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마지막 한달을 남기고 쓰는 26년의 바람
새해가 시작될 때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식 같은 것을 갖고 있다.
어떤 사람은 새벽 5시에 벌떡 일어나 “해돋이 보러 갈 사람?” 하고 외치고,
어떤 사람은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까먹으며 “티비로 보면 되지…” 하고 눕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12월 31일 밤, 광장에 모여 한 해의 마지막을 종소리로 기념하며 추운 겨울밤을 견딘다.
우리 가족은 그 어느 쪽도 아니다. 우리는 꾸준히 교회를 향한다.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며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는 조용한 방식.
사람들은 폭죽을 보거나 카운트다운을 세지만,
우리는 “아멘”과 함께 해를 넘긴다.
조금 얌전한가 싶지만, 나름대로 마음이 단단해지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해서 젊을 때부터 이랬던 건 아니다.
연애하던 시절, 남편과 나는 여기저기 잘 돌아다니는 꽤 모험적인 커플이었다.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열리는 타종 행사에 갔던 날이 있다.
그날의 기억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정말, 세상에 이렇게 추운 날이 있을 수 있구나.”
영화에서 주인공이 서로의 손을 꼭 잡고 새로운 해를 맞는 장면을 떠올리며 설렘 가득 안고 갔지만,
현실은 딱딱하게 얼어붙은 발끝과 끝도 없이 막히는 차들,
그리고 행사장에 들어가지도 못한 채 자유로 갓길에서 바라본 멀리서 울려 퍼지는 불꽃 폭죽 소리.
그래도 그때 손을 잡고 있던 사람과 지금까지 함께 살고 있으니,
그 추위는 어쩌면 우리의 인내 테스트였던 것 같다. 그리고 합격했다. 둘 다.
2025년, 너무 힘들고 버거웠던 이야기
올해는 정말이지, “시간이 나를 뛰어넘어 달아난 해”였다.
남편이 동산지앤비를 오픈하고,
가좌지앤비를 내가 직접 도맡아 운영하면서 하루하루가 숨 가쁘게 흘러갔다.
원장으로서의 책임, 강사로서의 역할, 상담과 관리까지.
남편과 함께할 때는 몰랐던 그 많은 업무들이 실은 꽤 무겁고 날카롭다는 걸, 몸으로 직접 느꼈다.
솔직히 말해 남편이 했던 일들이 그렇게 힘들어 보이지 않았었다.
그가 일하는 모습은 늘 자연스러웠고, “그냥 저렇게 하면 되는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해보니, 그 ‘그냥’이 얼마나 많은 복잡함을 숨기고 있었는지,
올해 1월부터 12월까지 아주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래도 “일이 많다”는 말 뒤에는 항상 “하지만 아이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말이 따라붙었다.
초등부 아이들이 문제를 혼자 해결해 내고,
수능 듣기 평가에서 고득점을 받고, 중등부 성취도 평가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만큼은 시간이 잠시 멈춘다.
고된 하루를 한 번에 보상해 주는 느낌.
올해 초등 6학년 아이들이 26수능 영어듣기에서 만점을 받았다는 소식은, 말 그대로 힐링이었다.
하지만 단순한 감동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감정도 있었다.
올해의 내 마음을 정확히 표현하면 이렇다.
행복 절반, 실망 절반.
정말 열심히 달렸는데, 결과가 그만큼 따라오지 않은 날들이 많았다.
“이 정도면 좀 보람이 있어야 하지 않나?” 싶은 날들.
남편도 나도 쉴 틈 없이 움직였지만, 어느 순간 둘 다 지쳐 있었다.
작년보다 더 노력했고, 더 애썼는데, 예상만큼의 결실이 쌓이지 않은 기분.
그 아쉬움이 나를 종종 뒤돌아보게 했다.
그렇지만 그 속에서도 단단히 붙잡을 수 있는 기쁨들이 있었다는 점이 올해를 버티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성과, 몇몇 학부모님들의 따뜻한 격려, 그리고 일과 무게 속에서도 우리가 부부라는 사실.
우리는 여전히 한 팀이라는 사실.
2026년의 목표: 결국은 다시 행복
그래서 나는 내년에도 목표를 다시 적는다.
그리고 이번에도 똑같은 단어로 시작한다.
행복.
뻔한가?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가장 뻔한 단어가 가장 어려운 목표라는 걸 우린 안다.
나는 내년에는 올해의 노력이 조금 더 반짝이길 바란다.
올해는 작았던 열매가 내년에는 조금 자라나서, 수확할 때 “아, 그래. 잘 살아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남편과 나의 고생이 결과로도 이어지고, 마음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일이 잘 되는 것도 좋지만, 결국은
둘이 좀 더 웃고, 좀 덜 지치고, 좀 더 자주 쉬고, 조금 더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내년의 나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은 단순하다.
“조금만 덜 버티고, 조금 더 즐겨라.”
“일 말고도 중요한 것, 잊지 말아라.”
“행복을 미루지 말 것.”
나에게 행복이란, 거창한 순간이 아니다.
아이들의 작은 성장, 남편이 웃는 얼굴, 학원에 스며 있는 온기, 내가 나답게 숨 쉴 수 있는 시간들.
그런 사소한 순간들이 쌓여 하루를 채우고, 그 하루가 모여 한 해가 된다.
새해가 되면 또 다짐들을 쓴다.
운동 더 하기, 책 더 읽기, 봉사하기
하지만 사실 그 위에 모든 걸 덮는 하나의 문장이 있다.
“행복하게 살자. 그러면 다른 것들은 자연히 따라온다.”
2026년에는 그 문장을 지금보다 조금 더 가볍게, 조금 더 웃으면서 적을 수 있기를.
올해보다 조금 더 사랑하고, 조금 더 여유롭고, 한 해의 끝에서 스스로에게
“정말 잘 해냈다”라고 말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새해의 첫날이 오면 나는 또 일기를 쓰듯 적을 것이다.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적을 것이다.
행복.
그리고 그 행복보다 조금 더 큰 행복.
그것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