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길모퉁이의 발견

by 올리비아

지난 주말, 남편이 주말 수업을 하러 간 사이 엄마네 집에 다녀왔다.

거실 소파에 앉아 엄마 손톱을 다듬어 주다 슬쩍 말을 건넸다.

"엄마, 저기 사거리에 새로 생긴 집 가서 브런치나 먹을까?"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옷장을 뒤적였다. "거기? 생긴 지 한참 됐는데 이제 가보네."


집에서 걸어서 고작 5분. 슬리퍼를 끌고 가도 이상할 것 없는 거리였지만,

문을 열고 들어선 레스토랑의 내부는 밖에서 보던 것과는 딴판이었다.

묵직한 우드 톤의 가구와 은은한 조명, 그리고 코끝을 찌르는 고소한 버터 향.

익숙한 동네 골목 한복판에 이런 근사한 공간이 숨어 있었다니.

수천 번은 지나쳤을 그 길 너머에 이런 세계가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왜 한 번도 안 와봤을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보물을 두고 먼 길을 돌아온 기분이었다.

후회는 대개 이렇게 게으름의 꼬리를 물고 찾아온다.

우리는 메뉴판을 진지하게 탐독했다.

고심 끝에 고른 메뉴는 스테이크 샐러드와 화이트 라구 파스타. best가 붙은 시그니처 메뉴라 왠지 더 맛있을 것 처럼 느껴졌다.

먼저 나온 스테이크 샐러드는 초록빛 잎사귀들 위에 스테이크가 듬뿍 올라가 있었다.

“샐러드라며, 고기가 왜 이렇게 많아? ”

엄마는 특유의 실용주의적 투덜거림을 내뱉으면서도 포크는 정확히 가장 두툼한 고기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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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등장한 파스타는 그야말로 ‘꾸덕함’의 결정체였다.

소스가 면에 찰떡처럼 달라붙어 포크를 돌릴 때마다 묵직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한 입 먹자마자 입안 가득 퍼지는 진한 풍미.

혈관이 살짝 긴장할 것 같은 맛이었지만, 원래 맛있는 건 몸에 조금 미안한 법이다.


“야, 이거 맛있다. 집에서 하면 왜 이런 맛이 안 날까?”

“엄마, 이건 칼로리가 폭발해서 맛있는 거야. 집에서는 이렇게 소스를 들이붓지 않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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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별것도 아닌 농담을 주고받으며 접시를 비워냈다.

엄마는 파스타 소스가 아깝다며 식전 빵으로 접시 바닥까지 싹싹 훑었다.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를 미안함이 밀려왔다.

나는 지인들과의 약속은 멀리까지 찾아가면서, 정작 엄마와는 이 5분 거리의 문턱을 넘는 데 몇 년을 썼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은 물리적인 거리만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마음의 거리가 물리적 거리를 앞지르지 못할 때, 우리는 소중한 것을 배경으로 치워버린다.

엄마에게 이 레스토랑은 '나중에 자식들이랑 가보고 싶은 곳'이었을 테고,

나에게 이곳은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간극 사이에서 시간만 속절없이 흘렀던 셈이다.

배를 두드리며 식당을 나오는데, 들어갈 때보다 세상이 조금 더 선명해 보였다.

버거킹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이 낯선 레스토랑이 이제야 비로소 우리 동네의 진짜 풍경으로 편입된 기분이었다.

“저기 옆에 새로 생긴 카페도 가보자. 저기도 생긴 지 일 년은 된 것 같은데.”

이번엔 ‘나중에’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기로 했다.

가끔은 이런 시간이 필요하다.

거창한 해외여행이나 거창한 이벤트는 아니더라도,

꾸덕한 파스타 한 접시를 사이에 두고 나누는 시시콜콜한 대화.

엄마를 내 삶의 가장 선명한 피사체로 끌어오는 시간.

다음 주말에도 날씨가 좋았으면 좋겠다.


엄마의 옷장에서 다시 '외출복'이 나올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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