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민머리? 민머루에 가는 이유

by 올리비아

민머루 해수욕장은 우리 가족의 단골 캠핑지다.

바다와 갯벌, 숲과 하늘이 함께 어우러진 그곳은, 언제나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봄, 여름, 가을을 가리지 않고 다녀왔는데, 올해는 방사능 수치가 높다는 소식에 발길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일까, 그곳에서 보냈던 시간들이 유난히 더 그리워진다.


캠핑의 가장 큰 매력은 휴대폰을 내려놓는 데 있다. 집에서는 손에서 떼어낼 수 없는 휴대폰이지만, 민머루에 도착하면 자연스레 가방 속에 넣게 된다. 전화를 받을 필요도, 알림에 쫓길 이유도 없는 시간. 오로지 파도 소리와 바람 소리, 그리고 갯벌에서 웃으며 뛰어다니는 아들의 목소리만이 세상과의 연결이 된다. 그 순간만큼은 디지털 세상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민머루를 '민머리'라고 부르는 아들은 이곳을 무척 좋아한다. 갯벌에 맨발로 들어가 작은 조개를 캐거나, 잠자리채로 새끼손톱만 한 새우를 건져 올릴 때마다 눈이 반짝인다. 돌을 뒤집어 가며 게를 잡다 보면 어느새 몇 시간이 훌쩍 흘러 있다. 아이가 자연에서 직접 찾아낸 놀잇감들은 휴대폰 화면 속 화려한 영상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는 듯하다. 나 역시 갯벌 위를 걷다 보면 아이처럼 무심히 고개를 숙이고, 모래와 흙 사이에 숨어 있는 생명들을 발견하는 데 열중하게 된다. 시간은 그렇게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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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에게도 이곳은 특별하다. 특히 해수욕장임에도 취사가 가능한 곳이라, 집에서는 해 먹기 힘든 숯불구이를 마음껏 할 수 있다. 숯에 불을 붙이고, 고기를 올리며 연기에 연신 콜록대면서도 집중해서 고기를 굽는 남편은 언제나 아이보다 더 즐거워 보인다. 도시의 부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자유로움과 만족감이 그 불 위에 가득 담겨 있다.


밤이 되면 풍경은 다시 달라진다. 해가 뉘엿뉘엿 사라지고, 차갑게 불어오는 바닷바람이 텐트 주위를 감싸기 시작하면, 우리는 작은 렌턴 불빛을 켠다. 그 빛 아래에서 남편과 나는 맥주 한 캔을 나누며 이야기를 나눈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와 장난스러운 이야기가 뒤섞여 한참을 웃는다. 아이는 아빠가 즉석에서 지어내는 웃기고 무서운 이야기를 듣다가 스르르 잠에 든다. 그렇게 평범한 주말과는 전혀 다른, 특별한 밤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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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캠핑은 준비가 쉽지 않다. 텐트, 침낭, 조리도구, 랜턴, 그리고 각종 먹거리까지 챙기다 보면 짐이 한가득이다. 차에 다 싣고 나면 숨이 찰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민머루로 향했던 이유는 단 하나, 이곳에서의 시간이 집에서의 시간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집에서 보내는 주말은 늘 비슷하다. 아침에 교회를 다녀오고 나면 점심을 해 먹고, 남편은 잠시 낮잠을 청한다. 아들은 태블릿이나 휴대폰으로 유튜브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나 역시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손에 들고, 끝없는 스크롤 속으로 빠져든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흐르면 하루가 금세 저물고, 우리는 늘 똑같은 대화를 주고받는다. 잘 쉬었다지만 평범한 주말은 정작 무엇을 했는지는 남지 않는다.


하지만 캠핑장에서는 다르다. 휴대폰이 필요 없는 곳. 시간은 느리게 흐르는 듯하면서도 순식간에 사라진다. 텐트 앞 의자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다 보면, 마음이 절로 풀린다. 온전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할 수 있다. 아이의 웃음, 남편의 손길, 바다 냄새와 숯불 향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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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서의 기억은 추억으로 남는다. 바닷바람이 유난히 세던 날, 텐트를 치느라 진땀을 흘리던 남편은 결국 텐트가 자꾸 넘어가자 허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그런 남편의 모습을 휴대폰으로 찍어 두었다. 지금 다시 보아도 그 순간의 우스꽝스러움과, 함께였기에 가능한 즐거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이가 잡아온 게 몇 마리를 작은 대야에 담아두고, 그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집에 가져갈까?’라는 아이의 물음에 우리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자연에서 만난 생명은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게 맞다고, 그 순간도 아이에게는 하나의 배움이 되었다.

바닷가 끝까지 물드는 주황빛 하늘 아래,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웃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진 속 장면보다, 마음에 남은 그 풍경이 더 또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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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그곳을 가지 못했다. 어쩔 수 없는 이유였지만, 아들의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대신 학원 옥상에서 작은 캠핑을 했다. 물론 바다와 갯벌은 없었지만, 그날만큼은 그곳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아이는 만족한 듯 “진짜 캠핑 같아!” 하고 외쳤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캠핑이 우리에게 주는 건 단순한 여행의 즐거움이 아니라, ‘함께’의 힘이라는 걸. 휴대폰도, 일상의 소음도 내려놓고 나면, 결국 남는 건 우리 셋뿐이다. 그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더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더 많은 웃음이 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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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알차게 보낸다는 게 거창한 것이 아니다. 단지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고, 눈앞의 사람과 풍경에 온전히 집중하는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하루는 충분히 풍요로워진다. 우리는 평소에도 더 많은 시간을 이렇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작은 텃밭을 가꾸거나, 근처 공원에서 산책을 하거나, 책 한 권을 펼쳐놓고 앉아 있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바쁜 일상 속에서는 늘 휴대폰을 먼저 보게 된다. 그래서 민머루 같은 공간이 더욱 소중하다.

아들은 여전히 “언제 민머리 또 가?” 하고 묻는다. 아직은 갈 수 없는 상황이지만, 언젠가 다시 갈 날을 기다린다. 그때가 되면 휴대폰은 또다시 가방 속 깊숙이 넣어두고, 갯벌에서 함께 달리며 시간을 잊을 것이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작은 불빛 아래에서 가족과 함께 웃을 것이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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