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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스럭 Feb 15. 2020

게이세이 본선 토막글


나리타공항에서 게이세이 본선을 타고 시내로 간다. 일본에 도착해 시내로 이동할 때마다 창밖으로 지나가는 가정집들 구경하는 게 참 좋다.

컨베이어 벨트에 올려진 레고 모형처럼 창밖으로 풍경이 흘러간다. 이층집과 연립주택들은 하얀 햇빛과 맞닿아 평면이 된다. 옛날 컴퓨터에서 그림판에서 커서를 가져다가 도형을 정교하게 이어 붙여 그린 듯한 질감이다. 어렸을 때 큼지막한 팝 아트 그림책에서 봤던 에드 루샤나 앨런 다르칸젤로의 작품 같기도 하다.

가정집 건축에 쓰이는 라벤더, 녹차색, 베이지색, 크림색처럼 은은한 톤은 창가마다 걸려 있는 네모진 가타카나 간판들과 잘 어울린다.


어느새 주택 밀집 지역을 떠나왔는지 텅 빈 들판이 펼쳐진다. 정사각형에 가까운 대형으로 떼지어 새들이 날갯짓하고 있다. 새들이 푸드덕거리며 방향을 바꿀 때마다 날개에 흐르는 햇빛에 눈이 부시다. 공기에 바늘구멍을 다다다 뚫어놓고 그 구멍을 통해 빛을 이리저리 흘리는 모양새였다.


그러던 햇빛은 창문을 통해 들어와 맞은편 앉은 남자의 갈색 구두 위에서 춤을 춘다. 바로 어제 산 것처럼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멋진 구두다. 관리가 아주 까다로울 것 같다. 저렇게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들은 남의 신발을 볼 때도 속으로 혀를 차면서 저렇게 관리하면 안 되지, 하지는 않을까?

구두 주인은 피곤해 보인다. 기차가 흔들리는 대로 이리저리 고개를 떨구면서 잠을 잔다. 외근이라도 다녀오는 중인지 근사하고 슬림한 남색 정장을 위아래로 맞춰 입고 회색 코트를 덧입었다. 핸드폰 케이스도 남색으로 색을 맞췄다. 마스크 위로 턱을 괴고 잔다. 코트 소매의 단추는 촘촘하게 간격이 좁고 네 개.

일본의 가정집 건축도 사람으로 따지면 용모가 아주 단정한 사람일 것이다.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할 게 분명하다. 네모반듯하고 예쁜 건축 속에 들어가 살게 되면 나로서야 열심히 맞춰가려 하겠지만 알게 모르게 하우스메이트들에게 제대로 좀 하라는 부담의 시선을 느낄 것 같다.

파도처럼 하얀 햇살을 뚫고 기차는 계속 달린다. 창밖으로 계속 건물들이 쭉쭉 지나간다.

들판에 모두부를 그대로 엎어 높은 듯한 질감과 색감의 네모 건물. 한정판 레고 블록으로 조립한듯한 연한 터키색 지붕의 가정집.
맞은편 동그란 안경을 쓰신 일본인 할머니는 연신 디너쇼 팜플렛으로 부채질을 하시는 중이다.
이제 가츠타다이라고 한다. 환승까지 네 정거장 남았다. 슬슬 배가 고파진다. 아침 일곱 시에 인천공항에서 샌드위치 하나 사 먹은 후로 빈속이다. 창밖으로 느릿느릿 하루 스케줄 준비를 하는 새벽 비행장에 주황빛 조명이 빛나는 걸 보면서 천천히 커피를 마셨었다. 그 모든 순간은 바다 건너편에 두고 구름을 헤치고 날아와 이제는 섬나라 위를 달리고 있다.


아주 큼지막한 비틀즈 벽화가 그려진 주택을 지나친다.
집주인의 숙원사업인 걸까? 저 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비틀즈를 좋아할까?

입주민들을 매카트니 파와 레논파로 갈라놓고 반상회를 하는 상상을 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햇빛이 좋을 것 같으니까 신미술관의 터키색 오묘한 유리벽이 잘 찍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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