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마트를 보며 느낀 점
현대차와 기아차가 경쟁사인 듯 경쟁사가 아닌 것처럼(feat.현기차), 이제 배달의민족과 요기요는 경쟁사라고 하기에 애매한 관계가 되었다.(feat.딜리버리히어로) 그럼 이제 다음 수순이 보인다. 새로운 경쟁자를 정하고 진격하는 것. 그렇다면 배민의 새로운 경쟁자는 누가 될까? 힌트는 바로 배민에서 밀고 있는 이 광고가 아닐까?
쿠팡과 이마트를 동시에 저격하는 기백이 느껴진다. 올해, 아니 작년 쿠팡의 신규 배달 서비스 쿠팡이츠의 공격적인 행보에 신경전을 벌이던 게 불과 얼마 전 일인데, 광고를 보니 이제 전세가 역전되어가는 느낌이 든다. 더구나 시기가 미묘하다. 광고가 본격적으로 나온 시점이 딜리버리히어로에 배민이 인수된 시점과 묘하게 겹친다. '쿠팡이고 이마트고 간에 일단 각 잡고 있어'라는 식의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 배민의 새로운 광고, 그 주인공이 b마트라는 점은 주목해 볼만한 점이 있는 것 같다.
광고를 보고 흥미가 생겨 b마트 주문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배민 앱을 켜니 과연 메인에 b마트 4,000원 할인 쿠폰 배너가 걸려있다. 저녁을 먹고 입이 심심하던 차에 마침 잘됐다 싶어 하겐다즈 파인트를 하나 주문해보기로 했다. 일단 b마트 메뉴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앱 업데이트가 필요했다. b마트 외에 다른 메뉴는 업데이트 없이 사용 가능한 걸로 봐서 b마트 관련 업데이트로 보였다.
이 부분은 조금 번거로웠지만, b마트를 별도 어플로 만들지 않고 배달의민족 안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포함시킨 건 괜찮은 선택 같았다. 쿠팡이 쿠팡이츠를 별도의 분리된 앱으로 뺀 사례에서 교훈을 얻었는지, 배민은 별도의 앱을 두지 않고 배달의민족 플랫폼 안에 하나의 메뉴로만 구성하는 좀 더 영리한 전략을 취한 것으로 보였다. 배달의민족 트래픽을 최대한 끌고 가면서 b마트를 키우겠다는 이런 전략에서 향후 b마트의 성장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마트에서 직접 주문을 해보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b마트가 상당히 큰 그림일 수도 있겠다는 점이었다. b마트의 UI와 UX를 보면 배달의민족의 UI와 UX와 미묘하게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디자인이 동일하기 때문에 쉽게 눈에 들어오지는 않지만, b마트는 확연히 배민보다 검색에 중심을 둔다. 배달의민족 UI, UX가 제안과 추천 중심의 구성이라면, b마트는 필요한 물건에 대한 검색과 주문에 보다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보다시피, 배달의민족에서는 검색창이 진입 화면에서 감춰져 있다. 스크롤을 해야 나타난다. 결국, 플랫폼에서 그럴듯한 선택지들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메뉴와 음식점을 제안한다. 반면, b마트는 헤드에 검색 아이콘이 있다. 필요한 물건을 최대한 빠르게 구매하고 받아볼 수 있는 것이 좀 더 중요한 포인트가 된 느낌이다.
지금은 b마트가 배달의민족 어플 안에 하나의 카테고리로 구성돼 있지만, b마트의 UI와 UX를 보니, 결국 b마트는 배달의민족과 분리될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b마트의 속마음은 결국 배달이 아니라 물류와 유통에 있지 않을까?
사실, 딜리버리히어로의 경우 배민 인수전부터 요기요를 통해서 편의점 배달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밀어왔다. 소량의 상품을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배달해 준다는 점에서 요기요의 편의점 배달 서비스는 b마트와 비슷한 콘셉트다. 하지만, 기존의 편의점 인프라가 물류와 유통 부분을 담당하기 때문에 요기요의 역할에 있어 한계가 명확했다. 요기요가 차후 편의점 외에 마트로까지 제휴를 확장한다고 해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가질 것으로 보인다.
