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부고가 남긴 긴 침묵

근조화환 뒤의 진짜 이야기

by 올리비아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은 생각보다 조용하게 도착했다.

" OOO의 부군 故 OOO님께서 별세하셨기에 부고를 전해 드립니다. "


부고라는 건 늘 그렇다.
사실 하나가 문장으로 먼저 닿고, 그게 마음속에서 무게를 갖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녀와 나의 남편은 오래전부터 함께 일해온 사람이다.
학원에서 같은 공간을 오가고, 서로의 결혼식에서 축하를 건네고, 아이 돌잔치에서는 함께 웃던 사이였다.
그녀는 아이를 낳고 잠시 일을 쉬고 있었지만, 다시 돌아올 거라는 건 누구나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녀는 남편의 친구였고, 나의 친구였고, 우리의 동료였다.


그녀의 남편은 건설회사에서 감리사로 일했다.
지난해 더 나은 조건으로 이직했고, 지하철역 근처 새 아파트 분양권도 얻었다.
지방 현장에 나가 있었지만 주말이면 늘 가족에게 돌아왔다.
아이와 캠핑을 다니고, 시간을 쌓는 데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단정하고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과로였다.


하루에도 수십 건씩 쏟아지는 보고, 끝없이 요구되는 자료, 회식까지 이어지는 일정.
그의 하루는 거의 회사로 채워져 있었다고 한다.


쉴 기회가 미뤄지고 또 미뤄지는 동안, 그 무게가 결국 그를 쓰러뜨렸다.


장례식장에는 여러 건설사 이름이 적힌 조화가 많았다.
처음엔 그 많은 꽃들이 그를 애도하는 마음처럼 보였다.
그러다 문득, 그를 지치게 만든 것도 결국 그 조직들이었음을 떠올리자 이상한 복잡함이 남았다.


과로로 인한 죽음은 명백한 업무상 재해다.
이건 해석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회사는 쉽게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고 했다.
예전에는 산재로 처리되던 일들이, 최근에는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오히려 어려워졌다는 말도 들렸다.


근로자를 보호하겠다며 만들어진 법이, 정작 근로자의 죽음을 설명하는 자리에서 벽처럼 서 있다니.
그 문장이 오래 머릿속에 남았다.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도 쉽게 위로를 건넬 수 없었다.
애도라는 건, 말 한 줄로 해결되지 않는 시간의 문제라서 그렇다.
그녀가 지금 필요로 하는 건 설명이 아니라, 잠시라도 옆에 누군가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손을 가볍게 잡아주는 것으로 대신했다.


며칠이 지나 일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해도, 그녀의 시간만은 어딘가 멈춰 있는 듯했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데는 누군가마다 다른 시간이 필요하고, 서두르라고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나는 그 생각을 하며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그녀의 이야기가 스스로 흐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한편으로는, 그의 죽음이 단순히 ‘과로사’라는 말로 정리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감당해야 했던 일의 양, 그를 둘러싼 업무 구조, 그리고 그가 놓친 삶의 작은 장면들.
이런 것들이 언젠가는 제대로 질문받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녀의 남편은 성실하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한다.
성실함은 좋은 말이지만, 때로는 그 사람의 한계를 가리는 말이 되기도 한다.


잘할 거라는 기대, 조금 더 버틸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맡겨도 괜찮다는 안도.

이런 것들이 쌓여 결국 한 사람을 더 약하게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뒤늦게 깨닫는다.


나는 이 일을 오래 기억해두려 한다.
비슷한 비극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누군가의 성실함이 회사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소비되지 않기를.
하루를 버티는 일이 곧 누군가의 한계를 갉아먹는 일이 되지 않기를.
그리고 퇴근길이 그 사람의 마지막 길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녀의 시간은 여전히 멈춰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천천히 걸어 나올 것이다.
얼마나 오래 걸리든, 우리는 그 시간을 대신 단축시킬 수 없다.
그저 곁에서 기다리고, 필요할 때 손 한번 잡아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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