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양자역학, 펠드만, 그리고 백남준

by JUNSE


Sound Essay No.106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한다 : 양자역학, 펠드만, 그리고 백남준


바흐의 시계태엽을 멈추고, 확률의 구름(Cloud)과 피드백(Feedback)의 카오스로

ImageForArticle_88_17256255059219994 복사본.jpg 출처 : www.azoquantum.com

1. 시계태엽 우주의 종말 : 결정론에서 불확정성으로


오랫동안 인류는 우주가 정교한 시계태엽과 같다고 믿었습니다. 뉴턴의 물리학이 그랬고, 바흐(Bach)의 음악이 그랬습니다. 입력값을 알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는 세상. 바흐의 <푸가(Fugue)>가 주는 경이로운 안정감은 바로 이 '결정론적 세계관(Determinism)'에서 옵니다. 첫 마디의 규칙을 알면 마지막 마디의 질서를 예측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20세기, 이 견고한 믿음은 산산조각 났습니다. 물리학에서는 하이젠베르크(Heisenberg)가 "우리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을 동시에 알 수 없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고, 예술에서는 작곡가들이 오선지 위에서 예측 가능한 질서를 지우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바흐의 완벽한 성당을 걸어 나와,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카오스(Chaos)''확률(Probability)'의 숲으로 들어갑니다. 그곳에는 소리의 입자성을 탐구한 물리학, 존 케이지의 한계를 넘어서려 했던 몰턴 펠드만의 침묵, 그리고 기계와 인간의 경계를 허문 백남준의 비선형적 시간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2. 소리의 양자역학 : 가보르의 음향 양자(Acoustic Quanta)


우리는 흔히 "도(C) 음을 0.001초 동안 정확하게 연주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물리학적으로 이것은 불가능합니다. 1946년, 홀로그래피의 발명가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인 데니스 가보르(Dennis Gabor)는 하이젠베르크의 원리를 음향학에 적용해 충격적인 사실을 증명했습니다.


- 가보르의 한계 (Gabor Limit) : 소리의 '시간(지속 시간)''주파수(음높이)'는 양자역학의 위치와 운동량처럼, 동시에 정확하게 정의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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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지속 시간을 짧게 줄이면 주파수의 대역폭이 넓어질 수밖에 없다는 물리적 한계를 의미


- 시간을 짧게 자르면 주파수가 뭉개져서 '틱(Click)' 하는 소음이 되고, 음정을 명확히 하려면 시간이 길어져야 합니다.


즉, 미시 세계로 들어가면 소리는 명확한 점(Note)이 아니라, 확률적으로 존재하는 '소리 구름(Sound Cloud)'이나 '음향 입자(Grain)'가 됩니다. 이는 현대 전자음악의 기초인 '그래뉼라 신서시스(Granular Synthesis)'의 이론적 배경이 되었습니다. 현대 예술이 멜로디를 버리고 질감(Texture)과 노이즈에 집착하는 이유는, 그것이 소리의 물리적 실재(양자적 불확정성)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3. 존 케이지의 한계와 몰턴 펠드만의 '표류하는 시간'


현대 음악의 문을 연 존 케이지(John Cage)는 동양의 주역(I Ching)을 도입해 '우연성 음악'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방식은 동전 던지기나 주사위 굴리기처럼 주역의 심오한 변화 원리를 서구적인 '이진법적 난수 생성(Binary Random Generator)' 도구로 단순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케이지의 동료이자 뉴욕 악파의 거장 몰턴 펠드만(Morton Feldman)은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는 인위적인 우연 조작 대신, 소리 자체가 스스로 생성되고 소멸하는 '비결정적 시간'을 악보에 담았습니다.


- 그래프 기보법 (Graph Notation) : 그는 오선지 대신 모눈종이(Graph)를 사용했습니다. "높은 음역에서 대략 이만큼 연주하라"는 지시만 있을 뿐, 정확한 박자나 리듬은 연주자에게 맡겼습니다.


- 소리의 붕괴 (Decay) : 펠드만의 음악은 소리가 피아노에서 울려 퍼진 뒤 공기 중으로 사라지는 그 '잔향(Decay)'에 집중합니다.


