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 여행
겨울은 차갑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는 온기는 달콤하다.
지난 주말, 나는 친정 식구들과 함께 평창 휘닉스파크로 향했다.
차창 밖으로 스치는 풍경이 온통 하얀 소금 가루를 뿌려놓은 듯했다.
세상이 온통 눈으로 뒤덮이자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역시 아이들이었다.
강아지마냥 눈밭을 뒹굴며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마흔 줄 넘긴 지 한참인 나조차 엉덩이가 들썩였다. 나이를 먹어도 눈은 사람을 철부지로 만드는 마법이 있다.
눈썰매장에서 아이들과 뒤엉켜 한바탕 소동을 피우고 나니 온몸이 노곤해졌다.
그럴 땐 역시 스파가 정답이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찬 공기를 마시는 그 이질적인 쾌감이라니.
저녁에는 언니들과 모여 앉아 본격적인 '입담 타임'을 가졌다.
육아 고민부터 시작해 남편 흉, 그리고 옛 추억까지.
끊이지 않는 수다와 함께 평창의 밤은 깊어갔고, 창밖의 눈은 여전히 소리 없이 쌓여만 갔다.
다음 날 아침, 숙소를 나서려는데 주변에 딸기 체험 농장이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겨울의 한복판에 딸기라니?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바로 데스크로 달려가 문의했다.
예약이 가능하다는 답변에 망설임 없이 신청 완료. 여행의 묘미는 이런 즉흥적인 이벤트에 있는 법이니까.
점심 식사를 하기 전, 우리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봉평 메밀딸기 농원'으로 향했다.
눈 덮인 길을 지나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밖은 영하의 추위가 기승인데, 하우스 안은 봄날처럼 따스했다.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그 진한 풀 냄새, 살아있는 흙과 햇살이 빚어낸 진짜 농염한 향이었다.
똑, 소리에 담긴 수확의 기쁨
아이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엄마, 딸기가 공중에 떠 있어!" 가지런히 매달린 딸기들은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의 장식처럼 앙증맞았다.
우리가 평소 식탁에서 편하게 먹던 딸기가
사실은 이렇게 섬세한 줄기 끝에서 조심스럽게 자라난다는 사실을, 나 역시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농장 사장님의 설명을 듣고 본격적인 수확에 나섰다.
딸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가볍게 손목을 스냅을 주어 '똑!' 하고 따는 그 손맛. 중독성이 상당하다.
아이들은 제 주먹보다 큰 딸기를 찾아내겠다며 눈을 부릅뜨고 하우스 안을 누볐다.
"이건 엄마 거, 이건 내 거!"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빨갛게 잘 익은 놈들만 골라 담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제 눈썰매를 탈 때와는 또 다른 뿌듯함이 밀려왔다.
2만 5천 원, 그 이상의 가치
사실 1kg에 2만 5천 원이라는 가격을 처음 들었을 때는 '딸기가 금값인가' 싶어 눈이 살짝 커졌던 것도 사실이다.
시장 물가에 밝은 주부로서 심장이 조금 쫄깃해지는 금액이랄까.
하지만 그 생각은 딸기 한 알을 똑 따는 순간 산산조각 났다.
마트 딸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단단하고 싱싱한 딸기.
무엇보다 아이들이 흙의 생명력을 직접 체험하며 얻는 그 즐거운 표정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
도시의 아이들에게 딸기는 그저 '냉장고에 있는 것'이었겠지만,
오늘 이후로 아이들에게 딸기는 '땀 흘려 똑 소리 나게 따야 하는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 것이다.
그 배움의 가치와 가족들과 깔깔거리며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2만 5천 원은 오히려 저렴한 입장료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여행의 끝자락에서
농장을 나오는 길, 아이들의 손에는 각자 수확한 소중한 딸기 통이 들려 있었다.
영하10도의 추운 날씨에 하얀 눈 위에서 눈썰매를 타던 기억과,
따뜻한 하우스 안에서 빨간 딸기를 따던 포근한 기억.
이 상반된 온도와 색깔들이 조화롭게 섞여 내 마음속에 예쁜 앨범 한 페이지로 남았다.
비록 지갑은 조금 가벼워졌을지언정, 마음만큼은 딸기 향기처럼 달콤하고 풍성하게 채워진 주말이었다.
다음 겨울에도 평창에 온다면, 우리는 또다시 이 빨간 설렘을 찾으러 농장 문을 두드리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