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걷는 독서의 길
첫째 딸과 주말마다 도서관을 즐겨 간다. 도착하면 아이는 어김없이 만화 코너로 직진했다. 쿠키런 시리즈부터 마법천자문, 메이플스토리... 익숙한 제목들이 아이의 손에 하나둘씩 쌓여갔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혼란스러웠다. 책을 읽는 것 자체로 좋다고 봐야 할 것인가, 만화책을 보는 것은 오히려 안 좋은 것일까? 그냥 만화는 아니고 학습 만화인데 그러면 괜찮은 것인가? 아이가 만화를 통해 배우는 것들은 좀 있는 것 같은데, 책을 읽는다는 것 자체는 좋은데, 왜 이렇게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걸까? 그런 고민을 안고 집어든 책이 바로 "초등 하루 한 권 책밥 독서법"이었다. 내년이면 첫째가 초등학생이 되는데, 아주 적절한 시점에 적절한 고민을 가진 채로 적절한 책을 발견했다. 제목만 봐도 내가 원하는 답이 있을 것 같았다. 실제로 책을 읽어보니, 내가 느꼈던 그 찜찜함의 정체를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아이에게 독서를 강요하면 오히려 반발한다"는 내용이었다. 어릴 때 나의 부모님에게 받던 강요가 생각나기도 했고, 책과 별로 친하지 않은 어린 날들이 생각났다.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만화만 보지 말고 이 책도 좀 읽어봐"라고 말하며 은근한 압박을 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 입장에서는 재미있는 책을 읽고 있는데 아빠가 자꾸 다른 것을 권하니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내 어린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이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으라"라고 하시면, 정작 읽고 싶었던 책이나 만화책에 대한 욕구만 더 커졌던 기억이 있다. 아이도 지금 그런 심정일 것이다. 잘 기억나진 않지만 "서울대생 필독서" 이런 책 목록들이 참 싫었고, 오기로 더 리스트에 있는 책들을 피해 다녔다.
책에서 제시한 해법은 생각보다 단순했다. 좋아하는 것을 금지하는 대신, 다른 선택지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오늘부터 새로운 약속을 아이와 했다. "줄글 책 1권을 읽으면 좋아하는 만화 1권을 더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아이는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금지가 아닌 선택의 문제로 접근하니 아이의 반응이 완전히 달랐다.
책에서 또 하나 깊이 와닿았던 부분은 "책을 읽고 나서 내용을 확인하거나 잘 읽었는지 체크하면 안 된다"는 조언이었다. 이 부분을 읽을 때 나는 뜨끔했다.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습관적으로 "어떤 내용이었어?", "재미있었어?"라고 물어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관심 표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이에게는 일종의 '검증'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읽기가 즐거운 경험이 아니라 시험 같은 느낌이 든다면, 아이가 독서를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부분에서 나는 약간의 딜레마를 느꼈다. 책의 내용에 대해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과연 아이가 책을 제대로 읽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저자는 이에 대한 답도 제시했다. 확인이 아닌 '나눔'의 방식으로 접근하라는 것이었다. "아빠도 이런 책 읽어봤는데..."라며 자연스럽게 독서 경험을 공유하거나, 아이가 먼저 이야기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조언이었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궁극적으로 아이들이 책에 대해 토론하고 글을 쓸 줄 알게 되어야 한다고 했다. 물론 어느 정도 나이가 찬 이후의 이야기이므로 지금 우리 아이에게는 아직 먼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지금 아이가 도서관 가는 것을 좋아하고, 책 읽는 것 자체를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늘 아이와 함께 도서관에 갔을 때, 처음으로 줄글 책을 세 권 골라왔다. 물론 쿠키런 만화책도 3권 골라왔다. 물론 줄글은 제쳐두고 만화책부터 보고 있는 우리 아이의 모습이지만 반납일인 2주 동안 이 3권의 줄글 책 중 한 권이라도 아이가 스스로 읽는다면 나름의 성공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이의 독서 습관은 결국 부모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를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서 나는 e-book 유저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앞에서는 종이책을 펼쳐서 책을 읽는 아빠의 모습을 노출하려고 노력한다. 그게 효과를 주고 있는지는 아리송하다.
또한 아이의 선택을 존중하되, 조금씩 다양한 장르의 책을 접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내 역할이라는 것을 배웠다. 강요가 아닌 유도, 금지가 아닌 선택의 확장. 이것이 바로 이 책이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였다.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가기로 했다. 하루아침에 변화를 기대하기보다는, 작은 변화들을 하나씩 쌓아가며 아이만의 독서 습관을 만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진짜 독서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은 사실 독서법에 대한 책이라기보다 육아에 대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단순히 독서법을 알려주는 책을 넘어서,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의 자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게 해 준 소중한 책이었다. 앞으로도 아이와 함께 걸어갈 독서의 길이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