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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소리 스코어링하기

일상에서 음악적 재료 만드는 법

by JUNSE

Sound Essay No.12

일상의 소리 스코어링하기

: 일상에서 음악적 재료 만드는 법


a-j-XHobt5FaqTo-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 J.


당신의 세상은 어떤 소리를 내는가


우리는 소리의 바다에 살고 있지만, 대부분은 그 소리들을 그저 '듣기만' 합니다. 아침을 깨우는 알람 소리, 커피 머신이 내는 낮은 진동,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가락의 리듬, 창밖을 스치는 구급차의 사이렌. 이 모든 소리는 공기처럼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대부분은 의미 없는 배경 소음으로 흘려보내죠. 하지만 창작자에게 세상은 거대한 악기이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사운드 라이브러리입니다. 그들에게 도시의 소음은 무질서한 혼돈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리듬과 멜로디, 질감으로 가득 찬 원석의 광산입니다.


이 글은 당신을 수동적인 청취자에서, 주변의 모든 소리로부터 의미와 질서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능동적인 '사운드 디자이너'로 이끄는 첫걸음이 될 것입니다. 전문가의 작업 방식이란 특별한 장비나 재능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듣는 '관점'을 갖는 것에서 출발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의 소리를 해체하고, 실험하고, 융합하는 과정을 통해 당신의 세상을 새롭게 '스코어링(Scoring)'하는 여정을 지금 시작합니다.



1단계 (분석): 익숙한 소리를 해체하고 낯설게 보기


irvin-zheng-vdAemdWTEaY-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Irvin Zheng


전문적인 사운드 디자인의 첫 단계는 '분석', 즉 익숙한 소리를 의도적으로 낯설게 만드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이는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가 로켓을 만드는 방식에서 차용한 '제1원칙 사고(First Principles Thinking)' 와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기존의 로켓은 비싸다"는 통념이나 유추에서 출발하는 대신, "로켓의 본질은 무엇인가? 어떤 금속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그 금속들의 시장 가격은 얼마인가?"라는 가장 근본적인 물리적 질문으로 돌아가 문제를 원점에서부터 재구성했습니다.


사운드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지하철 문 닫히는 소리'를 그저 '소음'으로 치부하는 대신, 제1원칙으로 돌아가 그 소리를 음향학적 속성으로 해체해 보는 것입니다. 공기가 빠져나가는 날카로운 고음역대의 '어택(Attack)', 경고음의 명확한 '리듬(Rhythm)', 묵직한 문이 닫히며 발생하는 '저음역대의 울림(Rumble)', 그리고 마지막 '철컥'하며 모든 움직임이 끝나는 짧은 '디케이(Decay)'. 이렇게 소리를 물리적 속성으로 해체하고 나면, 그것은 더 이상 소음이 아닌, 리듬과 질감, 음높이, 길이(ADSR Envelope)를 가진 명백한 '음악적 재료'가 됩니다.


지금 한번 시도해 보세요. 눈을 감고 1분간 주변의 소리를 들어보세요. 무엇이 그 소리를 '만들었는지'를 생각하는 대신, 소리 자체의 '특성'에 집중해 보세요. 날카로운가, 부드러운가? 긴가, 짧은가? 일정한 리듬이 있는가? 이러한 분석적 듣기야말로 모든 창작의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됩니다.



