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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Oct 07. 2024

마흔에 리셋되었습니다.

청자몽 연대기(9)

주급이 끊어진 지 3개월쯤 됐을 때, 부사장님이 미안하다고 하셨다. 취업비자(H1)와 진행 중이던 영주권도 포기해야 했다. 이제 그만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그때 우리 부부는 마흔이었다.

아홉 번째 이야기 :



40살에 사과상자 8개 들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생선뼈선인장'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선인장에 싹이 났다. 그래서 새로 난 싹을 잘라 화분꽂이 해주었다. ⓒ청자몽


며칠 전에 소개한 수입 0원 웹툰작가님의 이야기에 더 울컥했던 이유는, 나와 상황이 비슷해서였다. 그분도 나처럼 30대에 외국에 갔다가, 마흔(2012년)에 돌아온 것 같았다. 그래서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땅속 깊은 곳에 묻어둔 11년 전 일이 생각나버렸다. 나도, 아니 우리도 진짜 힘들었는데.. 그분도 힘들었겠다. 공감이 됐다.

우리(남편과 나)는 웹툰작가님처럼 공부를 한 게 아니고, 취직해서 일을 했다. 그런데 미국에서 일했던 경력은, 한국에 돌아와서는 쓸모가 없었다. 취업비자받아서 미국에서 7년 반 일하다 왔어요. 가 얼핏 듣기에 굉장해 보이지만, 실제 일을 하려고 면접을 다니고 할 때에는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심지어는, 괜히 시간만 낭비했나? 나가지 말고 그냥 국내에서 계속 일할걸.. 내가 왜 그랬을까? 싶은 후회를 했다.

남자였으면 괜찮았을까? 아니면 결혼 안 한 미혼이었으면? 아니고 좀 젊었으면?이라는 생각까지도 했다. 다른 곳에 있다가 불쑥 날아온 '결혼한 여자'는 몇 살이든 어차피 불리할 판이었다. 게다가 난 비전공자였고. 부정적인 생각만 가득했다.

미국살이는 돈이 모이지 않았다. 세금이 어마어마했다. 빚을 지지 않고 사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했다. 30대였던 우리는 모으자 주의가 아니었고, 잘 모르겠다 쓰자주의였다. 그것도 문제라면 문제였다. 갖고 들어온 돈도 얼마 안 됐는데, 간신히 월세방 얻을 보증금을 내고 살림 몇 가지를 사고 나니 통장이 텅 비어버렸다.

남편은 그래도 귀국 한 달 만에 취직이 됐지만, 나는 계속 떨어졌다. 집 앞 호프집에서 진지하게 남편이 말했다. 연봉을 많이 낮춰서라도 취직을 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죽었다 하고 일단 2년은 다니라고. 그래야 다음번 이사할 때, 조금 더 나은 상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취직 못해서 미안했고, 허무했다.

난 대체 뭘 위해 그동안 이를 악물며 일하고 버티고 살아냈던 걸까? 뒤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자. 마흔이지만, 용기를 내자. 미국에서 들고 온 사과상자 8개에서 시작하지만, 그래도 우리 잘할 수 있을 거야. 남의 나라에서 7년 반 살면서 얻은 중요한 교훈이 있었다. 그래도 내 나라에서 사는 게 좋다는 것과 버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이었다. 거의 10년 만에 돌아오니, 말만 통하는 외국이나 다름없었지만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시민이다. 외국살이에선 어떤 신분이냐,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냐가 참 중요했다. 그것 때문에 파생되는 문제도 만만찮았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연봉부터 확 깎고 계속 도전했다. 귀국 후 6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드디어 취직이 됐다. 마흔의 10월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11년이 흘렀다.


같은 사람과 3번 결혼한 느낌이다.

첫 번째, 31살에 한 결혼식이다. 신혼이었지만, 가재도구를 다 새것으로 사지 않았다. 남편이 갖고 있던 자취 살림에다가, 친정엄마가 사주신 침대랑 모아주신 그릇이랑 주방용품, 친구들이 사준 밥솥 등이 있었다. 나머지 몇 가지만 새로 샀다. (떠날걸 알고 있었던 걸까?)


두 번째, 32살에 미국 가서 살림살이를 샀다. 그제야 신혼느낌이 났다. 미국 갈 때 결혼 때 산 물건들 다 정리하고 옷만 가지고 갔다. 40살에 돌아올 때, 크레이그리스트라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다 올려서 팔았다. 돈이 없어서, 옷과 몇 가지만 남기고 다 팔았다.


세 번째, 40살에 한국으로 돌아와서 다시 샀다. 미국에서 배운 대로, 새것으로 살 것만 사고(전기제품) 가구 등은 재활용센터에서 샀다. 처음 얻은 빌라는 8평짜리 분리형 부엌이 있는 작은 집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2년 후 옮기면서도 필요한 물건만 샀다.


물건 욕심이 많이 줄었다.
보이는 것보다 실리를 찾자는 주의가 되었다. 막 돌아왔을 때는 다른 사람 눈치를 덜 봤는데, 다시 적응하다 보니 이젠 남의 말이 신경이 쓰인다. 그래도 내 주의나 철학은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어떻게 다시 적응하며 사나 했는데... 사니까 또 살아진다. 11년이 지나고 돌아보니, '마흔'은 다시 시작하기에 결코 늦은 나이가 아니었다.




원글 링크 :






저의 두 번째 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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