이것은 양자역학의 '파동 함수 붕괴'와 닮아 있습니다. 관찰자(연주자)의 호흡에 따라 소리의 실재가 매 순간 다르게 결정됩니다. 펠드만의 음악에서 시간은 시계바늘처럼 똑딱거리지 않고, 안개처럼 표류(Floating)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억지로 만든 우연이 아니라, 자연계의 불확정성을 그대로 수용한 '무위(無爲)의 예술'이었습니다.


https://www.youtube.com/embed/A3mbFX-gx3Q?si=F7FU2VUv8T2IoPPj



4. 크리스티안 볼프와 양자 얽힘 (Quantum Entanglement)


또 다른 작곡가 크리스티안 볼프(Christian Wolff)'큐(Cue) 중심의 불확정성'을 통해 양자역학의 '양자 얽힘(Quantum Entanglement)' 개념을 음악적으로 구현했습니다.


그의 악보에는 고정된 박자가 없습니다. 대신 이런 지시가 적혀 있습니다.


"옆 사람이 연주하는 소리가 멈추면, 그때 당신의 소리를 시작하시오."


연주자는 자신의 악보만 보고 연주할 수 없습니다. 타인의 소리를 듣고 실시간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A라는 입자(연주자)의 상태가 결정되어야만 B라는 입자(연주자)의 상태가 결정되는 구조. 이는 두 입자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즉각적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양자 얽힘 현상과 완벽하게 대응합니다. 볼프의 음악은 미리 짜인 각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상호 의존적인 생명체'입니다.


https://www.youtube.com/embed/vBOBUiytcWo?si=V-Z8H_lqkSQi6uDv



5. 백남준 : 비선형성과 사이버네틱스의 카오스


음악가로 시작해 비디오 아트로 나아간 백남준(Nam June Paik)은 이 불확정성의 논의를 '기술(Technology)''시간(Time)'의 영역으로 확장했습니다. 그는 쇤베르크와 케이지를 깊이 연구했지만, 그들이 갇혀 있던 '서양적 시간관(선형성)'을 부수고 싶어 했습니다.


-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 : 백남준은 1963년 첫 전시에서 관객이 레코드판의 헤드를 마음대로 옮길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바흐의 음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듣는(Linear) 것이 아니라, 정보의 어느 지점으로든 즉시 도약할 수 있는 '비선형적(Non-linear) 시간'을 제시한 것입니다.


- 사이버네틱스와 피드백(Feedback) : 그는 비디오 신호가 카메라와 모니터 사이를 무한히 순환하며 기이한 형상을 만들어내는 '피드백(Feedback)' 효과를 사랑했습니다.


피드백은 수학적으로 '프랙탈(Fractal)'이자 '카오스(Chaos)'입니다. 출력값이 다시 입력값이 되고, 그 과정이 무한 반복되며 예측 불가능한 복잡성을 만들어냅니다. 백남준은 이 통제 불가능한 전자 신호의 춤을 통해, 뉴턴식의 결정론적 기계를 '생명력을 가진 유기체'로 변모시켰습니다. 그는 노이즈와 왜곡을 제거해야 할 오류가 아니라, 우주의 본질적인 에너지인 '엔트로피(Entropy)'로 받아들였습니다.


https://youtu.be/MuR1COC9he4?si=N1SaES8oG_TVX697&t=294



6. 확실하지 않기에 존재하는 것들


뉴턴과 바흐의 시대에 '불확정성'은 무능력이나 오류를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현대 물리학과 예술에서 불확정성은 '가능성(Possibility)'의 다른 이름입니다.


가보르의 소리 구름, 펠드만의 표류하는 시간, 볼프의 얽힘, 그리고 백남준의 비선형 피드백. 이들은 모두 "세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으며, 관찰하고 관계 맺는 순간 비로소 결정된다"는 양자역학적 진실을 예술로 번역한 선구자들입니다.


우리가 현대 예술을 접할 때 느끼는 당혹감은, 어쩌면 우리가 여전히 바흐 시대의 '안전한 질서'를 그리워하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합니다. 그리고 그 주사위가 공중에서 회전하고 있는 그 '알 수 없는 순간' 속에, 예술의 자유와 생명이 숨 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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