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은 회기역에서 문산행 열차를 기다릴 때의 마음가짐에 관하여
일하는 곳이 구로에서 강남으로 바뀌면서 경의중앙선을 타야할 일이 많아졌다. 구로로 출퇴근을 할 때는 1호선을 타고 신도림역에서 환승을 하는 것이 고역이었다. 뭐랄까 출퇴근 시간의 신도림역은... 내가 스스로 걷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사람들에 떠밀려 흘러다닌다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하나... 여튼, 그건 매우 피곤하고 견디기 힘든 경험이었다.
강남으로 출퇴근을 하게 되면서, 신도림역에서의 환승과 같은 극한 체험에서 이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지만, 벗어나고 보니 또 새로운 문제가 생겼다. 분당선을 타기 위해 왕십리역에 갈 때나, 혹은 반대로 왕십리역에 내려 회기역에 올 때나, 경의중앙선을 타야 하는데, 이 경의 중앙선 배차 간격이 너무 들쭉날쭉 해서, 한 번 열차를 놓치거나 하면 꼼짝없이 일이십분을 플랫폼에서 허비해야 하는 일이 생긴 것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서 플랫폼에 도착했는데, 열차가 문을 닫고 출발하고 있다거나, 혹은 플랫폼의 전광판에 열차가 7전역이라는 안내가 나오고 있다거나 할 때마다, 왜 왕십리는 이렇게 집값이 오를 수 밖에 없었는가를 절절히 이해하며, 나는 나의 잘못된 부동산 투자에 대해 분노를 감출 수 없는 심정이 되곤 했다...
그러다가 얼마전에 하루키의 글을 읽었는데, 이 글을 읽고 생각을 고쳐먹게 됐다. 간발의 차로 경의중앙선 열차를 놓쳤을 때나, 혹은 그와 비슷한 경우와 마주쳤을 때 많은 참고가 될 것 같다.
이건 사랑과는 무관하지만, '그런 거지 뭐' '그래서 뭐', 이 두 가지는 인생의 (특히 중년 이후의 인생의) 양대 키워드이다. 경험으로 말하는데, 이 두 가지만 머리에 잘 새기고 있으면 인생의 시련 대부분을 큰 탈 없이 이겨낼 수 있다. 예를 들어 역에서 숨을 헉헉거리며 플랫폼 계단을 뛰어올라 갔는데 간발의 차로 전철 문이 닫히면 엄청나게 화가 난다.
이럴 때 '그런 거지 뭐'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즉 전철 문이라는 것은 대개 눈앞에서 닫히는 법이라고 인식하고 또 수긍하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면 그다지 화가 나지 않는다. 세계는 그 원칙에 따라 가야 할 방향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무라카미 하루키 "사랑에 빠지지 않아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