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면, 이야기는 옛날이야기가 재밌다. 그리고 엄청난 성공담 말고, 망한 이야기가 이렇게 표현하면 좀 그렇지만 재밌지 않나? 저렇게 망하고도 살았다고? 에이.. 그래도 내가 낫네. 저 정도는 아니었잖아? 하는 묘한 안도감이 든다고 해야 하나? 그런 게 있다. 맞다. 그런 게, 그렇고 그런 게 있다.
그렇다고 진짜 망한 이야기를 쓸 거야?
그렇다. 이건 소위 망한 이야기다.
누가?
내가.
내가 그동안 뭘 어떻게 망했는지에 관한 이야기다. 왜 하필 망한 이야기 즉 실패한 이야기를 쓰기로 한 거냐면.. 그건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3년 한참 닷컴 바람이 불기 시작했을 때, 블로그 서비스(개인 미디어?)를 시작한다며 한번 해보라는 추천을 받았다. 그게 뭔데? 했더니, 인터넷에 글도 올리고, 사진도 올리는 거라고 했다. 당시 디지털카메라가 없었던 나는, 그래 좋아. 그럼 글을 한번 써볼게. 하고 온라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일기를 공개버전으로 쓰는 기분으로 하나씩 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회사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쓰기 했는데, 옆 팀 팀장님이 엄청 공감해 주셨다. 아니 난 피 터지게 싸운 이야기, 골 아파 죽겠는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쓴 건데 이게 재밌다고요? 하면서 의아해했다. 팀장님은 심지어 다음 편을 빨리 내놓으라고 독촉까지 했다.
그때 알았다.
나의 괴로웠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큰 재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어쩌면 희망까지 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때부터 좀 쪽팔려도 괴로운 이야기도 서슴지 않고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때부터 블로그를 지금까지 쓰고 있다. 물론 처음 오픈했던 사이트가 3년 만에 망해버려서, 2006년도에 다른 곳으로 옮겼지만... 그래도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계속 계속 블로그는 썼고,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쓸 예정이다.
그래서 망한 이야기를 쓰는 게 민망하지 않고, 굉장히 익숙하다. 이미 조금씩 조금씩 자주 썼던 이야기일 수도 있다. 돌아보면 보통 한 번에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다. 세상 쉬운 일도 없었고, 꼭 시행착오를 겪었다. 그냥 된 게 없다.
나의 망한 이야기, 버전 업업업
그렇게 블로그에 조금씩 써가던 나의 망쳐버린 이야기를 드디어 시리즈로 써볼 기회가 생겼다. 급기야 공모전에 내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었다. 실패한 이야기를 작품으로 만들다니... 이게 될까? 안 될까? 살짝 자신이 없었지만, 쪽팔림을 무릅쓰고 도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2018년도에 나의 망한 이야기 [버전 1]을 썼다. 그런데 생각보다 시리즈로 쓰는 게 힘들었다. 시작은 쉬웠지만, 중간에 스스로가 못나 보이고 참을 수 없이 쪽팔려서 멈췄다. 겨우 제출일 맞춰서 냈다. 버전 1은 당연히 떨어졌다.
2년 후, 2020년 [버전 2]를 썼다.
역시 공모전 때문에 쓰게 됐다. 그래도 두 번째라고 그나마 첫 번째보다는 나았지만, 역시 쓰다가 스스로 못났음을 통감하며 겨우 마무리를 했다. 어떻게 됐냐고? 당연히 떨어졌다.
그리고 2024년.
나는 이제 [망한 이야기, 버전 3]을 쓰려고 한다.
'버전 1'의 제목에는 내 이름(<82년생 김지영>처럼..)을 썼고, '버전 2'는 실패보고서라고 썼지만, 이번에는 제목을 '실패이력서'라고 쓰려고 한다. 막말로 대놓고 '나의 망한 이야기'라고도 쓸까도 생각했지만.. 얼마 전 도서관에서 읽은 책에서 힌트를 얻었다. 책에는 '실패자 이력서'라고 되어 있었지만, 왠지 '실패한 자의 이력서'라는 느낌이 나서 실패이력서라고 바꾸어 썼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2022년 말부터 2023년까지 2년 동안 [버전 2.5]에 해당하는 실패이력서 중간 버전의 시리즈를 쓴 적이 있지만, 그동안 살면서 했던 실패 중에 굵직한 것 몇 가지를 중심으로 써볼 예정이다.
실패한 이야기를 쓴 실패시리즈마저 망했다는 게 슬프긴 하다. 이번에는 끝까지 잘 쓸 수 있을까? 아니면 쓰다가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댈지 모르겠다. 내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 이미 결말까지 다 나온, 일명 스포일러를 아는 이야기지만.. 그래도 잘 이어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