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와 침묵의 관계
Sound Essay No.13
방송계에는 ‘오디오가 1초라도 비면 방송 사고’라는 오랜 금언이 있습니다. 1초의 침묵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이 강박은, 잠시라도 시청자의 주의를 놓치면 채널이 돌아갈지 모른다는 현대 미디어의 불안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우리는 소음과 정보의 홍수 속에서 침묵을 견디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잘 만든 영화나 음악에서 ‘침묵’은 그 어떤 대사나 멜로디보다 강력한 언어가 됩니다. 무엇이 이 결정적 차이를 만드는 걸까요?
그것은 창작자가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 그리고 더 나아가 관객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에서 비롯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성숙한 디자인은 무언가를 더하는 행위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비워내는 용기를 통해 완성됩니다.
많은 사랑을 받았던 유튜브 채널 ‘오느른’의 편집 스타일에서 우리는 그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보통 영상에는 최소 세 가지의 정보 채널이 동시에 작동합니다. 감성을 자극하는 배경음악(BGM), 현장의 생생함을 전하는 배경음(Ambiance), 그리고 추가 정보를 제공하는 자막이죠. 대부분의 영상 크리에이터들은 이 세 가지를 화면에 최대한 욱여넣어야 시청자가 지루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오느른’의 영상은 종종 가장 강력한 무기인 BGM을 과감하게 멈춰 세웁니다. 그 고요의 순간, 시청자의 귀는 BGM이 비워낸 자리를 채우기 위해 본능적으로 다른 소리를 찾아 나섭니다. 바람에 나뭇잎이 스치는 소리, 장작이 타닥거리는 소리, 빗방울이 텐트 위로 떨어지는 소리. 우리는 그제야 영상 속 풍경에 온전히 집중하며, 제작자가 보여주고자 했던 그 순간의 ‘감각’에 동화됩니다. 이는 단순히 소리를 뺀 것이 아니라, 의도적으로 정보의 과잉을 막고 가장 중요한 것에 집중하도록 유도하는 고도의 디자인 전략입니다. 마치 어지러운 책상을 깔끔하게 정돈하여, 가장 중요한 서류 하나를 명확하게 전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정반대의 지점에는 ‘과잉 친절’이라는 이름의 강요가 존재합니다. 과거 50~60년대 한국의 신파극을 떠올려보면 쉽습니다. 화면 속 주인공이 이미 어깨를 들썩이며 세상이 무너져라 울고 있는데(시각 정보), 그 위에 전문 성우의 과장된 흐느낌(청각 정보)이 굳이 한 번 더 겹쳐집니다. 이는 관객의 감수성을 믿지 못하고 “자, 지금입니다! 지금 슬퍼하셔야 합니다!”라고 멱살을 잡고 감정을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대의 성숙한 관객에게 이런 방식은 감동이 아니라 오히려 거부감을 유발할 뿐입니다. 물론 당대의 관객들은 시각적인 언어를 전혀 받아들여본 적이 없기에 이러한 장치가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비슷한 방식의 강요가 지금 시대에도 과연 필요한 것일까요?
이러한 직접적인 표현의 폐해는 천만 관객을 동원한 두 편의 이순신 영화에서도 발견됩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마지막, 모든 전투가 끝난 뒤 부하 장수가 묻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 한 걸 후대 놈들이 알까요?” 그러자 다른 장수가 답하죠. “모르면 호로자식들이지.” 물론 통쾌한 대사입니다. 하지만 이 대사는 감독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주제 의식, 즉 ‘기록과 기억의 중요성’을 너무나 친절하게 요약 정리해 관객의 입에 떠먹여 줍니다. 이로 인해 관객이 영화가 끝난 뒤 곱씹어 보았을 ‘과연 우리는 그들의 희생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의 무게가 순식간에 가벼워져 버렸습니다. 관객이 스스로 사유하고 답을 찾아갈 기회, 그 여백의 공간을 창작자가 빼앗아버린 셈입니다. 직전의 표현들은 언젠가는 꼭 만나 뵙고 싶은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의 표현을 빌려 설명드렸습니다.
훌륭한 창작자는 침묵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침묵을 가장 중요한 창작의 재료로 사용합니다. 음악에서 쉼표(Rest)는 단순히 소리가 없는 구간이 아닙니다. 쉼표는 그 앞에 나온 소리의 여운을 남기고, 다음에 나올 소리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가장 적극적인 음악적 장치입니다. 최고의 기타리스트는 가장 화려한 속
주를 뽐내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연주를 멈추고 침묵을 연주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결국 디자인에서의 ‘절제’와 ‘비움’은 자신감의 표현이자, 관객에 대한 존중의 표현입니다. 내가 만든 이미지와 사운드, 그리고 배우의 연기만으로도 충분히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관객이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고, 해석할 수 있는 지적인 존재라는 믿음. 이 믿음이 있을 때, 창작자는 비로소 관객의 머릿속에 억지로 정보를 쑤셔 넣는 대신, 그들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머물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됩니다.
Sound Foundry & Co.에서 지향하는 창작 교육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에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소리를 채우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흩어져 있는 소리들의 관계 속에서 질서를 발견하고, 때로는 과감히 덜어냄으로써 더 깊은 울림을 만들어내는 설계의 ‘관점’을 훈련합니다. 이는 비단 음악이나 사운드 디자인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영화, 미술, 글쓰기 등 다양한 매체를 넘나들며 그 안에 숨겨진 창작자의 의도와 구조를 꿰뚫어 보는 ‘메타인지’를 향상시키는 훈련입니다. 당신의 창작물이 세상을 향해 진정한 울림을 주길 원한다면, 이제 무엇을 더할지가 아니라 무엇을 비워낼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