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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만으로 살아온 몸

by 녹음노동자

나는 인생의 대부분의 시간을 비만으로 살아왔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보통의 체중을 유지하는 건강한 아이였다.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먹거리도 환경의 영향을 받았다. 나는 학교주변에서 파는 불량식품, 과자를 자주 먹었다. 그것은 음식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것들이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일로 바쁘시고 저녁을 혼자 차려먹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내가 차려먹는 식사는 균형이 무너지고 양도 적당함을 몰랐다. 늦은 저녁 어머니는 나와 형의 입에 맛있는 것이 들어가는 일이 좋았는지 순대를 자주 사 오셨다. 참고로 순대는 쌈장이다. 자면서도 입이 심심하면 엄마 몰래 과자를 먹으며 잠이 들었다. 나는 안좋은 식습관으로 조금씩 자연스럽게 비만이 되어갔다. 단지 뚱뚱하다는 이유로 나는 학교 씨름 대표로 선발되기도 했는데 가끔 다른 학교 친구들과 연습경기를 할 때가 있었다. 나는 씨름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고 단지 등이 떠 밀려서 하게 된 것뿐이었다. 나는 특히 땀이 범벅인 친구들과 같이 살을 맞대는 일이 너무 찝찝하게 느껴졌다. 물론 대회에 나가서 나는 단 한 게임도 이기지 못했다. 구경하러온 아버지가 친구분과 거의 앉자마자 다시 일어서는 모습을 보고 나는 자괴감에 빠졌다. 나의 비만 정도는 고도비만을 향해 가는데 어른들은 다 키로 간다며 나를 안심시켰다. 뚱뚱한 몸으로 나는 자존감이 매우 떨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반에는 좋아하는 여자 아이가 있었다. 여자아이는 깡마른 체구이지만 피부도 검고 활력이 넘치는 아이였다. 나의 머릿속에서 우리 관계는 꽤나 진지했는데 나는 그녀와의 아름다운 미래를 상상했다. 당시에는 한 학년에 6개 반이 있었고 한 반의 교실에는 40명 정도의 학생들이 앞, 뒤로 빽빽하게 앉아야만 했다. 2025년 지금은 한 학년에 1반이 있고 한 반의 학생도 넉넉하게 앉는 모양이다. 당시 여자아이들은 쉬는 시간에 빽빽한 의자와 책상을 앞으로 밀어 공간을 만들어서 베이비 복스의 춤을 많이 연습했는데 내가 좋아하는 아이는 항상 리더의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여자는 내 짝꿍을 좋아했다. 내 짝꿍은 내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 동에 사는 친구인데 나는 짝꿍의 집에 놀러 가서 같이 게임도 하고 노래도 듣고 가끔은 짝꿍의 엄마가 차려주는 밥을 같이 먹기도 하는 아주 친한 친구였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내 짝꿍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처음으로 나는 이성을 향한 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내 짝꿍과 친하게 지내는 그 여자아이의 모습을 보면 세상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뚱뚱한 몸에 인기도 없고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이런 결핍은 채우고자 하는 욕구로 이어진다. 나는 먹는 것으로 그 공허함을 채웠다. 몸은 더 뚱뚱해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건강하게 배고픔의 신호를 느끼고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라 음식물이 채 소화되기도 전에 나는 또 음식을 집어넣었다. 이것은 몸의 장기에 무리를 주는 일이다. 어린 시절 장기자랑을 하면 무대로 나가 친구들 앞에서 기꺼이 바보처럼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있다. 그런 친구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자존감이 참 높은 아이들이었다. 반대로 나는 자신감이 없어서 항상 웅크리며 구부정한 어깨를 가지게 되었다. 살다보니 거절과 비웃음에 겁내서 행동하지 않는 인간 진짜 겁쟁이였다. 고등학교 3학년 되자 내 몸은 120킬로에 가까운 몸이 되었고 웬만한 옷은 몸에 맞지도 않았다. 대학교에 가면서 자연스럽게 술을 마실 기회가 많았다.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들이 있으면 선배들은 후배들의 남자다움을 인정해 주었고, 주류 광고에서는 술을 청춘의 상징인 것처럼 선전을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것은 기업들이 만들어낸 허상이고 개인적으로 술은 장점보다 단점이 지배적으로 많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그 선배라는 놈들은 학생의 공금을 이용해 술을 마시면서 뉴스에 나오기도 했는데 생각해 보면 정말 한심한 놈들이다. 대학교에서 나는 집에 돈을 타서 쓰는 일이 미안해서 웬만한 끼니를 자취방 앞에서 파는 샌드위치나 토스트로 해결하고는 했다. 나는 대학생이 되었지만 남중, 남고를 나오고 여자와 접점이 없었기 때문에 여자들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하는지 감도 잡지 못 했다. 비만은 단지 건강만 잃는 것이 아니다. 사실 말을 걸어볼 만한 자존감, 자신감 같은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여성과의 극적인 드라마도 만들지 못하고 곧 군대를 가게 되었다. 군대에 가면 타의에 의해서 규칙적인 생활과 제한된 식사를 하게 되어있다. 나는 군대에서 90킬로 초반의 몸을 가지게 되었지만 제대을 하면서 몸무게는 다시 불어나게 되었다. 군대에서는 타의에 의해서 움직인 것뿐 나 스스로는 진실로 바뀐 것이 없기 때문이다.


