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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동물원 호랑이의 생일상을 보며

by 녹음노동자

언젠가 동물원의 호랑이가 예쁜 고기가 쌓인 생일케이크를 받는 모습을 보고 큰 인상을 받았다. 나는 왜 그 사진이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예쁘게 만들어진 생일상 그렇게 행복해 보이지 않는 호랑이의 표정. 마음에 머무르는 생각들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는 며칠 동안 더 그 사진에 대해 생각하면서 그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그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 그 이유이다. 호랑이는 본능에 맞지 않는 생을 살고 있다. 초원을 누리고 사냥을 하고 그것으로 보상을 얻는 본성의 삶에서 벗어나, 하루 종일 구경온 손님들을 맞이하고 사육사가 주는 음식을 먹는 인위적인 삶이 진정으로 행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 현대인 또한 본성을 잃어버린 시대를 살고 있다. 삶이란 단순하지만 예전에 비해서 우리는 꽤나 복잡한 시대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본성만큼은 변한 것이 없다.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는 일은 멀어지고 의미 없이 자극적으로 시선을 끄는 영상들을 보며 하루 종일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현실과 동떨어져서 우리는 남녀 간의 갈등과 세대갈등을 조장하는 단지 조회수 말고 진정으로 그 주제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의 영상을 보고 현실로 받아들인다. 인류가 발전을 하고 진화를 해 오면서 우리의 몸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무리하게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들을 먹고 빛이 나오는 네모난 화면에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이 행복한 삶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어린 시절 동물원에 대한 추억으로 성인이 되고 한번 동물원에 간 적이 있다. 내가 방문한 동물원은 더 냉담한 현실을 살고 있었다. 예쁜 생일상이라도 받는 동물은 그나마 좋은 대우를 받는 동물들이다. 빼짝 마른 호랑이는 구석에 아무 의미도 없는 눈으로 앉아 있을 뿐 아무런 활력도 느껴지지 않았다. 동물원에서 생일상을 받는 호랑이처럼 본능에 어긋난 삶 행복한 삶이 아니다.


나는 게임을 취미로 자주 한다. 게임을 습관적으로 하면서 인생에 중요한 10대, 20대, 30대의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이것은 내 삶의 목표를 정하고 하루하루 계획하며 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이다. 프로게이머가 목표라면 매일 게임을 하는 것은 계획적이고 성실한 사람이지만 나는 프로게이머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나쁜 음식도 아무거나 먹어진다. 사람이 외로우면 아무나 만나지고, 돈을 쓰는 일도 계획하지 않으면 낭비하는 돈이 많다. 계획하지 않고 살면 쓰는 시간보다 그저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다. 장기적으로는 이롭지 못한 것들이다. 나는 하루하루 계획하고 성취감을 느끼며 사는 방법을 몰랐기 때문에 게임을 통해서 가짜 성취감을 맛보았다. 게임을 통해서 농사를 짓고 농작물을 수확하고 음식을 만드는 일이 현실에서 땀 흘려 농사를 짓고 수확하고 음식을 만들어 먹는 성취감에 비할 수가 있을까? 그 오랜 기간 동안 게임을 벗어나 특별한 성취감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나 스스로 불행한 일이다. 또 우리는 휴대폰을 하는 것에 집중력을 "빼앗기고" 살아간다. 휴대폰에서 제공하는 영상들은 사람들의 집중력을 "빼앗기" 위해서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게 만들어진다. 눈이 풀린 여자들이 어떤 행위를 연상케 하는 광고들을 보고 있으면 경악스러울 때가 있다. 이것은 사람의 본능에 자극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에 쉽게 빠져들게 되어있다. 휴대폰의 너머에는 사람들의 집중력을 뺴앗기 위한 수천 명의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으니 우리가 집중력을 "빼앗기는" 일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왜 그런 일을 하는가 당연히 돈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돈을 빼앗긴다고 한다면 매우 화가 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집중력에도 "빼앗긴다"는 말을 쓴다. 우리가 휴대폰에 빼앗기는 시간과 정력들이 돈 보다 가치가 없나? 생각해 보면 절대 그렇지가 않다. 하지만 집중력을 빼앗기고 온전히 자신이 하는 일에 집중을 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화가 나 보이지 않는다. 그 가치가 눈에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가치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건강이라는 가치도 그렇다. 비만이라는 것이 당장 문제를 만들지 않지만 서서히 우리 몸을 망가뜨린다. 자극적인 맛으로 돈을 벌어들인 기업들은 책임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면 그만이다. 우리는 건강이라는 가치를 보통 잃고 나서 깨닫게 되지만 이미 그 때는 늦다. 우리 주변에 집중력을 잃어버린 사람들로 가득하다. 심지어 목욕탕에서도 이제는 휴대폰을 들고 들어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붙어져 있다. 휴대폰은 계속해서 광고 문자나 각종 알람들로 "나 좀 쳐다보세요" 주의를 빼앗는다. 알고리즘의 흐름을 따라서 하루 종일 집중력을 옮겨가면서 우리는 점점 몰입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서로의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는 일에서 멀어지고 구부정한 자세로 휴대폰을 보는 일을 가까이하는 것, 나 스스로가 그렇게 멋지게 느껴지지 않는다.


몇 년 전에 비해서 우리의 삶은 크게 달라진 부분이 있는데 바로 Ai의 상용화이다. 인터넷에서 투자에 성공한 사람이 나와서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하고 만약에 자신이 틀릴 경우에 "전재산을 드리겠습니다." 호언장담을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사기라는 것은 금방 알 수가 있지만 그 사람이 사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Ai라는 사실에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상으로 그건 실제 살아있는 사람과 거의 구분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Ai 가상인물에게 허위광고의 책임을 물을 수도 없으니 참 악랄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광고이다. 광고에 대한 아무런 규제도 없다. 어쩌면 사회는 애초에 국민들이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혼탁한 정신을 가지고 무의미하게 자극적이고 시끄러운 영상에 집중하는 면서 다른 정치적인 일들에 고개를 돌리고 있는 상황이 편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사람의 얼굴을 보는 일을 멀리하고 휴대폰에 얼굴을 묻고 사는 일이 어떻게 행복한 일이 될 수 있겠는가. 기술의 발전이 정말 행복에 가까워지는 일이 될 수 있을까? 우리 손에 스마트폰 손목에는 스마트 워치를 차고 값비싼 헤드폰을 쓰는 일은 오히려 자유로움에서 멀어지고 연연하게 만드는 물건들이다. 타인을 어지러운 소리들은 들으면서 정작 가장 중요한 내 마음에 소리를 들을 수가 없다. 진심은 항상 속삭이고 우리의 목소리도 마찬가지다. 나는 Ai Bi Ci 시대가 와도 인간의 행복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 확신한다. 예측이 틀리다면 정말 감사한 일이다. 나는 비싼 차와 전자기기를 가진 사람들을 크게 부러워한 적은 없다. 다만 사람들과 건강한 감정을 나누는 일, 서로 밥을 먹으며 영혼을 나누고, 체온을 나누는 일을 가까이하는 사람 진정 부러워할 만한 사람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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