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의 문 닫는 소리는 공학이 아니라 '작곡'이다

"철컥"과 "쾅"의 차이 : 0.5초의 소리가 결정하는 1억 원의 가치

by JUNSE

Sound Essay No.66

벤츠의 문 닫는 소리는 공학이 아니라 '작곡'이다

"철컥"과 "쾅"의 차이 : 0.5초의 소리가 결정하는 1억 원의 가치

사진: Unsplash의 Manuel Pappacena

1. 쇼룸의 첫인상은 눈이 아니라 '귀'가 결정한다


주말 오후, 새 차를 사기 위해 자동차 전시장에 갔다고 상상해 봅시다. 반짝이는 도장면, 날렵한 헤드라이트 디자인을 눈으로 훑어봅니다. 하지만 당신이 차의 품질을 몸으로 확인하기 위해 하는 '첫 번째 물리적 행동'은 무엇일까요?


십중팔구 운전석 손잡이를 당겨 문을 열고, 시트에 앉은 뒤, 다시 문을 닫는 행동일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철컥(Thunk)" 하고 낮고 묵직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면, 당신은 무의식적으로 이렇게 생각합니다. "와, 이 차 진짜 튼튼하네. 역시 비싼 차는 다르구나."


반대로, 겉모습은 화려한데 문을 닫을 때 "캉!(Clang)" 하고 얇은 깡통 소리가 난다면 어떨까요? 아무리 엔진 성능이 좋다고 설명해도 당신의 뇌는 이미 이 차를 '값싼 차', '안전하지 않은 차'로 분류해 버립니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이 비밀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메르세데스 벤츠나 아우디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에는 엔진을 설계하는 엔지니어만큼이나 중요한 대우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차 문 닫는 소리만을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디자인하는 '심리 음향학(Psychoacoustics)팀'입니다.



2. "철컥(Thunk)" 소리에 숨겨진 원시적 본능

사진: Unsplash의 Jack Ward

도대체 왜 우리는 낮고 묵직한 문 닫는 소리에 '고급스러움'과 '안전함'을 느낄까요? 여기에는 인류의 진화 심리학적 본능이 숨어 있습니다.


원시 시대부터 인간에게 '무거운 것'은 곧 '안전한 것'이었습니다. 맹수의 공격을 막아주는 거대한 바위,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두꺼운 동굴 벽. 무겁고 밀도가 높은 물체는 충격을 흡수하고 내부를 보호해 줍니다.


현대 사회에서 자동차는 우리를 보호하는 '움직이는 동굴'이자 '강철 갑옷'입니다. 문을 닫을 때 나는 묵직한 저음(Low Frequency)은 마치 은행 금고 문이 닫히는 듯한 청각적 환상을 심어줍니다. "이 차는 두꺼운 강철로 둘러싸여 있어. 사고가 나도 너를 지켜줄 거야."


반면, 고음의 쇳소리(High Frequency)는 얇은 철판이나 빈 깡통을 연상시킵니다. 뇌는 이를 '약함', '가벼움', '위험함'으로 해석합니다. 즉, 문 닫는 소리는 단순한 소음이 아니라, 제조사가 고객에게 보내는 '안전에 대한 청각적 서약'인 셈입니다.



3. 소리를 '튜닝'하는 기술 : 무게가 전부가 아니다

사진: Unsplash의 Ivan Kazlouskij

많은 사람들이 "고급차는 문이 무거워서 좋은 소리가 난다"고 착각합니다. 물론 무게도 영향이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연비 효율을 위해 경량화가 필수인 요즘 시대에, 무턱대고 문을 무겁게 만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문을 '악기'처럼 조율합니다.

댐퍼(Damper)와 흡음재 : 문의 내부 공간(Cavity)은 자칫하면 소리를 울리는 공명통이 될 수 있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이 안에 특수 흡음재와 제진 패드를 부착하여, 문이 닫힐 때 발생하는 '고주파 진동(The metallic ring)'을 즉시 잡아냅니다. 남는 것은 짧고 굵은 저음뿐입니다.


래치(Latch) 메커니즘 : 문이 차체에 걸리는 잠금장치(Latch) 또한 정교하게 설계됩니다. 금속과 금속이 부딪히는 날카로운 마찰음을 줄이기 위해 플라스틱 코팅이나 특수 윤활 처리를 하여 "착" 하고 감기듯 잠기게 만듭니다.


웨더 스트립(Seals)의 공기 쿠션 : 문의 테두리를 감싸고 있는 고무 패킹(Weather strip)은 단순히 비를 막는 용도가 아닙니다. 문이 닫히는 마지막 순간, 문과 차체 사이의 공기를 순간적으로 가두며 '에어 쿠션' 역할을 합니다. 이 공기층이 충격을 흡수하며 "쾅" 소리를 부드러운 "퍽" 소리로 바꿔줍니다.



4. 전기차 시대의 새로운 고민 : 프레임리스 도어의 역설


최근 테슬라를 비롯한 많은 전기차들이 디자인을 위해 창문틀이 없는 '프레임리스 도어(Frameless Door)'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음향 엔지니어들에게 이것은 악몽과도 같습니다.


창문을 잡아주는 틀이 없으면 유리가 흔들리며 "차르르" 하는 잡음(Rattle noise)을 내기 쉽고, 밀폐력이 떨어져 묵직한 소리를 만들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신 전기차들은 물리적인 소리 튜닝의 한계를 넘기 위해 '소프트 클로징(Soft Closing)' 기술을 적극 도입합니다. 문을 살짝만 밀어도 모터가 부드럽게 잡아당겨 닫아주는 기술입니다. 이는 "쾅" 하는 소리 자체를 제거함으로써, '소리의 고급스러움'에서 '동작의 우아함'으로 럭셔리의 정의를 옮겨가려는 시도입니다.



5. 소리는 보이지 않는 품질 보증서

사진: Unsplash의 Martin Katler

명품은 디테일에서 결정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동차에서 그 디테일의 정점은 바로 '소리'입니다.


엔진 성능은 엑셀을 밟아봐야 알 수 있고, 승차감은 주행을 해봐야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 닫는 소리는 차를 타는 '그 0.5초의 순간'에 이 차의 모든 가치를 판단하게 만듭니다.


벤츠가 그 짧은 "철컥" 소리를 만들기 위해 수백 번의 실험을 반복하는 이유는, 그 소리가 고객에게 전하는 가장 강력한 '품질 보증서'이자, 브랜드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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