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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히키코모리로 살아온 몸

by 녹음노동자

나는 긴 시간은 아니지만 히키코모리를 살아간 경험이 있다. 히키코모리란?


히키코모리의 주요 기준 (절대적이지 않음 주의)

사회적 고립 기간: 6개월 이상 사회 활동을 하지 않고 은둔합니다.

활동 영역: 집이나 방과 같이 한정된 공간에 머무릅니다.

대인 관계: 가족 외의 타인과의 관계가 거의 단절됩니다.

사회 참여 회피: 학교나 직장, 사회적 모임 등을 현저히 피합니다.

외출 유무: 외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생필품 구매나 취미 활동을 위해 짧게 외출하는 경우도 포함됩니다.


지금은 정신적으로 건강한 반자발적 히키코모리로 살아가고 있다. 인간 생각이 많은 동물이다. 걱정이 없으면 만들어서 하는 것이 인간이다. 이런 걱정은 원시시대에 강한 동물의 위험으로부터 생존하기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현대에서 우리는 위험한 동물의 위협을 받고 살지는 않지만 그 본능만큼은 남아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남아 있는 많은 생각과 걱정은 현대사회에 있어서는 무기력과 우울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살면서 내가 이런 느낌을 경험한 것은 영화일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영화일을 할 때만큼은 나 스스로가 직업에 자부심을 가질 수가 있었지만 촬영이 끝나고 일이 없을 때 나는 백수와 다름이 없었다. 일이 끝나면 시간이 많아지고 자연스럽게 혼자 생각하는 시간도 많아진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답이 없는 생각들은 자연스럽게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먼 미래는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 아무리 우려해도 아무런 답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무력감과 우울감으로 이어지게 되어 있다. "우산 미리 피지 않을 것" 비가 오지도 않는데 우리는 우산을 피고 다니는 사람들을 보면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할지 모른다. 특히 금전적으로 힘들수록 사람은 쉽게 불안감을 느끼게 되어있다. 일단 돈이 없다면 쉽게 편의점 음식, 도시락, 라면 같은 것을 먹게 되어있다. 요리해 먹을 기력도 없는 사람이 그것을 치울 리 없다. 침대 옆에 놓아둔 쓰레기들은 하루, 이틀 지나면서 쓰레기 산을 이루기 시작한다. 나는 단지 치우기 귀찮고 스스로 게으르기 때문이라 생각했지만 그것이 무기력증과 우울증의 증상이라는 것을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당시에는 이런 증상을 겪으면서도 무기력감과 우울감이라는 단어조차 알지 못했다. 때문에 나는 병원을 찾거나 혹은 다른 극복방법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고 정신적인 감기처럼 그것이 지나갈 때까지 끙끙 앓을 뿐이었다.


돈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사람과의 관계도 멀어진다. 특히 술을 끊으면서 나는 그 누구와도 교류를 하지 않는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렸다. 당시에 나는 반지층에 살고 있었는데 원룸보다는 넓은 크기의 방이었다. 한쪽에는 플라스틱이 가득하고 다른 한쪽에는 다른 종류의 쓰레기들이 가득 쌓여서 날파리들이 날아다녔다. 그 자체로 쓰레기 방이라고 보아도 좋다. 주변에 이런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노인분들이 겪는 저장강박은 겉으로 보았을 때 티가 나지만 젊은 세대의 쓰레기 방은 티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살면서 부상을 당하는 경우가 있다. 뼈가 부러지거나 하는 경우에는 금방 치료가 가능하지만 숨어서 보이지 않는 내장 기관에 병이 나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벽은 습기로 곰팡이가 가득했다. 반지하에서 사는 동안 알록달록한 색깔의 곰팡이를 참 많이도 보았다. 나는 겨우 침대와 화장실, 집을 나가는 길에 발 디딜 틈만 만들어두고 살았다. 나는 영화를 꿈꾸었음에도 이것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세부적인 계획을 짜는 일에는 무지했다. 영화 몇 편 보았다고 영화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착각이다. 우울감이 심할 때 나는 하루 종일 영화만 보는 일을 몇 달 동안 하였다. 하루면 대략 5-6편의 영화를 볼 수가 있다. 미래에 대한 답을 찾지도 못하고 그저 영화를 보면서 하루하루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리고 집 안에 있는 일이 답답하면 사람들이 집으로 들어가 휴식을 할 때 몰래 집을 빠져나와 동내를 돌며 산책을 한다. 그 밤에 길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할머니를 종종 마주할 수가 있다. 할머니는 조용히 플라스틱과 캔을 찌그러 뜨리고 있다. 그런 모습이 내 모습을 더욱 부끄럽게 만들어 고개도 못 들고 나는 서둘러 지나갔다. 그만큼 자존감이 바닥에 떨어진 날들을 보내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버티는 것뿐이었다. 히키코모리의 문제는 일본에서는 사회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우리는 그 문제를 그저 방치하고 있을 뿐이다. 폭탄을 끌어안고 있는데 아직 터질 시간이 남았다고 안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고개를 돌린다고 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 멈추어 있다고 죽은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길을 잃어버린 것뿐이다.


