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감투의 무게를 감당하라

by 박정욱

이전의 나를 내려놓는 일

처음엔 기대가 컸다. 이제는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팀을 이끌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곧 알게 됐다. 리더십은 잘하는 것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혼자 빠르게 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멈추지 않게 걷게 하는 사람. 그게 리더였다. 그 전까지는 결과로 말해왔다. 숫자와 성과, 기술로 인정받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숫자보다 관계, 성과보다 분위기가 먼저였다. 내가 뭘 할 수 있느냐보다, 내가 어떻게 듣고 조율하느냐가 중요했다.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무너지지 않기 위해 조용히 중심을 잡는 일이 많았다. 때로는 팀원이 실수해도 대신 책임지는 역할이었고, 때로는 잘한 일이 있어도 조명을 뒤로 미뤄야 했다. 무대의 중심이 아니라, 무대의 배경이 되었다. 팀원들의 이름이 빛나는 순간에 내 이름은 사라지는 것. 그것이 내가 감당해야 할 새로운 방식의 성장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나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었다. 다만 방식이 달라졌을 뿐이었다. 이전의 나는 나 혼자 잘하면 됐지만, 지금은 다르다. 함께 가야 한다. 누군가 넘어질 때 멈추는 사람. 속도를 늦춰서라도 끝까지 같이 가는 사람. 리더란 그런 사람이었다.


가장 먼저 듣고, 가장 나중에 말해야 하는 사람

회의가 끝나면, 의견이 아니라 눈빛을 먼저 본다. 모두가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리더는 말보다 듣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판단은 가장 늦게. 확신보다 경청. 입을 다물고 있는 시간만큼 신뢰는 쌓였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누구보다 빨리 정리해서 방향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대화는 짧아지고, 동의는 사라졌다. 내가 말을 줄이자,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 시작했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리더보다, 진심으로 궁금해하는 리더가 팀을 변화시킨다. 그때서야 비로소, 의견이 아닌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팀원들은 단지 문제를 해결해주는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듣는 사람을 원했다. 판단은 조금 늦더라도, 함께 고민하는 리더를 신뢰했다. 리더는 결론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결론에 도달하도록 돕는 사람이다. 침묵의 시간은 답을 유예하는 시간이 아니라, 팀이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말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그게 이 역할이었다. 하나하나 말로 꺼낼 수 없는 사정들이 있었다. 내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는 곧 팀의 방향이 되기에 말을 줄였다. 말을 줄인 만큼 고독은 늘어났다. 회의에서 빠진 배경 설명, 결정 뒤에 감춰진 이해관계, 누군가의 감정을 고려해 생략한 말들. 설명하려 들면 끝이 없었고, 설명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겼다. 그 사이에서 나는 점점 말수가 줄었다.

말을 줄인다는 건 견딤의 문제였다. ‘왜 그렇게 했어요?’라는 질문에 정중히 웃으며 대답하지 않는 일이면서 내가 무례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도 말하지 않는 쪽을 선택하는 일이었다. 팀을 위한 결정이 늘 팀원에게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괴리는 항상 리더의 몫이었다. 어느 쪽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말하지 않고 감당하는 시간을 배워야 했다. 그 말하지 않은 시간들이 켜켜이 쌓였다. 설명하지 않았지만, 행동으로 보이려 했다. 보여지지 않아도, 팀이 흔들리지 않으면 그걸로 됐다. 그것이 리더십의 또 다른 언어였다.


리더는 억울할 일이 많다

틀린 결과가 나왔을 때, 이유를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맥락은 아무도 듣지 않았다. 결과만 남고, 책임은 나였다. 억울한 순간은 많았지만 감정으로 반응하는 순간, 무너지는 건 팀이었다. 삼켜야 했다. 회의에서의 결정이 틀렸을 때, 지적은 빠르고 날카로웠다. “왜 그렇게 했냐”는 질문에는 가정과 논리가 있었다. 하지만 리더는 과정을 말하기보다 결과를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해야 했다.

억울함을 꺼내면 방어가 되고, 방어는 곧 신뢰의 금이 된다. 그건 안다. 그래서 오히려 조용히 수긍하고, 다음 대안을 준비하는 쪽을 택했다. 이해받는 것보다 중요한 건 버티는 힘이었다. 나는 팀을 지켜야 했다. 내 감정보다, 팀의 감정이 먼저였다. 한 번의 억울함이 팀을 방어적으로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억울함은 감정이 아니라 연료가 되어야 했다. 삼킨다는 건 감정의 무시가 아니다. 다음을 위한 선택이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한 작은 훈련이었다. 억울함은 결국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리더는 사람이길 거부해야 할 때가 있다

화를 내고 싶을 때도 있었다. 침묵이 고통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리더라는 역할은 그 모든 감정을 잠시 보류하게 했다. 나보다 팀이 먼저였고, 내 감정보다 팀의 안정을 우선해야 했다. 그게 리더였다. 불공평한 말을 듣고도 웃어야 했고, 말도 안 되는 요구에도 차분하게 설명해야 했다. 때론 내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면서도,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사람이지만, 역할은 달랐다. 리더는 감정을 컨트롤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없는 게 아니라, 감정에 끌려가지 않는 사람이다. 그걸 매일 훈련해야 했다. 속으로는 격렬했지만 겉으로는 침착해야 했다. 불편한 피드백을 들어도 받아들이는 얼굴을 해야 했고, 실망해도 다시 기회를 주는 태도를 유지해야 했다. 사람이길 멈춰야 할 때, 나는 리더로 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팀을 위한 최소한의 책임이라고 믿었다.


