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을 빼려다, 삶이 움직였다

움직임의 리듬을 되찾다

by 올리비아

요즘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선 나를 마주한다. 얼굴이 조금 동그랗다. 청바지는 예전보다 덜 여유롭고, 머리도 묘하게 무겁다.

‘아, 살이 쪘구나.’

그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 밤엔 아이를 재운 뒤 간식을 집어 먹는다. 이게 단 하루의 습관이 아니라, 몇 달째 이어졌다는 게 문제였다. 이러다간 정말 굴러다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래서 결심했다. 운동을 하자. 식단만으로는 도저히 안 됐다. 탄수화물 줄이기, 저녁 금식, 채소 위주의 식사... 그런 다이어트 방식들은 늘 작심삼일로 끝났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배고파졌기 때문이다. 이번엔 ‘움직임’으로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문제는 시간이었다. 헬스장 등록은 매번 망설여졌다. 운동복을 챙기고, 차를 몰고, 운동하고 돌아오는 그 과정이 이미 피곤했다. 집에서 나가는 일 자체가 운동보다 어려웠다. 그래서 선택한 게 홈트레이닝이었다.


사실 우리 집엔 이미 웬만한 헬스 기구가 다 있다. 남편이 운동에 한창 빠져 있을 때 사둔 덤벨, 바벨, 케틀벨이 거실 한쪽을 차지한다. 그 무게감 있는 철제 도구들을 볼 때마다 ‘저건 내 세계가 아니야’ 싶었는데, 이번엔 달랐다. 이번엔 정말 변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래도 덤벨만으론 뭔가 부족했다. 숨이 차야 운동한 기분이 드는데, 근력운동만으로는 그게 채워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생각났다. 스텝퍼,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처럼, 제자리에서 땀을 흘릴 수 있는 운동기구. 당근마켓에 들어가자마자 검색했다. 운명처럼 눈에 들어온 ‘거의 새것 같은 스텝퍼’. 판매자와 대화를 나누고, 바로 거래를 결정했다.

“여보야, 나 오늘 당근 좀 다녀올까?”

“뭔데? 또 뭐 샀어?”

“운동기구야. 스텝퍼.”

그는 웃으며 말했다. “내가 다녀오면 되는 거지?”

그렇게 남편이 밤 9시에 스텝퍼를 가져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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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구석구석 닦은 뒤 조심스럽게 올라탔다. 좌우로 발을 번갈아 밟으며 천천히 리듬을 찾았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몇 분 지나자 몸이 기억하기 시작했다. 계단을 오르는 것처럼 단순하지만 확실한 움직임, 금세 이마에 땀이 맺혔다.


운동을 마치고 나니 몸이 조금 가벼워진 듯했다. 무엇보다 ‘내가 움직였다’는 사실이 주는 뿌듯함이 컸다.


다음 날, 단백질 쉐이크를 주문했다. 맛없는 건 싫으니까 초코맛으로. 이번엔 정말 해보자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며칠이 지나자 남편이 말했다.

“나도 다시 운동해야겠다.”

그의 눈빛에 오랜만에 경쟁심이 비쳤다.

“그래, 같이 해보자.”

우린 그렇게 웃었다.

밤마다 스텝퍼 위에 오르면, 거실이 작은 헬스장이 된다. 아이 방에선 고른 숨소리가 들리고, 부엌 조명은 노랗게 빛난다. 그 속에서 나는 숨을 고르고, 땀을 흘린다.


가끔 남편이 옆에서 케틀벨을 들며 농담을 던진다.

“우리 부부가 이렇게 건강할 줄이야.”

그럴 때면 웃음이 터지지만, 그 웃음 속에는 묘한 뿌듯함이 깃든다.


살을 빼겠다는 단순한 다짐에서 시작된 일이지만, 운동은 내 일상에 ‘리듬’을 가져다주었다. 하루의 끝에 20분이라도 몸을 움직이면, 머리의 무거움이 조금 가벼워진다. 몸이 깨어나면 마음도 따라 일어난다.


예전엔 ‘운동’이란 단어가 부담스러웠다. 목표, 근육, 체중 같은 숫자들이 압박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운동은 내게 ‘나를 돌보는 시간’이 되었다.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다시 나답게 살아가기 위한 시간.


한 달 뒤의 내 모습이 궁금하다.

그리고 남편의 모습도.


어쩌면 우리는 조금 더 가벼워지고, 조금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스텝퍼 위에서 흘린 땀방울들이, 조용히 우리를 바꿔놓을 테니까. 오늘도 나는 스텝퍼에 오른다. 계단을 오르듯, 나의 게으름을 한 걸음씩 딛으며.


땀방울이 떨어질 때마다 느낀다.


이건 단순한 다이어트가 아니라, 내 삶을 다시 움직이는 연습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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