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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쓰기 아이디어 씨앗을 찾는 일

by 녹음노동자

나는 어떤 일에 배우는 것이 조금 느린 사람이다. 평생 나는 글쓰기와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영화일을 시작하고 시나리오에 대한 공부를 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나는 기간이 짧은 희곡 작가님의 글쓰기 수업을 들었다. 작가님은 대학로에서 자신이 쓴 글들을 연극으로 만들어본 경험이 많은 꽤나 실력 있는 작가님이었다.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는 선생님이 내주는 짧은 글 숙제도 잘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내 글쓰기 실력은 단지 일기로 겨우 오늘 무엇을 했는지 몇 자 적는 정도인데 그것도 이젠 남아 있지가 않다. 글쓰기의 재미라는 것은 전혀 느낄 수도 없고 단지 게임과 유튜브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재미를 느끼는 일이 익숙했다. 글쓰기는 세상에서 가장 지루한 일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단순히 사람들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기 위한 기능적인 역할로만 글쓰기를 이해를 하고 있었다. 스스로 틀에서 벗어나고자 글쓰기수업 신청을 한 것은 맞다. 작가님은 눈사람을 만드는데 나에게 눈을 굴릴 수 있는 작은 눈덩이를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다. 나는 글쓰기 수업 이후로 조금 더 시나리오 작법을 파고들었다.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모든 시나라오 작법책을 구매했다. 몇 개는 도움이 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책도 있었다. 처음에는 시나리오를 쓰기 위해서 이렇게 두꺼운 책들이 필요한 것인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사실 두꺼운 책들은 어려울 말들을 풀어서 쓰는 아주 친절한 책이었다. 등산에 익숙한 사람들은 귀 기울여 책을 보았겠지만 나는 산을 만만하게 보는 초심자들처럼 교만한 생각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영웅은 공부 따위 안 한다네.jpg 최애 드라마 <수호지>

지식을 채우기 위해서는 머리를 비워야 하는데 나는 교만한 생각과 고집으로 머리를 채우고 있었다. 지식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먼저 바보 같은 생각들을 치우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나는 당시에 영화에 참여하기로 한 작품이 미루어지면서 책을 공부하는 시간이 많았다. 책을 많이 보아서 책의 종이가 한 장씩 뜯어져 나가고 있었다. 그 많은 공부를 했지만 그런 공부들은 의식의 칼을 다듬는 일이었다. 글이라는 것인 생각하기에 무의식 자유롭게 쓰인 것들을 의식과 이성의 칼로 다듬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공부하는 것은 형식과 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함인데 글을 쓰기 위한 이론이 아니라 그저 이론 자체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진정 재능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 길을 가고 있을 것이니 부러울 뿐이다. 나는 시나리오를 분석하는 날카로운 칼을 가지는 일에는 성공을 했지만 정작 무엇을 다듬어야 하는지 그 아이디어의 원석이 없었다. 글을 쓰는 재미와 아이디어의 씨앗, 주제를 가지는 일을 하지는 못 했다.


