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nd Log No.1 | 감각의 위계에 대하여
Sound Log No.1
카페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종종 이런 말을 듣습니다.
“배경음악이 좋네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잠시 멈추게 됩니다.
소리는 정말 ‘배경’에 있을까요. 아니면 우리가 그렇게 부르기로 익숙해진 것일까요.
이 질문은 단순한 표현의 문제가 아닙니다.
어떤 감각을 중심에 두고, 어떤 감각을 주변으로 밀어내는가에 대한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배경(background)’이라는 개념은 회화에서 비롯됩니다. 르네상스 이후 원근법(perspective)은 전경과 후경을 명확히 구분하는 공간 질서를 확립했습니다. Leon Battista Alberti는 회화를 “열린 창”에 비유하며, 하나의 고정된 시점에서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제시했습니다.
이 시각 중심 구조는 근대적 인식 체계의 토대가 됩니다.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은 인쇄술 이후 인간의 지각이 시각 중심으로 재편되었다고 설명합니다. 문자는 선형적이며, 시각은 위계를 만듭니다. 무엇이 앞에 있고 무엇이 뒤에 있는지를 구분합니다.
이 질서는 자연의 결과라기보다, 문화적 선택의 축적입니다.
감각의 위계는 그렇게 형성됩니다.
우리는 흔히 시각은 공간적이고 동시적이며, 음악은 시간적이고 선형적이라고 대비합니다. 악보는 좌에서 우로 읽히고, 음은 순차적으로 배열됩니다. 시작과 끝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음향학적으로 소리는 항상 공간 안에서 동시에 존재합니다. 화음은 동시적으로 울리고, 잔향은 과거의 소리를 현재로 끌어옵니다. 우리가 듣는 현재는 여러 시간층이 겹쳐진 결과입니다.
신경과학에서도 청각 인지는 단순한 직선적 입력이 아닙니다. Albert Bregman의 ‘청각 장면 분석(Auditory Scene Analysis)’ 이론에 따르면, 우리는 연속적 소리를 묶어 하나의 사건으로 조직합니다. 이는 듣기가 순차적이면서도 동시에 구조화된 인지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현대 미술과 현대 물리학은 이미 공간과 시간의 절대성을 해체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시간과 공간을 분리된 실체가 아니라 ‘시공간’으로 통합했습니다. 절대적 앞과 뒤, 중심과 주변은 관찰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렇다면 음악만을 선형적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전경과 배경의 구분은 감각의 본질이라기보다, 우리가 세계를 조직하는 방식일 가능성이 큽니다.
인지과학은 인간의 뇌를 ‘예측 기계’로 설명합니다. Karl Friston은 이를 ‘예측 코딩(predictive coding)’ 이론으로 정리했습니다. 반복적이고 예측 가능한 자극은 점차 신경 반응이 감소합니다. 이를 ‘습관화(habituation)’라고 합니다.
Colin Cherry의 ‘칵테일 파티 효과’ 연구는 우리가 복잡한 환경 속에서도 특정 소리에 선택적으로 집중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동시에 선택되지 않은 소리는 의식의 뒤로 물러납니다.
즉, 배경은 소리의 속성이 아니라
주의의 결과입니다.
그러나 이 신경학적 기제가 곧 감각의 위계를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뇌의 작동 방식과 사회적 구조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몇 년 전 믹싱 작업 중, 이유 없이 저역이 흐릿하게 느껴진 적이 있습니다. 스피커와 룸 어쿠스틱을 점검했지만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야 창밖 윗집 에어컨 실외기의 낮은 진동이 공간에 스며들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소리를 이미 ‘배경’으로 분류해 두고 있었습니다.
존재하지만 고려하지 않는 층으로 밀어둔 것입니다.
그 경험 이후로 저는 ‘배경’이라는 단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설계자의 입장에서 보면, 배경은 제거해야 할 잉여가 아니라 조율해야 할 요소입니다.
공간은 시각적으로만 설계되지 않습니다.
공간은 청각적으로도 설계됩니다.
이 글들은 감각의 위계를 비판하기 위한 기록이 아닙니다.
그 위계를 넘어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기 위한 기록입니다.
우리가 소리를 배경이라 부르는 순간,
공간의 절반은 설계되지 않은 채로 남습니다.
그러나 듣는 방식을 바꾸면
공간의 구조는 달라집니다.
도시의 의미는 달라집니다.
경험의 질은 달라집니다.
세계는 듣는 방식에 따라 재구성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