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멜로디만을 기억하는가

Sound Log No.2 | 음악 인식의 구조

by JUNSE


Sound Log No.2

우리는 왜 멜로디만을 기억하는가

Hearing the World | 음악 인식의 구조


사진 : Unsplash의 J


음악이 끝난 뒤, 우리는 무엇을 기억할까요?


대부분의 경우, 하나의 선율입니다.

화성의 세부 진행이나 공간적 잔향, 음색의 층위보다는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가 남습니다.


왜 그럴까요?



1. 멜로디는 구조적으로 '전면'에 놓여있다.


서양 음악 교육은 오랫동안 멜로디를 중심에 두어왔습니다.

조성 음악 체계에서 멜로디는 화성 위에 놓이고, 반주는 이를 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18–19세기 기능화성 체계는 중심음(tonic)을 설정하고, 긴장과 이완을 선형적으로 조직합니다. Heinrich Schenker의 구조 분석 이론 역시 음악을 심층 구조(Ursatz)와 표면 구조로 나누며 선율적 진행을 핵심으로 간주했습니다.


이 체계 안에서 음악은 자연스럽게 중심과 주변을 갖습니다.

멜로디는 전경이 되고, 화성과 리듬은 배경이 됩니다.



2. 뇌는 선율을 더 쉽게 기억한다

출처 : www.amazon.sg

인지과학에서도 선율은 기억에 유리한 구조를 갖습니다.


Daniel Levitin은 『This Is Your Brain on Music』에서 음악 기억이 패턴 인식과 반복에 크게 의존한다고 설명합니다. 멜로디는 상대적 음높이 간격(interval)과 반복 구조를 통해 인지적으로 압축됩니다.


또한 Dowling(1978)의 연구는 사람들이 절대 음정보다 상대적 음정 관계를 더 안정적으로 기억한다는 점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우리는 음의 ‘정확한 높이’가 아니라 ‘움직임의 패턴’을 기억합니다.


멜로디는 시간 위에 놓인 움직임입니다.

패턴을 가진 움직임은 기억에 남습니다.


반면, 음색의 미세한 변화나 공간적 확산은 정형화된 단위로 압축되기 어렵습니다.


기억은 구조를 선호합니다.



3. 멜로디 중심 구조는 자연법칙일까?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것은 신경학적 필연일까요, 아니면 문화적 훈련의 결과일까요.


중세 성가에서는 선율이 중심이었지만, 다성 음악(polyphony)이 등장하면서 음성 간 관계가 중요해졌습니다. 20세기 이후에는 리듬, 텍스처, 음색이 중심이 되는 음악이 확장되었습니다.


이아니스 크세나키스(Iannis Xenakis)는 확률과 밀도 개념을 통해 음향 덩어리를 구성했고,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는 위상 이동(phasing)을 통해 반복 구조를 재해석했습니다. 이 구조 안에서는 단일 선율이 중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중 음악과 교육 시스템은 여전히 멜로디 중심입니다.


우리는 흥얼거릴 수 있는 것을 ‘노래’로 인식합니다.


즉, 인지 구조와 문화 구조가 겹쳐지면서

멜로디는 중심의 자리를 공고히 합니다.



4. 멜로디를 지우려 했던 순간

'Jin-yang for Flute, Violin, Tuba, Contrabass and Percussions '(2016)

저는 작업에서 의도적으로 멜로디를 배제하려합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의 제 작업은 멜로디를 가지지 않습니다.(그럼에도 사람은 의식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어 기억하려합니다, 이 이야기는 다음에 다뤄보겠습니다.)


리듬과 음색의 층만으로 곡을 구성하는 것을 방법적으로 채택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청자는 그 구조를 이해하기 어려워했습니다.


“후렴이 어디인가요?”

“기억에 남는 부분이 없어요.”


저는 의도적으로 멜로디를 만들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번 제 생각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멜로디는 단지 음악적 선택이 아니라,

'기억'만을 위한 장치라는 것을 말이죠.


그러나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만약 우리가 다른 어떠한 '구조'를 반복적으로 경험한다면,

기억의 방식도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5. 위계를 재설계할 수 있을까?


멜로디가 중심이 된 것은

물리적 필연과 문화적 학습이 결합된 결과입니다.


그러나 중심은 절대적인 것이 아닙니다.

설계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음색을 중심에 두는 음악,

공간적 울림을 중심에 두는 음악,

밀도와 질감을 중심에 두는 음악.


이런 구조가 반복되고 교육된다면

우리가 기억하는 방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세계는 듣는 방식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음악 내부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멜로디는 중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것은 자연이 아니라 설계의 문제일지도 모릅니다.


Sound Log는 이 위계를 해체하는 대신,

다시 배치하는 방법을 탐색하려 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우리는 왜 소리를 ‘배경’이라고 부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