반면, 배달의민족은 요기요와 달리 제휴가 아닌 직매입을 통해 자체적으로 b마트를 운영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실제로 배달의 민족은 서울 곳곳에 소규모 물류창고를 매입하고 있다.
B마트는 즉석식품과 생필품을 30분 내 배송하는 서비스로, 지난해 12월 배달의민족 사옥이 있는 서울 송파구에서 베타 서비스 '배민마켓'으로 출발했다. 지난 7월에는 이를 서울 강남구, 서초구, 용산구와 중구, 영등포구와 구로구 등으로 확대했고, 연내 서울 전역에서 서비스된다. B마트는 배달의민족이 직매입해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위해 지역별로 작은 물류창고를 마련했다. 편의점과 제휴보다 직접 차입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해서다. 창고에서 지름 3km 이내의 지역에 즉시 배달하는 것이 B마트의 전략이다. 기존 마트와 달리 배송 트럭이 아닌 이륜차로 배달한다. <파이낼셜뉴스 2019. 11. 22>
어쩌면, 배달의민족은 배달 너머의 무엇을 꿈꾸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성급한 판단일 수 있지만, 배달의민족 역시 결국 쿠팡처럼 자체 SKU와 관리시스템을 구축하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시점이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b마트가 깜짝 성공을 거둔다면 b마트는 자연스레 배달의민족에서 떨어져 나와 독립된 서비스로 진화해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배달의민족이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되면서 '배신의민족', '게르만민족' 같은 우스갯소리부터 배달시장의 독과점 우려까지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 같다. 5조에 육박하는 회사 가치를 인정받았지만, 대중의 시선은 아무래도 독일 기업에 인수된 모양새에 대해 부정적인 쪽이 우세한 것 같다. 좀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배민의 이번 인수건을 어느정도 긍정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이 부분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뭔가 챙겨보겠다 보다는 뭔가 보여주겠다
이번 배달의민족 인수 건은 엄밀히 말해 엑싯이라고 볼 수 없다. 지분 스왑 형태의 인수로, 배민의 경영진은 딜리버리히어로의 주식을 받는다. 그리고 배민 대표가 딜리버리히어로의 주요 경영진으로 참여한다. 만약 배민 대표가 딜리버리히어로에서 뭔가 보여주지 못하면, 최종적으로는 실패한 엑싯이 될 수 있다. 결국 더 큰 물에서 뭔가 더 큰 걸 보여주겠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섣부른 해석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이번 배민 인수는 배달 시장만을 위한 인수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뭐, 굳이 한국 시장 배달 서비스 1,2,3위를 다 먹는 것보다는 더 큰 의도와 그림이 이번 인수에 있지 않을까?
어쩌면, 딜리버리히어로의 배달의민족 인수에서 주목할 부분은 배달이 아닌 배달 너머의 것이 아닐까?
딜리버리히어로의 인수 직후 공격적으로 집행되는 b마트의 광고는 마치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있잖아,
요기요는 애초부터
우리의 경쟁상대가 아니었어...
그러니까 사실 우리 상대는 말이야...
물론, 그러기 위해서 배달의민족에 가장 필요한 건 '쩐', 다름 아닌 투자금일 것이다. 직매입 구조로 가기 위해서는 엄청난 자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딜리버리히어로의 주요 자금줄이 아프리카의 소프트뱅크로 불리는 남아공의 네스퍼스라는 점은 뭔가 재밌는 구석이 있다. 텐센트 최대주주로 유명한 네스퍼스라면, 소프트뱅크 못지않은 배경이 아닐까? 아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b마트의 향후 행보가 궁금해진다. 과연 b마트는 배달의민족의 큰 그림이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