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저녁, 지하철 세트장에서 만난 뜻밖의 웃음

플랜비 스튜디오 방문기

by 올리비아


일요일 저녁은 언제나 묘한 무게감을 준다. 내일이면 다시 시작될 일상의 톱니바퀴를 생각하며, 괜스레 마음이 차분해지다 못해 가라앉기 쉬운 시간. 하지만 이번 일요일은 조금 달랐다. 우리 가족은 그 가라앉는 공기를 뚫고 조금 특별한 외출을 감행했다. 바로 요즘 핫하다는 '플랜비 스튜디오'로 향하는 길이었다.


익숙함을 배반하는 낯선 공간의 매력


요즘 어딜 가나 흔히 볼 수 있는 게 셀프 사진관이라지만, 이곳은 입구부터 풍기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단순히 예쁜 조명 아래 하얀 배경이 놓인 '인생네컷' 스타일을 상상했다면 오산이다. 스튜디오 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마치 영화 촬영 세트장에 툭 떨어진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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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도시의 감성이 묻어나는 지하철 칸, 왠지 모를 긴장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엘리베이터, 그리고 빈티지한 매력이 뚝뚝 묻어나는 세탁실까지. 일상적인 공간들을 스튜디오 안으로 끌어들인 그 감각적인 연출에 입이 떡 벌어졌다. 익숙한 장소들이지만, '사진을 찍기 위한 무대'로 변모한 그곳은 더없이 낯설고도 매혹적이었다.



웃음 폭탄을 투척한 우리 집 두 남자


이날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나를 제외한 우리 집 두 남자였다. 평소엔 카메라만 들이대면 서로 재미있는 표정을 취하는 남편과 아들인데, 세트장은 오죽 했을까? 두 사람은 마치 물 만난 고기처럼 신이 났다.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려있는 하는 아들을 보며 배를 잡았고,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치 첩보 영화 주인공이라도 된 양 비장한 표정을 짓는 남편의 모습에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웃었다. 나를 웃기려고 작정이라도 한 듯, 서로 더 기상천외한 포즈를 취하려 경쟁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이게 진짜 행복이지' 싶은 뭉클함이 올라왔다.



화보처럼 예쁜 사진보다, 서로의 망가진 모습에 낄낄거리며 보낸 이 소란스러운 시간이 훨씬 더 값지게 느껴졌다. 셔터 소리 사이로 흐르던 우리 가족의 웃음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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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마저 재미가 되는 곳


인기 있는 곳이라 대기는 피할 수 없었지만, 그 기다림조차 지루할 틈이 없었다. 세트장 밖에도 감각적인 거울들과 다양한 소품들이 즐비해 있었기 때문이다. 독특한 선글라스를 써보기도 하고, 귀여운 머리띠를 두른 채 거울 셀카를 찍다 보니 시간은 화살처럼 흘러갔다.



어쩌면 우리는 사진이라는 결과물보다, '함께 무언가를 유쾌하게 즐기고 있다'는 그 감각에 취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소품 하나에 아이처럼 즐거워하는 가족들의 얼굴을 바라보며, 일요일 밤의 아쉬움은 어느새 기분 좋은 설렘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조금은 씁쓸한, 현실적인 아쉬움


물론 모든 것이 완벽할 순 없는 법. 이곳은 철저하게 셀프 시스템으로 운영되다 보니, 영수증 발행이나 별도의 주차 정산 서비스가 없다는 점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건물 주차장이 꽤 넓고 쾌적해서 주차 자체는 스트레스 없이 편하게 했지만, 나갈 때 주차 요금을 따로 결제해야 한다는 사실은 현실적인 주부의 마음에 살짝 스크래치를 냈다. "이 정도 웃었으면 주차비 정도야 기꺼이 낼 수 있지!"라고 쿨하게 넘기려 노력했지만, '무료 주차'라는 네 글자가 주는 안도감을 느끼지 못한 건 2% 부족한 마무리였다.



기억은 기록될 때 비로소 영원해진다


집으로 돌아와 인화된 사진들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엘리베이터 세트에서 찍은 사진 속 우리는 마치 시트콤의 한 장면처럼 익살스러웠고, 지하철 세트에서의 모습은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설레는 가족처럼 보였다.



비록 주차비는 조금 아까웠지만, 그 대가로 얻은 이 생생한 기록들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다. 평범한 일요일 저녁을 특별한 추억으로 바꿔준 플랜비 스튜디오. 다음번엔 또 어떤 엉뚱한 포즈로 나를 웃겨줄지, 벌써부터 우리 집 두 남자의 다음 '플랜'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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