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스타는 눈이 아닌 '귀'로 원두를 볶는다

퍼스트 크랙(1st Crack)과 세컨드 크랙(2nd Crack)

by JUNSE

Sound Essay No.78

바리스타는 눈이 아닌 '귀'로 원두를 볶는다

퍼스트 크랙(1st Crack)과 세컨드 크랙(2nd Crack) : 커피의 맛을 결정하는 2번의 비명 소리

projeto-cafe-gato-mourisco-71_faBUPPsw-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PROJETO CAFÉ GATO-MOURISCO

1. 로스팅 룸의 지휘자 : 소리를 듣는 사람들


카페의 로스팅 룸 앞을 지나다 보면, 커다란 통이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헤드폰을 끼거나 귀를 기계에 바짝 대고 있는 로스터(Roaster)들을 볼 수 있습니다. 기계 소음이 시끄러워서 그러는 걸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원두가 보내는 '구조 신호'를 듣고 있는 중입니다.


커피 로스팅은 단순히 생두(Green Bean)를 불에 익히는 요리가 아닙니다. 딱딱한 씨앗 속에 잠재된 800가지가 넘는 향미 성분을 화학적으로 깨워내는 정교한 화학 실험입니다. 이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지표는 온도계도, 타이머도, 원두의 색깔도 아닙니다. 바로 원두가 갈라지며 내는 '파열음(Crack)'입니다.


마치 팝콘이 터지듯, 원두는 로스팅 과정에서 두 번의 큰 소리를 냅니다. 이를 각각 '1차 크랙(First Crack)''2차 크랙(Second Crack)'이라고 부릅니다. 이 소리가 언제 나느냐, 그리고 소리가 난 후 몇 초 뒤에 불을 끄느냐에 따라 우리가 마시는 커피는 향긋한 꽃내음이 되기도 하고, 묵직한 다크 초콜릿이 되기도 합니다.



2. 1악장 : 수분의 탈출과 '팝콘' 소리 (1차 크랙)

wolfgang-hasselmann-kaxFOQlEn9g-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Wolfgang Hasselmann

로스팅을 시작하고 10분 정도 지나, 드럼 내부 온도가 약 190~200℃에 도달하면 첫 번째 연주가 시작됩니다. 생두는 본래 10~12%의 수분을 머금고 있습니다. 뜨거운 열을 받으면 내부의 물이 끓어 수증기로 변하면서 엄청난 압력이 발생합니다. 단단한 원두 조직은 이 압력을 견디다 못해 결국 "팡!" 하고 터지며 부풀어 오릅니다.


소리의 특징 : "탁! 타닥! 팝!" 마치 팝콘 튀기는 소리와 아주 흡사합니다. 소리가 크고, 둔탁하며, 힘이 있습니다.

물리적 변화 : 이때 원두는 크기가 2배 가까이 커지고(Puffing), 센터 컷(가운데 주름)이 벌어집니다. 이를 기점으로 원두는 열을 흡수하는 단계(흡열 반응)에서 열을 뿜어내는 단계(발열 반응)로 바뀝니다.

맛의 결정 : 이 소리가 나는 시점에서 로스팅을 멈추면 '라이트 로스팅(Light Roast)' 또는 '시나몬 로스팅'이 됩니다. 신맛(Acidity)이 강하고, 과일 향이나 꽃향기 같은 원두 고유의 개성이 가장 생생하게 살아있는 단계입니다. 스페셜티 커피나 드립 커피를 좋아하는 분들이 선호하는 포인트가 바로 이 1악장이 끝나는 지점입니다.



3. 휴지기(The Interval) : 마이야르 반응의 절정

pavlo-talpa-4pLJ8_yfpQQ-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Pavlo Talpa

1차 크랙의 요란한 소리가 잦아들면, 잠시 고요한 침묵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원두 내부에서는 가장 격렬한 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바로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입니다. 당분과 아미노산이 열과 반응하여 갈색으로 변하며, 구수한 빵 굽는 냄새, 캐러멜 향, 고소한 견과류의 풍미를 만들어냅니다. 로스터들은 이 침묵의 시간을 얼마나 길게 가져가느냐(Development Time)를 놓고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너무 짧으면 풋내가 나고, 너무 길면 향이 날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초시계를 보며 다음 신호를 기다립니다.



4. 2악장 : 섬유질의 붕괴와 '장작' 소리 (2차 크랙)

rene-porter-dq0xdD3ta8Y-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René Porter

온도가 220~230℃를 넘어가면, 두 번째 비명 소리가 들려옵니다. 이제는 수분이 아니라, 원두의 목질 섬유(Cellulose) 자체가 열을 견디지 못하고 부서지며 타들어 가는 소리입니다.


소리의 특징 : "지직... 찍... 자작..." 1차 크랙보다 소리의 볼륨은 작지만, 피치(Pitch)가 높고 훨씬 빠르고 날카롭습니다. 마치 마른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 혹은 쌀과자(Rice Krispies)를 우유에 말았을 때 나는 자글거리는 소리와 비슷합니다.


물리적 변화: 원두 표면으로 번들거리는 기름(Oil)이 배어 나오기 시작합니다. 세포 조직이 완전히 파괴되어 다공성 구조가 극대화됩니다.


맛의 결정: 이 소리가 들릴 때 로스팅을 멈추면 '다크 로스팅(Dark Roast)' 또는 '풀 시티/프렌치 로스팅'이 됩니다. 신맛은 거의 사라지고, 묵직한 바디감(Body)과 쌉싸름한 쓴맛, 스모키한 향이 지배합니다. 스타벅스 같은 프랜차이즈나 에스프레소용 원두는 대부분 이 2악장의 클라이맥스까지 진행한 원두입니다.



5. 소리를 놓치면 재가 된다


2차 크랙 이후의 소리는 '경고음'입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지체하면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원두는 새카만 숯덩이가 되어버리고, 심하면 발화하여 로스팅 기계에 불이 붙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로스터에게 청각은 생명입니다. "1차 크랙 소리가 시작되고 1분 30초 뒤에 뺄 것인가?" "2차 크랙 소리가 들리자마자 뺄 것인가?" 이 찰나의 타이밍(Timing)이 한 잔의 커피 맛을 천국과 지옥으로 가릅니다. 로스터들은 눈으로 색깔을 확인하기 전에, 귀로 먼저 원두의 상태를 진단합니다. 색깔은 조명에 따라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소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6. 한 잔의 커피는 소리의 기록이다

seongmi-hong-74DBZldn6xQ-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 seongmi Hong

우리가 카페에 앉아 무심코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검은 액체 속에는 사실 치열했던 '소리의 기록'이 담겨 있습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팡!" 하고 터지며 자신을 확장했던 1차 크랙의 환희, 그리고 "지직"거리며 자신을 태워 향기를 만든 2차 크랙의 희생. 바리스타는 그 소리를 지휘하여 당신의 컵에 담아낸 것입니다.


다음번에 커피를 마실 때, 한 번 상상해 보세요. "이 커피는 팝콘 소리가 날 때 꺼냈을까, 아니면 장작 타는 소리가 날 때 꺼냈을까?" 맛을 혀로만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맛을 만들어낸 소리의 풍경까지 상상할 수 있다면, 당신의 커피 타임은 훨씬 더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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