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라는 단어는 종종 거창한 수식어를 달고 나타난다.
대단한 성취나 예기치 못한 행운, 혹은 눈이 부실 정도로 화려한 순간들 말이다.
하지만 삶을 가만히 복기해 보면, 나를 진짜 살게 하는 힘은 아주 작고 사소한 것들의 틈새에서 돋아난다.
이번 한 주가 그랬다. 특별할 것 없는 날들의 연속이었으나, 그 안을 채운 온기 덕분에 나는 내가 참 행복한 사람임을 다시금 깨달았다.
내 일상의 가장 큰 축을 지탱해 주는 것은 남편의 무심한 듯 다정한 배려다.
그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굳이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아도 안다.
어느 퇴근길, 그의 손에 들려온 딸기가 그랬다. 내 손바닥만큼이나 큼직하고 붉은 딸기.
제철의 끝자락을 붙잡고 사 온 그 과일 한 상자에는 '당신이 좋아하니까 사 왔어'라는 긴 설명 대신, 나를 향한 세심한 관찰이 담겨 있었다.
주방에서의 남편은 때때로 마법사 같다.
냉장고를 아무리 뒤적여도 마땅한 재료가 보이지 않아 고민하는 나와 달리, 그는 금세 근사한 요리를 뚝딱 만들어낸다.
그가 요리하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특히 새우를 굽는 날이면 그의 손길은 더욱 분주해진다.
뜨거운 열기를 견디며 새우 머리를 떼어내고 껍질을 하나하나 발라내어 내 접시에 가지런히 놓아주는 사람. 내 손에 양념 한 방울 묻히지 않게 하려는 그 정성은, 사실 새우의 맛보다 훨씬 달콤하다.
요리가 끝나고 난 뒤의 풍경도 늘 정갈하다.
설거지통에 쌓인 그릇들을 미루지 않고 깔끔하게 닦아 놓는 그의 뒷정리 덕분에 나의 저녁은 비로소 완전한 휴식이 된다.
그런 아빠를 닮아서일까. 아들 또한 나의 세상을 환하게 밝히는 존재다.
아빠와 단둘이 산책하러 나간 길에, 아들은 "엄마가 좋아하는 피자 사 가자"라고 먼저 제안했단다.
자기가 먹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엄마의 취향을 먼저 떠올리는 열 살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코끝이 찡해진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아이의 손에 들린 피자 박스는 그 어떤 진수성찬보다 귀했다.
아이는 행복의 기준이 참 낮고도 맑다. 다이소에서 산 천 원짜리 장난감 하나에도 세상을 다 가진 듯한 표정을 짓는다.
그 순수한 만족감을 보고 있으면, 행복해지기 위해 너무 많은 조건을 걸어두고 살았던 내 어른스러운 욕심이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저 멀리서 나를 발견하고 가방을 덜렁거리며 '호다닥' 달려오는 아이의 발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경쾌한 음악이다.
그리고 하루의 끝, 잠자리에 들기 전 내 품속으로 파고들어 "엄마, 사랑해"라고 속삭여주는 그 작은 온기.
그 짧은 고백 한마디에 하루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진다.
돌이켜보면 이번 주는 유별난 이벤트 하나 없는, 말 그대로 '평범한 한 주'였다.
하지만 그 평범함 속에는 남편이 준 딸기의 단맛이, 아들이 건넨 피자의 온기가,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이들의 서툴지만 진한 사랑이 촘촘히 박혀 있었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
그것은 어쩌면 대단한 기적을 바라는 마음이 아니라, 이미 내 곁에 머물고 있는 소소한 행복들을 외면하지 않고 귀하게 여기는 마음일 것이다.
나를 위해 기꺼이 손을 적시는 남편과 나를 향해 전력 질주해 오는 아들.
이 두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의 계절은 언제나 봄이다.
이 행복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매 순간 감사하며 누릴 수 있기를.
다음 주도, 그다음 주도 이토록 평범하고도 찬란한 행복이 계속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