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취향과 미적 기준에 대하여
Sound Essay No.11
“이 음악은 좋다”, “이 소리는 별로다”. 우리는 공기를 들이마시듯 자연스럽게 소리에 대한 호불호를 말합니다. 깨끗하고 명료한 고음질의 사운드를 ‘좋은 소리’로, 거칠고 불쾌한 노이즈를 ‘나쁜 소리’로 규정하는 암묵적인 기준 속에서 살아가죠. 하지만 정말로, 절대적으로 ‘좋은 소리’라는 것이 존재할까요? 만약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음악은 비슷한 소리로 수렴되어야 마땅할 텐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절대적으로 좋은 소리’라는 개념은 게으른 감상자들이 만들어낸 허상에 가깝습니다. 물론 개인의 취향은 존재합니다. 하지만 창작의 영역에서 소리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은 ‘음질’이나 ‘음색’ 같은 단편적인 요소가 아니라, 그 소리가 놓인 ‘맥락(Context)’과 그것을 배치한 창작자의 ‘의도(Intention)’에 달려있습니다. 단어 하나만으로는 문장의 의미를 온전히 알 수 없듯, 소리 역시 앞뒤 전후의 맥락 속에서 비로소 그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드러냅니다.
부조화의 조화: 걸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한국 영화사의 가장 위대한 장면 중 하나로 꼽히는 이명세 감독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후반부 빗속 격투신을 떠올려봅시다. 억수같이 비가 쏟아지는 폐공사장, 두 남자가 생사를 걸고 진흙탕 속에서 처절한 몸싸움을 벌입니다. 시각적으로는 폭력과 비장함, 처절함이 극에 달한 순간입니다. 그런데 이 지옥 같은 풍경 위로, 감미롭운 멜로디의 우아한 Bee Gees의 ‘Holiday’가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흘러나옵니다.
만약 이 장면의 음악을 의뢰받은 신입 작곡가가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그는 아마 ‘폭력적인 장면에 어울리는’ 웅장하고 비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나, 심장을 쪼이는 긴박한 전자음악을 만들었을 겁니다. 상식적으로 그게 ‘좋은’ 선택이니까요. 하지만 이명세 감독은 그 상식을 배반하는, 어쩌면 최악처럼 보이는 선택을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최악의 선택’이 이 장면을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걸작의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이 극심한 부조화는 관객의 뇌에 강력한 ‘인지 부조화’를 일으킵니다. 눈으로 들어오는 폭력적인 정보와 귀로 들어오는 평화로운 정보가 충돌하면서, 관객은 이 기묘한 상황을 해석하기 위해 장면에 더욱 깊이 몰입하게 됩니다. 음악은 더 이상 액션을 설명하는 배경이 아니라, 이 폭력이 얼마나 허무하고 서글픈 행위인지를 역설적으로 증언하는 또 다른 배우가 됩니다. 여기서 ‘Holiday’는 단순히 ‘좋은 노래’가 아니라, 감독의 의도 속에서 폭력의 본질을 꿰뚫는 ‘가장 적절하고 효과적인 소리’로 재탄생한 것입니다. 이처럼 창작자가 설계한 ‘맥락’은 소리의 가치를 완전히 재정의합니다.
이러한 ‘맥락의 마법’은 우리 주변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공포 영화 속 아이의 웃음소리: 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는 그 자체로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소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한밤중 불 꺼진 복도 끝에서 들려온다면 어떨까요? 그 소리는 순식간에 가장 소름 끼치는 공포의 상징이 됩니다. 소리 자체는 변하지 않았지만, 그것이 놓인 시간과 공간이라는 맥락이 그 의미를 180도 뒤집어 버린 것입니다.
로파이 힙합의 ‘나쁜’ 음질: ‘지지직’거리는 비닐 노이즈나 ‘히스’ 하는 테이프 잡음은 하이파이 오디오 애호가들에게는 제거해야 할 ‘나쁜’ 소리, 즉 결함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로파이 힙합이라는 장르 안에서 이 ‘결함’들은 아날로그 시대의 향수, 따뜻함, 진정성을 상징하는 가장 ‘좋은’ 질감(Texture)이 됩니다. 심지어 일부러 이런 노이즈를 찾아 덧입히기까지 하죠.
나인 인치 네일스(Nine Inch Nails)의 ‘소음’: 트렌트 레즈너는 쇠를 긁는 소리, 고장 난 기계음, 비명 같은 파열음 등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음’으로 분류할 법한 소리들로 음악을 만듭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다루는 산업 사회의 병폐, 인간 소외, 분노라는 주제의 맥락 안에서 이 소음들은 그 어떤 아름다운 멜로디보다 더 정확하고 강력한 표현 수단이 됩니다.
이처럼 소리는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주변 환경에 따라 의미와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과 같습니다. 어떤 소리와 함께 들리는지, 어떤 이미지와 결합하는지, 어떤 이야기 속에 놓이는지에 따라 무한한 가능성을 지니게 됩니다.
결국 사운드 디자인, 사운드 브랜딩, 작곡이라는 행위의 본질은 ‘좋은 소리’를 수집하고 나열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소리와 소리, 소리와 이미지, 소리와 이야기 사이의 ‘관계’를 설계하는 일입니다.
훌륭한 사운드 디자이너는 “이 소리가 좋은가?”라고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묻습니다.
“이 소리가 이 장면의 의도에 부합하는가?”
“앞선 소리와의 관계 속에서 이 소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이 소리의 등장이 관객의 감정선에 어떤 변화를 만들어내는가?”
이것은 단순히 개인의 취향을 넘어선, 치밀한 분석과 전략이 필요한 기획의 영역입니다.
위 내용처럼 모든 것은 상대적인 관점을 가지고 세상에 존재하게 됩니다. 이 상대적인 개념 조차도 인간의 기준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만 인지한다면,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을 조금 더 다른 관점에서 대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소리나 음악은 모두 보이지 않는 장르의 특성상 왜곡되고 오도되어질 가능성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가능성 또한 받아드리고 서로의 다름을 존중하고 배려한다면 그 어떤 논의도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Sound Foundry & Co.는 당신이 소리의 ‘좋고 나쁨’이라는 얄팍한 이분법을 넘어, 소리의 ‘의도’와 ‘맥락’을 읽어내는 깊이 있는 안목을 기르도록 돕습니다. 기술을 넘어선 통찰력으로, 세상에 없던 새로운 관계를 설계하고, 당신만의 기준으로 ‘좋은 소리’를 직접 창조해 보세요. 때로는 가장 완벽한 부조화 속에서 가장 위대한 조화가 탄생하는 법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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