가르긴 왜 갈라요. 하면서 맞받아쳤지만, 험난했다. 일할 때나 일 나눌 때도 불리했고, 여자라고 차별받거나 무시를 당할 때도 많았다. 자기네끼리만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열심히 하면 열심히 한다고 힘들게 하고, 못 쫓아가면 못한다고 막 힘들게 하고.

여자인 것도 불리한데, 졸업하고 공부해서 늦게 시작한 데다가 '비전공자'여서 당한 설움도 만만찮았다. 그래서 안 지려고 악착같이 일하고, 몸을 혹사했다. 악바리 근성이 더 커졌다. 세 보여야 안 죽어. 그러면서 전투형 인간으로 살았다.

가만히 보면, 여자라고 불리한 데다가, '비주류'인 것도 문제였다. 학교가 좋은 것도 아닌데, 거기다가 하필이면 국문과라니. 딱 쥐어뜯기기 좋은 조건이었다.

불리한 걸 만회하기 위해, 더더더..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았다. 스스로에게 잘했다/ 고생한다/ 힘내라를 해주지 못했다. 그냥 하루하루 살기도 버거웠다. 고생하는 나를 위로할 여유도 없이 살았던 것 같다.

오늘도 약점을 만회하며,
방어와 공격으로 어려움을 해결하고
잘 싸워가시는 모든 분들을 응원합니다.




원글 링크 :







저의 두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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