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이 도착하던 날

결혼기념일

by 올리비아

얼마 전 결혼기념일이었다.

올해는 조금 이상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편이 이상했다.


점심시간 무렵, 학원으로 커다란 꽃다발과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보낸 사람란에는 낯설지 않은 이름—내 남편.


포장지는 은근히 과했고, 케이크는 내가 좋아하는 치즈 케이크이었고, 카드에는 아주 진지한 척하면서도 어딘가 어설픈 문장이 적혀 있었다.

" 영아, 우리 오래오래 더 행복하게 살자 "

기뻤지만 살짝 의외였다.


우리 부부는 기념일을 챙기는 타입이 아니다.

지금껏 제대로 챙겼다고 말할 수 있는 기념일은… 글쎄, 아이 생일 정도? 그마저도 케이크만 사고 외식 한 번 하는 게 고작이었다.


작년 결혼기념일에는 더했다.

새로 오픈하는 캠퍼스 때문에 워낙 바빠서 날짜조차 잊어버렸다.

기념일 당일에도 커피 한 잔 마실 틈도 없이 계약서 들고 뛰어다니기 바빴다.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휴대폰 캘린더가 보내준 알림을 보고

“아, 어제였네…” 하고 웃었다.

그게 다였다.


그 전년도는 더 웃긴다.

남편은 아이와 캠핑을 갔다.

그날이 결혼기념일이라는 사실은… 아마 텐트 치고 난 뒤에야 알았을 것이다.

하지만 남편은 특유의 태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야, 기념일은 내년에도 오잖아.”


그 말이 너무 어처구니없어서, 오히려 화낼 기력도 없던 기억이 난다.

그런 우리가, 올해는 꽃과 케이크라니.

대체 왜?


꽃다발을 받아 들고 잠시 생각을 굴려 보았다.

언제 남편이 꽃을 보내줬더라…?

떠올려보니 딱 5년 전, 그러니까 결혼 5주년.

그리고 올해가 10주년.

아, 그래서구나.


남편은 1주년, 2주년 이런 숫자는 건너뛰고 5년 단위로 이벤트를 하는 사람이었다.

어딘가 합리적이면서도 귀여운 규칙이다.


우리의 10년

남편과 보낸 10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즐겁고 따뜻한 날도 많았지만, 슬프고 화나고 짜증나는 날도 정말 많았다.

나쁜 생각이 가슴 깊은 곳에서 가끔 스쳐 지나가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아니야, 그래도 이 사람 없으면 안 되지”

하면서 스스로를 말리는 그런 날들도 있었다.


남편은 공감없이 논리적으로 생각하려 하고,

나는 감정, 감성을 먼저 생각하는지라

우리 사이에는 늘 약간의 온도 차가 있었다.

내가 감정으로 가득 찬 질문을 던지면 남편은 어딘가 동문서답 같은 대답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꼭 마지막에는

“밥 먹을래?”

하고 묻는다.

그게 화해의 신호인지, 대화를 피하는 방식인지, 밥이 진짜 먹고 싶어서인지 모르겠지만

결국 나는 밥을 먹었고 그날의 싸움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다.


최근에는 남편에게 은근슬쩍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 결혼생활 어때?”

남편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결혼 초에는 365일 중에 2일 빼고는 행복했어.

근데 요즘은… 음… 한 365일 중에 300일 정도?”


정말 솔직해서 웃겼다.

나는 남은 65일이 무엇인지 밝히고 싶지 않았다.


다툼, 오해, 기분 나쁨, 서로의 한계…

이런 것들이 한꺼번에 끼어 있는 하루들이겠지.

생각해 보면 다툼이 잦아지긴 했다.

서로가 조금씩 지치고, 각자가 책임져야 하는 것들이 늘어나고, 부부가 짓는 짐의 무게도 달라졌다.


그래도 남편은 금방 풀린다.

내가 언짢아하면 벌써 눈이 흔들리고, 미안하다고 말한 뒤 얼굴을 들지 못해 머리를 긁적거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웃어버리면 남편은 기다렸다는 듯이 헤헤헤 웃는다.

그 웃음이 밉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또 멍청하게 사랑스럽기도 하다.


꽃 한 송이가 알려준 것,

올해 기념일 꽃다발은 크게 화려한 종류가 아니었다.

소박한 색감에, 포장도 과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꽃을 바라보고 있자니 지난 10년의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살다 보면 기념일이 중요한 사람도 있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우리는 후자에 가까운 부부지만 그래도 가끔은 누군가의 마음이

꽃 한 송이로 흘러 들어오는 날이 있는 것이다.


남편이 보낸 꽃은

'우리, 잘 살았다'는 말처럼 느껴졌고 ‘앞으로도 잘 살자’는 약속처럼 보였다.

10년을 함께 살다 보면 사랑은 예전과 같은 형태는 아닐지 몰라도

어딘가 더 깊숙한 곳에서 뿌리를 내리는 느낌이 있다.


그리고 나는 올해 그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사소한 꽃다발은, 알고 보면 사소하지 않은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하며 나는 아직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다.

꽃을 보며 살짝 울컥했던 감정이나, 카드를 보고 피식 웃었던 순간을.

살다 보면 서로에게 정이 떨어지는 날도 오고, 말이 통하지 않는 날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래도 우리는 지금까지 잘 버텨 냈고 앞으로도 잘 버틸 것이다.

남편에게도, 나에게도


이 결혼의 가장 빛나는 문장은 결국 아주 단순한 것이다.

“앞으로도… 더 행복하게 살자.”

나는 그 말을 조용히, 마음속에서 천천히 되뇌었다.


그리고 올해 기념일에 피어난 작은 꽃다발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다음 10년도

이 꽃처럼 은근하게, 오래오래 피어 있었으면 좋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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