리더는 팀의 에너지를 결정한다

내 표정 하나에 팀의 공기가 달라졌다. 내가 무겁게 시작하면, 모두가 조심스러워졌다. 말투 하나, 톤 하나. 팀 전체가 따라오는 걸 보며 알게 됐다. 팀의 분위기는 스스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리더가 먼저 만든다. 내가 침착하게 회의를 시작하면,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꺼낸다. 내가 조급한 기색을 보이면, 말수가 줄어든다. 팀의 감도는 리더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래서 리더는 회의 전에 스스로를 다잡아야 한다. 말을 고르고, 얼굴을 정리하고, 어깨를 편다. 어떤 긴장감은 전달하지 않아야 한다. 회의 전에 웃는 얼굴로 한마디를 던지는 것만으로도 분위기는 바뀐다. 말보다 표정, 표정보다 에너지가 선행한다. 팀원은 분위기를 기억한다. 어떤 말보다도 그날의 온도를 기억한다. 나는 그 온도를 만드는 사람이다. 긍정도 부정도, 모두 나로부터 흘러간다. 그래서 나부터 단단해야 했다. 리더십은 말이 아니라 공기였다. 그리고 그 공기를 먼저 구성하는 것은, 언제나 리더의 컨디션이었다.


비난은 언제나 따라온다

누군가에겐 항상 불만의 대상이었다. 같은 결정도, 다르게 받아들여졌다. 좋은 의도가 왜곡되고, 침묵은 오해가 되기도 했다. 해명하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설명은 더 큰 소음을 부르기도 했다. 그럴수록, 중심을 잡아야 했다. 비난은 익명의 형태로 다가오기도 했다. 대놓고 말하지 않지만, 느껴지는 차가운 거리. 리더가 되는 순간, 동료는 관찰자가 되었다. 평가자는 늘 가까이에 있었다. 무엇을 해도 모두가 만족하긴 어렵다. 결정은 누군가에게는 손해이기도 하니까. 그걸 알면서도 결정해야 하는 것이 리더였다. 억울해도 반박하지 않았다. 오해받아도 방어하지 않았다. 대신 시간을 줬다. 상황이 설명해주길 기다렸다. 시간이 해결해주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리더는 감정보다 관계를 남겨야 한다. 그래서 비난이 와도, 그 비난 속에서 신뢰를 잃지 않는 법을 배워야 했다.


그래도 혼자는 아니다

다행히, 믿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질문해주는 사람, 묵묵히 따라와 주는 사람. 그들이 없었다면 이 역할을 계속 이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좋은 팀원이 좋은 리더를 만든다는 걸, 나는 몸으로 배웠다. 칭찬보다 묵묵히 곁에 있어주는 존재. 그 하나만으로도 큰 버팀목이 되었다. 가끔은 내게 말을 건네지 않아도, 눈빛 하나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팀원이 있었다. 리더는 혼자 책임지는 자리지만, 혼자 버티는 자리는 아니다. 리더가 흔들릴 때, 조용히 뒤를 받쳐주는 이들이 있었다. 나는 그들에게 리더였다기보다 함께하는 동료이고 싶었다. 그들과 나눈 대화, 함께 웃었던 순간, 함께 피드백했던 저녁. 그런 장면들이 나를 지탱했다. 나를 리더로 성장시킨 건, 내가 아니라 함께한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더 잘하고 싶었다. 팀원들이 나를 리더로 받아준 그 순간부터, 나는 리더가 되어야 했다.


리더라는 자리는 가볍지 않다

그 무게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다만, 다루는 법을 배워갈 뿐이다. 매일 고민하고, 매일 반성하고, 그래도 다음 날 또 같은 자리에 서는 사람. 그게 리더다. 처음엔 무게가 나를 짓눌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버티는 법을 배웠다. 무게는 줄지 않았지만, 지탱하는 근육이 생겼다. 생각보다 그건 느리지만, 확실하게 자라났다. 때로는 그 무게가 자랑스럽기도 했다. 누구도 쉽게 감당할 수 없는 자리를 내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내게 힘이 되기도 했다. 그 무게를 가볍게 여긴 적은 없다. 다만 그 무게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왔다. 여전히 이 자리가, 이 팀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 이유는,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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