2단계 (실험): 재료를 비틀고 늘리며 가능성 탐구


bandlab-A12moMNQkUI-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BandLab


이렇게 분석된 재료를 가지고 우리는 이제 무한한 가능성의 놀이터에 들어서게 됩니다. 가장 직관적인 첫 실험은 '공간감(Reverb) 조작' 입니다. 스마트폰으로 카페의 소리를 1분만 녹음하고, 무료 프로그램(GarageBand 등)에서 '공간감' 효과를 깊게 걸어보세요. 바로 옆에서 들리던 현실의 공간이, 마치 깊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비현실적 공간으로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될 겁니다. 커피 머신의 스팀 소리만 잘라내어 긴 공간감을 더하고, 소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흐르게 '패닝(Panning)' 해보세요. 평범한 소음이 SF 영화의 효과음처럼 완전히 새로운 질감으로 재탄생합니다. 이 간단한 실험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소리를 직접 변형하며 '질감'을 다루는 감각을 익히는 것입니다. 물론 스마트폰의 마이크는 특정 음역대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분명합니다. 먼저 시도하고 다음 단계에 대한 목표가 설정되는 ‘콘덴서 마이크’를 활용해서 더욱 디테일한 감각의 영역으로 뛰어들어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이 감각을 익혔다면, 더 과감한 실험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제가 학생 시절부터 즐겨 하던 실험 중 하나는, 어떤 소리든 '최대한 길게 늘려보는 것' 이었습니다. 흘러가 버리는 1초짜리 소리를 1분, 10분으로 확장하면, 그 안에는 우리가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미세한 질감과 배음의 변화가 장엄한 풍경처럼 펼쳐집니다. 지금은 Paulstretch 같은 무료 소프트웨어로 누구나 쉽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how-serato-is-unlocking-a-new-chapter-in-samplings-history.jpg 출처 :The Fader.com 'How Serato is unlocking a new chapter in sampling’s history' 삽화


또 다른 강력한 실험은 '샘플링(Sampling)' 입니다. 다프트 펑크, 칸예 웨스트 같은 거장들은 기존 음악의 1~2초 남짓한 순간을 가져와 전혀 다른 맥락에 배치하고 변형함으로써 완전히 새로운 걸작을 탄생시켰습니다. 이는 단순히 '복사-붙여넣기'가 아닙니다. 원본 소스가 가진 시간, 장르, 감성의 맥락을 해체하고, 자신의 의도에 맞게 새로운 관계를 부여하는 고도의 '구조화' 작업입니다. 이처럼 기존의 것을 비틀고, 합치고, 변형하는 탐구를 시작했을 때, 우리의 감각은 폭발적으로 확장됩니다.



3. 융합: AI 시대, 인간 창작자의 새로운 역할


이제 우리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파트너를 손에 쥐었습니다. 바로 인공지능(AI)입니다. Lalal.ai나 iZotope RX 같은 AI 기반 툴은 도시의 소음 속에서 내가 원하는 특정 소리만 감쪽같이 분리해주고, Stable Audio나 Suno 같은 생성형 AI는 '비 오는 날 새벽의 차분한 도시 풍경' 같은 텍스트 설명만으로 새로운 사운드스케이프를 만들어줍니다. AI는 우리가 수집하고 분석한 일상의 소리들을 상상치도 못했던 방식으로 변형하고 조합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google-deepmind-cLx-ilXp_pI-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Google DeepMind


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가졌던 철학을 떠올리면 어떨까요? 그는 MP3 플레이어나 스마트폰을 발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기존에 있던 기술들을 '어떻게 인간에게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것인가' 라는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재해석하고 융합했습니다. AI 시대의 창작자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이와 같습니다. AI에게 '어떤 소리를 만들 것인가'를 지시하고, 그 결과물을 '어떤 맥락에 배치할 것인가'를 결정하며, 최종적으로 '어떤 감정을 전달할 것인가'를 책임지는 '의도 설계자'이자 '최종 편집자' 로서의 역할입니다. AI가 생성한 수많은 선택지 앞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취향,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최선의 '선택'을 하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 창작자의 고유한 가치입니다. AI는 데이터를 가졌지만, 인간은 '이야기'를 가졌기 때문입니다. 결국 인간이



당신의 일상을 '스코어링'하라


aisvri-GdK9beKk-ao-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aisvri


창의성이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마법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티브 잡스가 기존의 기술을 재해석했듯, 일론 머스크가 로켓의 본질을 파고들었듯,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끊임없이 질문하고 새롭게 바라보는 태도' 에서 시작됩니다. 이 태도는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자신의 분야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자 하는 모든 혁신가에게 필요한 핵심 역량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당신의 세상은 고유한 리듬과 멜로디, 질감으로 가득 찬 교향곡을 연주하고 있습니다. 그 소리들을 분석하고, 수집하고, 당신만의 의도를 담아 변형해 보세요. 당신의 일상을 '스코어링(Scoring)'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을 바꾸는 모든 위대한 창작의 첫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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