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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자몽 Oct 10. 2024

미국 취업이라는 환상과 현실 (상)

딩동댕! 나의 실패이력서(7)

일하다 보니 기회가 생겼다. 많은 이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에서 일할 기회였다. 하늘에서 동아줄이 내려온 거라 생각했다. 지쳐가던 현실에서 어서 나오라는 '탈출의 동아줄'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더 많은 날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기회의 동아줄'이었다.




브레이크 없는 차를 운전 중이었다


벚꽃은 지고 초록 나뭇잎과 열매가 남다. ⓒ청자몽

시작했고, 어렵게 해 오던 일이었는데.. 어느 순간 모든 것이 당연하게 느껴졌다. 심한 게 목에 힘이 들어갔다. 내가 잘해서 여기까지 온 거야. 잘나서 이렇게 잘 되고 있는 거야. 하고. 겸손은 사라지고, 목이 뻣뻣해졌다. 게다가 능력보다 훨씬 과대평가를 받아 과분한 대우를 받았다. 겸손을 배웠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 순간 불안해졌다. 2000년 초반에는 35살 즈음에 프로그래머를 그만두고, 닭집 사장이 된다는 말에 앞으로를 고민하던 중이었다. 그때 마침 미국에서 일하던 남편 지인이 우리 부부가 함께 미국에 와서 일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했다. 아니! 모두 바라마지 않는 기회가 오다니! 놓칠 수가 없었다.


정말 빨리 일이 진행되었다. 남편과 나의 취업비자(H1)도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취업비자가 나온 날, 하필 회사 승진 발표일이었다. 퇴사를 알리기 전이었는데, 예상했던 것처럼 진급이 안 되었다. 팀장님은 회의실로 나를 부르셨다.




"이대리.. 미안하네. 이번에 승진이 안 됐어. 다음번에 열심히 해보자."


"팀장님, 저도 드릴 말씀이 있어요."


"뭔데?"


"저 미국가요."


"뭐? 어디? 에이.. 이대리 왜 그래."


"진짜예요. 취업비자가 나왔어요. 같이 가기로 했어요."




좀 더 좋은 조건으로, 더 좋은 조건으로.. 조건을 중요시하며 회사를 옮기다가 방향을 잃은 나에게 탈출할 기회라 생각했다. 그것도 나라 밖으로! 하지만 그건 또 다른 시작이었다.




사는 환경이 참 많이 달랐다


미국의 IT기업이라면 (상상 속의 그런 멋진) 실리콘밸리에 있을법한 회사는 아니었다. 그냥 다른 나라에 있는 회사였다. 그냥 회사들 중에 하나. 처음부터 기대에 부풀어간 건 아니었지만, 쉽지 않았다. 일단 언어부터 문제였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지 못했다. 유창까지는 아니어도 기본 대화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마저도 하지 못했다. 준비를 한 상태로 간 게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 컸다. 회사 말고 당장 일상생활 적응도 문제였다.


사는 환경도 참 달랐다. 대부분 바닥이 카펫으로 되어있다 보니 눈도 많이 아프고, 알레르기 비슷한 현상도 경험했다. 화장실도 어색했다. 문의 일부가 잘려나간 것처럼 신발 부분이 보이는(혹시 모를? 사고 대비해서 약간 그런 구조라는데..) 외부 화장실은 그렇다 치고, 집안에서도 신발 안 신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게 되는 건식 구조였다.


모든 처리들이 다 느렸다. 은행이며 관공서에서는 줄도 길지만, 뭐든지 오래 걸렸다. 병원도 한국처럼 아프다고 바로 갈 수 없었다. 국가가 운영하는 의료보험제도가 있는 게 아니라, 회사에서 일정 부분 부담해 주고 내가 나머지를 내는 민간보험이었다. 주치의를 정해서, 아프면 주치의한테 먼저 가야 하고 주치의가 병원을 알려준다고 했다. 뭘 하든 아주 많이 비쌌다. 피검사만 해도 수십만 원 돈이 들었다. 의료보험 때문에 나이 많이 들어도 일한다는 말이 있었다. 내 맘대로 아플 수도 없었다.


은근히, 또는 대놓고 인종차별을 받았다. 피부색 때문에도 받고, 유창하지 못한 영어 때문에도 당했다. 유색인종이 유색인종을 외려 더 무시한다는 인상도 지울 수 없었다. 안전하지 못하고, 어딘지 좀 무서운 구석도 많았다.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아무래도 부딪히는 부분이 많았던 것 같다. 비자나 영주권, 시민권 등등... 그런 복잡한 것들에 민감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당연히 얻고 누렸던 권리가 엄청나게 큰 복이었음을 몰랐다는 사실에 왠지 모를 죄책감마저 들었다.


굉장히 편하고, 빠르고, 불편함 없이 잘 살고 있었는데.. 그런 고마움도 모른 채 당연히 살면서 맨날 불편하다고 힘든 부분만 생각하며 투덜댔던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언어와 환경에 서툴러 무시당하고, 알게 모르게 당하는 인종차별도 힘들었다. 나 혼자 쌓아 올린 거라 착각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당연했던 게 아니었고, 나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그냥 사람 중에 하나였다는 깨달음이 참 아프게 왔다. 그래봐야 '외국인 노동자' 중에 한 명이었다. 그것도 운 좋은.. 취업비자를 합법적으로 받고 유지하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음을 뒤늦게 알았다. 처음 간 회사 그만두고 다음 회사 구하면서 뼈저리게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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