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무엇을 해야하나?
Sound Essay No.10
버튼 하나만 누르면 몇 초 만에 바흐 풍의 푸가, 트래비스 스캇 스타일의 힙합 비트, 영화의 한 장면을 위한 장엄한 오케스트라 스코어가 쏟아져 나오는 시대. 2025년 9월 현재, Suno와 Udio의 후속 모델들이 생성해내는 음악의 퀄리티는 이제 어지간한 스톡 뮤직 사이트의 아성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이 경이로운 기술의 발전 앞에 많은 창작자들이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실존적 불안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불안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우리는 AI의 화려한 결과물 뒤에 숨겨진 작동 원리, 그 본질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AI는 기존에 존재했던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하고, 그 패턴을 분석하여 가장 그럴듯한 결과물을 ‘재조합(Recombination)’해내는, 역사상 가장 뛰어난 모방꾼이자 편집자입니다. 즉, ‘있던 것들’을 가장 세련되고 효율적으로 조합하는 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왜 지금 이 작업을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의도(Intention)’와 ‘목적(Purpose)’을 스스로 설정할 수는 없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AI 시대의 창작자는 ‘AI를 이기는 인간’이 되기 위해 기술과 경쟁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AI를 가장 잘 활용하는 창의적인 인간’, 즉 AI라는 가장 강력한 신입사원을 부리는 유능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역할의 핵심은 기술 숙련도가 아닌,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과 ‘왜?’라는 질문에 있습니다.
2025년 현재 크리에이티브 업계의 가장 큰 이슈 중 하나는 바로 ‘AI 저작권 대전(The Great Copyright War)’의 여파입니다. 작년부터 이어진 거대 음반사들과 AI 개발사들 간의 지리한 법적 공방은 결국 ‘정화된 데이터(Sanitized Data)’로만 학습된 AI 모델의 등장을 촉발시켰습니다. 이제 상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AI 작곡 툴들은 저작권 분쟁의 소지가 없는 로열티 프리 음원이나, AI 생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데이터셋만을 학습합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기술적으로는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비슷비슷하고 아무런 감흥을 주지 못하는 ‘영혼 없는 음악’의 대량 생산입니다. 인간의 희로애락, 사회적 분노, 시대정신이 담긴 위대한 명곡들을 학습하지 못한 AI는 그저 듣기 좋은 배경음악, 기능적인 효과음의 생산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최근 유튜브나 틱톡의 배경음악들이 다 그게 그거처럼 들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럴듯하지만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는, 휘발성 강한 데이터의 복제품일 뿐입니다.
이는 AI의 명확한 한계를 보여줍니다. AI는 ‘펑크 록’의 사운드를 흉내 낼 수는 있지만, 기성세대에 대한 분노와 사회적 저항이라는 ‘펑크 정신’을 스스로 만들어낼 수는 없습니다. AI는 ‘블루스’의 스케일을 완벽하게 연주할 수는 있지만, 목화밭의 노동과 인종 차별의 설움이라는 ‘블루스적 경험’을 체화할 수는 없습니다. 모든 위대한 창작은 기술적 완벽함이 아니라, 그것을 낳은 시대적, 개인적 ‘맥락(Context)’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맥락을 부여하는 것은 오직 인간의 몫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인간 창작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바로 AI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 ‘의도’와 ‘목적’을 설계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AI가 훌륭한 연주자이자 조수라면, 인간은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이자,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을 책임지는 총괄 기획자가 되어야 합니다.
AI는 “슬픈 분위기의 피아노 연주곡을 만들어줘”라는 명령에 훌륭하게 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랜 시간 키우던 반려견을 떠나보내고, 텅 빈 집에 혼자 돌아왔을 때의 상실감과 고마움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는, 너무 무겁지 않으면서도 담담한 피아노 연주곡”이라는 구체적인 의도를 먼저 설정하는 것은 인간입니다. 이 섬세한 프롬프트는 단순히 ‘슬픔’이라는 단어로는 설명될 수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깊은 사유에서 비롯됩니다.
2025년 현재, 가장 유능한 크리에이터들은 코드를 짜거나 악기를 연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이처럼 자신만의 철학과 경험을 AI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프롬프트)로 정교하게 번역해내는 ‘AI 디렉터(AI Director)’들입니다. 그들은 AI를 창작의 도구를 넘어, 자신의 창의적 비전을 실현시켜 줄 가장 효율적인 파트너로 활용합니다.
영화음악 감독은 더 이상 밤새 악보를 그리며 데모 음악을 만들지 않습니다. 대신 현장에서 감독과 논의하며 “존 윌리엄스의 웅장함에 한스 짐머의 미니멀한 전자 사운드를 섞고, 엔딩 크레딧에서는 약간의 희망을 암시하는 선율로 변주해 줘”라고 AI에게 실시간으로 디렉팅하며 최적의 결과물을 찾아냅니다. 3일 걸릴 작업이 30분으로 줄어듭니다.
1인 게임 개발자는 더 이상 값비싼 사운드 라이브러리를 구매하지 않습니다. “게임 속 ‘슬라임’ 몬스터가 맞을 때 나는 소리인데, 너무 아프지 않게 젤리처럼 터지는 느낌으로 100가지 버전을 만들어줘”라고 AI에게 주문하여, 게임 월드의 몰입감을 극대화합니다. 이전에는 거대 스튜디오만 가능했던 사운드 디자인의 개인화가 가능해졌습니다.
광고 음악 프로듀서는 클라이언트 앞에서 “이 제품의 ‘혁신성’이라는 키워드를 소리로 표현한다면, 어떤 소리가 떠오르시나요?”라고 묻고, 그 자리에서 즉시 여러 버전의 사운드 로고를 생성하여 들려주며 아이디어를 구체화합니다. 추상적인 아이디어가 즉각적인 소통의 도구가 됩니다.
이 모든 과정의 중심에는 ‘AI를 어떻게 다루는가’가 아닌, ‘나는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라는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기술은 끊임없이 변하고, 오늘 우리를 흥분시켰던 새로운 기술은 내일이면 낡은 것이 됩니다. 하지만 수천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사람’은 ‘사람’의 이야기에 마음이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기술적으로 완벽한 결과물에 감탄할 수는 있지만, 진정으로 우리의 삶에 들어와 기억에 남고, 위로를 주는 것은 그 안에 담긴 ‘사람’의 흔적, 즉 불완전하고 서툴지만 진솔한 감정과 경험입니다.
AI는 실연의 아픔을 학습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겪을 수는 없습니다. AI는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할 수는 있지만, 그에 대한 분노를 느낄 수는 없습니다. AI는 자식의 첫걸음마를 보며 느꼈던 벅찬 감동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결국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공감의 영역은, 기술이 아닌 경험의 영역에 속해 있습니다.
따라서 AI 시대의 창작자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는 단 하나입니다. 바로 나만의 ‘의도’를 갖는 것, 내 작업에 고유한 ‘목적’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왜 이 소리/음악을 만드는가?
이 소리/음악을 통해 세상에 어떤 경험을 선사하고 싶은가?
당신의 경험이 어떻게 이 소리/음악에 영향을 미치길 원하는가?
Sound Foundry & Co.는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 아닙니다. 우리는 기술을 가르치기 전에, 당신이 자신만의 목소리와 철학을 찾도록 돕습니다. 당신의 ‘왜?’가 분명해질 때, AI는 당신을 위협하는 경쟁자가 아니라, 당신의 위대한 비전을 실현시켜 줄 가장 강력하고 충실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결국, AI는 답을 주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의 위대한 질문을 기다리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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