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살이 찌는 나, 나는 말인가?

천고마비의 계절

by 올리비아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 가을이다.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 그런데 요즘은 말보다 내가 더 살찌는 기분이다.


선선한 바람이 불고, 햇살이 부드러워질수록 이상하게 식욕이 돋는다. 여름 내내 덥다고 식탁을 피해 다니던 내가, 가을이 오자마자 냉장고 문을 자주 열기 시작했다. 치즈가 들어간 요리가 너무 좋고, 고소한 냄새에 마음이 쉽게 흔들린다. 계절 탓일까, 마음 탓일까.


운동을 시작한 지 벌써 한 주가 넘었다. 거실 한쪽에는 새로 들여놓은 운동기구가 자리 잡았다. 매일매일 해야지 다짐하며 시간을 쪼개 운동했지만, 체중계의 숫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올라가는 날도 있었다. 운동은 분명 열심히 했는데, 왜 늘 제자리일까. 거울 앞에 서면 마음이 자꾸 작아진다.


어제는 결국 남편과 야식을 먹었다.

‘오늘 하루는 그냥 쉬자.’

그 한마디가 마법처럼 모든 다짐을 무너뜨렸다.


치킨을 시키고, 로제떡볶이에 불닭볶음면까지 끓였다. 거기에 남편은 비엔나 소시지까지 볶아 얹었다. 상 위는 금세 잔칫상이 되었다. “오늘은 진짜 마지막이야” 하면서 젓가락을 들었지만, 첫 입이 들어가는 순간 이미 모든 결심은 사라졌다. 매콤하고 고소한 냄새, 바삭한 치킨 껍질, 떡볶이의 크리미한 소스가 어우러질 때마다 행복이 밀려왔다.


물론 대부분은 남편이 먹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체중은 늘 내가 더 오르는 것 같다.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접시가 비워지고 나자, 행복 뒤에는 늘 그렇듯 죄책감이 찾아왔다.

‘내일부터는 진짜 먹지 말자.’

스스로에게 다짐하면서도 이미 다음 끼니를 고민하는 내 모습이 조금 우스웠다.


그때 남편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맛있게 먹어서 즐거우면 그게 더 건강한 거야.”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됐다.

다이어트를 하며 ‘참는 법’만 배워왔지, ‘즐기는 법’은 잊고 있었던 것 같다. 순간의 즐거움이 꼭 나쁜 건 아닐지도 모른다. 인생이 늘 숫자처럼 오르내릴 수는 없으니까.


요즘은 위고비, 마운자로 같은 이름들이 자주 들린다.

주사 한 방이면 살이 빠진다는 말, 솔깃했다. 하지만 부작용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겁이 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이 아니라 내 의지로 해내고 싶다는 고집 같은 게 있다. 느리더라도, 나 스스로 바꾸고 싶다.


어제의 야식은 잠시 쉬어가는 날이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오늘은 다시 마음을 다잡는다. 스트레칭을 하고, 물 한 잔을 마시며 조용히 다짐한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가을은 원래 풍요로운 계절이다.

하늘도, 들판도, 사람의 마음도.

그 풍요로움 속에서 잠시 멈춰 쉬어가는 일도 나쁘지 않다. 중요한 건 다시 걸어가는 마음일 것이다.


오늘의 나는 그렇게 조금 더 단단해졌다.

살이 조금 붙었더라도,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 듯하다.

천고마비의 계절, 나는 살이 조금 쪄도 괜찮다.

내가 나답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나는 말이다. 히히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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