처음 독립을 할 때 나는 군대에서 모은 돈 20만 원이 있었다. 지금 군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공감하기 어렵겠지만 2010년 당시만 해도 병장 월급이 10만 원을 겨우 넘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20만 원으로 고시원 방을 잡고 나니 내 수중에 돈은 거의 없었다. 자연스럽게 라면과 같은 식품으로 허기를 달랠 수 밖에는 없었다. 돈이 없고 배가 고프면 나쁜 음식도 아무거나 먹어진다. 반대로 잘 먹기 위해서는 냉장고에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 자연스럽게 라면, 떡볶이, 튀김, 치킨 같은 음식들과 친해지고 몸은 점점 더 불어나게 되었다. 몸이 건강하면 아무리 나쁜 음식을 먹어도 왜 그런 음식들이 몸에 나쁜지에 대해서 공감하기는 어렵다. 몸이 건강할 때는 술이고 음식이고 입에 들어가면 다 소화시킬 자신도 있었다. 하지만 뚱뚱한 체형을 오래 유지하는 것은 꾸준히 장기들의 기능을 떨어뜨리는 일이다. 안 좋은 음식을 먹은 일들은 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 몸은 그런 일들을 기억하고 있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처럼 몸에 새겨진다. 기업들은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귀여운 마케팅을 해대지만 고개를 돌린다고 없는 일이 되지 않는다. 내 몸은 영원히 튼튼하고 건강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30이 넘이면서 조금씩 건강을 챙겨야겠다는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결국 20대를 아주 뚱뚱한 몸으로 지내면서도 나는 내 몸을 바꾸는 일도 하지 못하고 여전히 몸에 안 좋은 기름지고, 자극적이고, 달고 짠 음식들을 가까이했다. 소아비만은 부모의 잘 못이다, 단 성인이 되어서 그런 몸을 유지하는 것은 내 잘 못이다. 그런 음식들을 가까이한 것은 내가 먹는 방법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먹는 걸 모르는 사람이 있나? 먹는 것은 나면서부터 자연스럽게 아는 것인데 당연히 아는 일이 아닌가? 우리 주변의 먹거리가 자연적이지 못 하고 비정상적으로 변했기 때문에 우리는 예전과는 다른 먹는 방법이 필요하다. 잘 먹는다는 것은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다는 말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수 박진영 님이 말하듯이 "중요한 것은 좋은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라 안 좋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다." 운동을 습관으로 가지는 일 잘하지 못 하는 것은 내 경험상 단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라 확신한다. "의지가 부족해서" 사실 사람의 의지라고 하는 것은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면 큰 차이가 없다. 오죽하면 삼국통일에 크게 기여한 김유신 장군님도 스스로의 결심을 지키지 못 해서 말을 베었겠는가. 안 좋은 음식을 먹는 것 또한 단지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비만이라는 것 당장 사람에게 해를 가하거나 치명적이지는 않지만 천천히 건강을 갉아먹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당장 뼈가 부러지는 일보다 천천히 장기들에 손상이 가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한 일이다. 현대사회에서 식문화를 만드는 기업들은 사람들의 몸에 들어가는 음식으로 돈을 벌어가고 있다. 우리는 쉽게 음식들을 구매하는 편리함을 얻었지만 사람의 탐욕에는 끝이 없다. 기업들은 더 많은 음식을 타인의 몸에 집어넣고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한다. 그 과정에서 음식을 소비하는 사람들의 건강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기업들이 소비자의 건강까지 신경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필요 이상의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사람들의 몸에 집어넣으면서 소비자의 몸은 점점 비대해진다. 우리나라는 비만률은 90년대 자료를 보면 10%대 초중반으로 추정한다고 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도 OECD 국가 중에도 극히 낮은 편이었다. 증가폭이 점점 커지면서 2007년 31.7%까지 증가한다. 증가폭은 줄어들었지만 계속해서 비만률은 증가하는데 2020년에는 38.3%까지 계속해서 증가하고 여전히 높은 수준이라고 한다. 자극적인 입맛으로 사람들을 중독시키고 기업들은 제국을 만들었지만 건강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오롯이 개인만의 문제가 되어버린다. 개인이 선택을 했다는 책임은 있지만 이것을 단순히 개인의 문제로 본다면 문제를 바로 본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점점 어린 나이에 성인병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우리의 몸은 예전 농경사회의 사람들에 비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예전에 비해 매우 비정상적인 음식을 섭취하고 있다. 좋은 몸,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운동과 식단을 병행하는 것이다. 이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조금은 힘든 일이다. 당장 몸에 문제를 발생시키지 않는다면 사람은 관성대로 사는 방식대로 살아진다. 나는 정말 오랫동안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다. 그리고 지금도 배워가는 중이다. 당연히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막연한 생각을 했다.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이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것이다. 나는 삶의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비만으로 살았고 30살이 넘어서 건강에 경각심을 가지고 운동을 시작했다. 나는 스스로 운동을 잘하지 못하더라도 집에 게으르게 누워있는 내 모습보다 헬스장에서 ㅈㄹ발광하면서 애쓰는 내 모습을 사랑하기 쉽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저렴한 가공식품보다 몸에 이로운 음식들을 가까이하고, 내 영혼을 한정된 공간에 가두는 것이 아니라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하고 사람들과 건강한 감정을 나누는 것이 나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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