아침에 눈을 뜨고 누워있으면 윗집에 밥그릇과 숟가락 젓가락 부딧치는 소리가 그럽게 외롭게 느껴질 수가 없다. 나는 살면서 군대에 있을 때도 집밥을 그리워한 적이 없다. "엄마 미안" 하지만 나는 이 당시에는 마음이 너무 약해져서 누군가 김치와 계란에 밥만 차려줘도 너무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집에 걱정을 끼치는 일은 싫었다. 기쁨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은 쉬워도 고통은 누구와도 나누기가 힘들다. 특히 가족들에게는 그 고통을 나누기 어렵다는 것 알게 되었다.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이 명절이면 최대한 깔끔한 옷과 신발을 챙겨 입는 이유일 것이다. 가족들에게 자신이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고 성공가도를 달리는 사람처럼 이야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실로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염려시키지 않기 위해서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것뿐이다. 이후에 나는 어떻게 이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극복하게 되었을까. 대단한 극복은 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런 증상이 다시 나타날까 두렵기도 하다. 나는 살면서 우울증과 무기력증을 정말 여러 번 겪어 왔다. 가끔은 그런 감정에 지배를 당하며 꿈쩍도 하지 못하고 내가 가장 불행한 인간인 것처럼 착각에 빠져버리기도 한다. 내가 겪는 무기력증은 일정한 패턴이 있는데 작품이 끝이 나고 생각할 시간이 많아지고 생각은 걱정으로 이어지고 그것을 행동으로 바꾸지 못하면서 무기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일단 이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다. 어차피 현실을 바꿀 수 없다면 내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나 스스로 자존감이 떨어지는 말들을 하지 않는다. "이런 음식들은 먹어서 뭐 해?" 물론 뭐 대단한 음식도 아니지만 말이다. 반대로 "나는 정신적으로 아픈 상태이니까 잘 먹어야 해." 우리의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열중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도움이 되었다. 나에게는 운동이 가장 도움이 되었다. 건강한 몸을 가지는 것 역시 건강한 정신을 가지는데 매우 도움이 된다. 무기력한 사람들은 "운동을 하러 갈 기분이 되면 그렇게 하겠다"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몸이 움직이면 정신이 따라오게 되어 있다. 나 같은 경우에 헬스에 꽤나 집착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는 사실 우울증과 무기력감을 겪을 수가 없다. 현실에서 힘들다는 것 사실은 힘들다는 환상에 빠져있는 경우가 있다. 2차 세계대전의 전범이지만 구데리안의 말을 빌리면 "절망적인 인간은 있어도 절망적인 상황은 없다" 하늘이 아무리 푸르러도 바닥만 보고 있으면 꽤나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많은 긍정적인 상황이 있어도 몇 가지의 부정적인 감정에 집중하고 지배당하면 세상이 그렇게 보인다. 나는 수능에서 시험을 망치고 안 좋은 선택을 하는 친구들을 뉴스에서 보면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다. 삶의 무게란 그 짐을 짊어지고 있는 본인 말고 다른 사람은 알기 어렵지만 수능을 망쳤다고 절망적이고 실패한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들은 오직 경쟁과 절박함만을 강조하는 교육과 바보들이 만들어 낸 환상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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