놓는 연습

이러면서 크는 거겠지

by 올리비아

지난 토요일

늘 내 품에 꼭 안겨 잠들던 아이가, 처음으로 엄마 없이 하룻밤을 보냈다.


그날은 친정 식구들과 성묘를 다녀왔다. 하늘은 깊고 푸르렀고, 바람에는 초가을 냄새가 스며 있었다. 산길을 오르내리며 낙엽을 밟는 소리가 포근하게 느껴질 만큼 마음이 평화로웠다. 아들은 그날따라 유난히 활기찼다. 이모부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장난을 치고, 아빠 물건도 들어주며 어른 흉내를 냈다.

그렇게 웃음이 이어지던 저녁, 아이가 갑자기 말했다.


“엄마, 나 오늘 이모네 집에서 자면 안 돼?”


순간 말문이 막혔다. 늘 내 곁이 아니면 잠을 못 자던 아이였다. 여행을 가서도 “엄마, 손잡고 자야 돼” 하던 그 아이가, 이제는 엄마 없이 자겠다고 한다.


“엄마랑 떨어져 자도 괜찮겠어?”

조심스레 물었더니,

“응! 이모부랑 놀 거야!”


그 말이 어쩐지 가볍게 들리지 않았다. 옆에서 형부가 장난스럽게 “이제 엄마보다 이모부가 더 좋대!” 하며 웃었고, 모두 따라 웃었지만, 나는 웃음 사이로 묘한 허전함을 느꼈다.


밤이 되어 아이를 언니네 집에 두고 돌아오는 길, 차 안은 이상할 만큼 조용했다. 뒷좌석이 텅 빈 건데, 마음마저 비어 있는 듯했다. 평소라면 “엄마, 노래 틀어줘!” 하고 재잘거릴 목소리가 들릴 자리였다. 그날은 그 자리가 유난히 크고, 낯설게 느껴졌다.


집에 도착해서도 마찬가지였다. 불을 켜고, 가방을 내려놓고, 물을 마셔도—무언가 여전히 비어 있었다. 아이가 없는 집은 이렇게 고요하고, 이렇게 넓고, 또 이렇게 쓸쓸하다는 걸 그날 처음 알았다.


잠자리에 누워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다. 혹시라도 전화가 올까 봐, 벨소리를 최대로 올려두었다. “엄마, 데리러 와줘” 하는 목소리가 들리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끝내 전화는 오지 않았다.


아침이 되어서야 언니에게 문자가 왔다.

“한성이 잘 잤어. 이모부랑 보드게임 하다가 바로 잠들었어.”

그 짧은 문장을 읽는 순간, 이상하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괜찮다고 하니 다행인데, 왜 이렇게 서운할까. ‘정말 나 없이도 괜찮구나’ 하는 생각이, 묘하게 마음을 저릿하게 했다.


그날 오전은 유난히 길었다. 밥을 먹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면서도 자꾸만 아이가 없는 공간이 눈에 밟혔다. ‘이제 정말 엄마 품을 벗어나는구나.’ 단순한 사실이 이렇게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일요일 오후, 현관문이 열리며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영아, 한성이 왔어~”

“엄마~ 나 왔어!”


순간, 온 집안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아들, 잘 놀았어?”

“응! 이모부랑 영화도 보고, 게임도 했어!”


아이의 얼굴엔 들뜬 표정이 가득했다. 그 표정 속에는 어제의 어린 아들이 아니라, 조금 더 자라난 ‘소년’의 기운이 있었다.

그날 밤, 아이는 먼저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도 엄마 없이 잘 수 있어?”

“응, 나 이제 혼자 잘 수 있어.”


짧은 대답이 마음속 깊이 남았다. 그동안 나는 아이가 커가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언제나 내 품 안에 있을 거라 믿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아이는 조용히, 아주 자연스럽게 내 곁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건 서운함이라기보다, 성장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밤이 깊어가자,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숨소리가 들렸다. 그 조용한 리듬이 안심이 됐다.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이 되어서야 엄마 품을 떠났다. 그때의 나는 아직도 엄마가 필요했지만, 내 아들은 이미 스스로의 공간을 찾고 있었다. 세상과 마주하는 속도가 내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걸 새삼 느꼈다.


시간은 참 빠르다. 이제 아이는 내 손을 잡지 않아도 된다. 그래도 가끔은 내 품속으로 파고든다. 그럴 때면 나는 말없이 머리카락을 쓰다듬는다. 그 순간마다 깨닫는다. 아이의 성장 속에서도, 엄마의 자리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단지 그 자리가 조금씩 모양을 바꾸어갈 뿐이라는 것을.


이틀 전, 그 첫 하룻밤은 아마도 우리 둘에게 ‘놓는 연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에게는 독립의 첫 걸음, 나에게는 놓아주는 용기의 시작. 서로 다른 방식으로 조금씩 성장하는 우리, 그 하루가 잊히지 않을 것이다.


“많이 컸구나, 우리 아들.

그래, 이러면서 크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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