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다는 건 냉정함이 아니라 용기일지도

비우는 일은 자리를 내주는 일

by 올리비아

며칠 전, 집 앞에 쿠팡 상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나는 주문한 게 없었는데, 남편이 시켰나 싶어 뜯어봤다. 안에는 신발 밑창이 들어 있었다. 순간 ‘이게 뭐야?’ 싶었다. 그런데 곧 이유를 알았다. 남편이 신고 다니는 운동화 밑창이 거의 다 닳아, 구멍이 날 지경이었던 것이다.


그 운동화는 정말 오래됐다. 어디 나들이라도 갈 때면 꼭 그 신발을 신었고, 출퇴근길에도, 동네 마트에도 늘 함께였다. 사실 나는 몇 번이고 새 운동화를 사주겠다고 했지만, 남편은 늘 “아직 멀쩡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이번엔 결국 밑창만 따로 사서 수리까지 하려는 것이다.


“그걸 왜 아직도 고쳐 신어? 그냥 새 거 사면 되잖아.”

내가 투덜대자 남편은 잠깐 웃더니 대답했다.

“버리기엔 좀 그렇잖아. 아직 쓸만해.”


그 말에 나는 괜히 말이 막혔다. 그 신발은 보기에도 오래돼 보였다. 발끝 부분은 색이 바랬고, 끈은 해져 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그 신발을 손질하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이 이상하게도, 조금 짠했다.


남편의 방 서랍에는 언제적 노트북, 꺼지지도 않는 휴대폰, 이미 잊힌 충전기들이 그대로 있다.

몇 번이나 “이런 거 좀 버리자”라고 말했지만, 그는 늘 같은 이유를 댔다.

“아까워서.”

“그래도 추억이 있잖아.”


그의 말 속엔 ‘버린다’는 행위에 대한 어떤 미묘한 죄책감이 섞여 있었다. 마치 버리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시간까지 함께 잃는 것처럼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면 그럴 수도 있다. 물건이든 기억이든, 한동안 내 곁에 머물렀던 것들은 쉽게 놓기가 어렵다. 낡은 신발 한 켤레 안에도 그의 수많은 하루가 스며 있었을 테니까. 출근길의 피곤한 발걸음, 장마철 젖은 아스팔트, 아이와 함께 뛰던 공원길. 그 모든 시간이 신발 밑창에 켜켜이 쌓여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결국 새 운동화를 주문했다. 깨끗하고 단단한 밑창, 회색빛의 부드러운 라인. 상자를 열어 보여주자 남편은 쑥스러운 듯 말했다.

“이건 너무 새 거라 부담스럽네.”

그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새것 앞에서조차 겸손한 그 사람의 마음이 귀엽게 느껴졌다.


현관에는 그 새 신발이 놓였다. 남편은 잠시 낡은 운동화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새 신발을 신는다. 그 짧은 동작이 이상하리만큼 인상 깊었다. 마치 한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의식 같았다.


사람은 누구나 무언가를 쉽게 버리지 못한다. 물건이든 관계든, 버린다는 건 곧 익숙함을 떠나는 일이라서. 하지만 때로는 그 익숙함이 우리를 묶어두기도 한다.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

비우는 일은 잊는 일이 아니라, 다음을 위해 자리를 내주는 일이라고.


낡은 운동화를 버리지 못하는 남편을 보며, 나 또한 무엇 하나 놓지 못한 채 마음 한구석에 쌓아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깨달았다.


그날 이후, 우리는 조금씩 연습하고 있다.

버리는 법을.

아쉬움에 작별을 건네는 법을.

그리고 그 빈자리에서 다시 무언가를 맞이하는 법을.


버린다는 건 냉정함이 아니라 용기일지도 모른다.

닳은 운동화는, 그 단순한 진실을 우리에게 아주 천천히 가르쳐주었다.

작가의 이전글놓는 연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