글을 쓰는 아이디어와 주제는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이 글이 될 수 있을까? 무엇이 영화가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에게 아이디어는 어떤 방식으로 온다고 답을 알려주기를 기대했지만 수학처럼 정답이 떨어지는 질문이 아니라 어려웠다. 다들 그 경로와 방법은 너무 다양했다. 누군가는 현실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영향을 받기도 하고, 읽은 책이나 영화에서 아이디어를 찾기도 한다. 누군가는 명상을 통해서 혹은 걸으면서 경험을 통해서 아이디어가 생기기도 한다. 아이디어를 찾는 방법 중에 나는 산책을 선택했다. 마음이 심란할 때 동내를 한 바퀴 도는 일은 그래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생각을 했다. 처음 산책을 하면서 아이디어를 찾는다는 말은 조금 의심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좋은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서 부지런히 걸었다. 걸을 때 신었던 크록스에 구멍이 나서 내 발바닥으로 빗물이 새어 들어오고 바닥이 달아서 아주 미끄러웠기 때문에 많이 넘어질 뻔하기도 했다. 아이디어가 생기는지는 모르겠지만 산책은 조금씩 익숙해졌다. 누군가 "걸으면서 한 생각들은 믿을만하다"라고 했던가. 걷는다는 행위를 반복하고 익숙해지면서 의식적인 칼을 내려놓고 시야를 넓히는 여유를 가지게 된다. 이것은 마치 운전을 하면서 머리에 수많은 생각들을 떠올리는 것과 같이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가는 일이다. 잠처럼 애써 의식적으로 그것을 이루려고 하면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우리는 점점 잠에 빠져들 때 이성적인 생각에서 멀어지고 완전한 무의식의 세계로 들어간다. 때문에 우리는 꿈에서 법과 상식의 틀을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한다. 어떤 주제와 아이디어를 너무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안 좋은 버릇인 것 같다. 그저 가볍게 그것을 열어두면 우리는 생각들을 자연스럽게 가지고 논다. 늘려도 보고 확장시키고 반대로 뒤집어서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 내가 관심이 있어하는 일. 마음에 걸리는 일. 내가 느끼는 감정들은 마음에 머물러 있는 이유가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은 메모장이다. 기록하지 않는 것은 기억에도 없다. 생각들을 흘려보낸다면 그것은 단지 생각에 지나지 않는다. 생각을 한다는 것은 행동하기 위해서이다. 생각만으로는 아이디어의 씨앗으로 발전시킬 수가 없다. 예전 사람들이라면 노트와 연필을 들고 다녔겠지만 나는 휴대폰의 메신저나 메모장을 즐겨 이용한다. 말을 사작하면 신기하게도 할 말이 많아지듯이 기록을 시작하면 하루에 기록할 것들이 너무 많다. 메모라고 하는 것 일단 내용을 잘 정리해 두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기록한 메모들이 정리되지 않으면 필요할 때 꺼내 쓸 수가 없다. 그리고 메모장은 도서관처럼 잘 정리될 수 있는 카테고리가 필요하다. 아이디어가 내 품으로 들어와 자라나기 위해서는 내가 좋은 토양이 되어야 한다. 같은 주제라고 해도 작가에 따라서 내용은 전혀 달라질 수 있다. 누군가 "재미없는 작가는 있어도 재미가 없는 주제는 없다" 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생각 좋은 아이디어의 씨앗도 척박한 환경에서 자라나기는 어렵다. 아이디어가 자라날 수 있게 그것에 대해 생각과 관심을 주고 관련된 자료와 양분을 주기도 하면서 아이디어는 자라나기 시작한다.


무의식으로 빠지는 행동 중에 내가 좋아하는 행동은 운동이다. 나는 30살이 넘어 헬스를 시작했다. 운동을 하면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생각하는 일이 자연스럽다.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걷는 것 헬스를 하는 것 모두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몸이 건강할 때는 세상의 모든 일이 걱정이지만 건강을 잃었을 때는 오직 걱정은 하나가 된다. 운동을 하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나는 휴대폰으로 메모한다. 우리는 집중력을 잃어버린 시대에 글쓰기를 하고 있다. 요즘 같은 영상시대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영상으로 누구나 지식을 공유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다만 부작용이 있다면 사람들이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은 최대한 자극적으로 선정적으로 시끄럽고 자극적인 말로 우리의 주의와 도파민을 끌어낸다. 그런 영상에 중독된 사람들은 결국에는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떠나서 영상 자체에 빠지고 만다. 이는 굉장히 비정상적인 일이다. 단지 영상을 추종하고 원하지 않는 영상들에 손가락으로 주제를 옮겨가며 하루 종일 휴대폰을 바라보기도 한다. 나는 집중력을 잃어버린 인간으로 살다가 심각성을 깨닫고 조금씩 벗어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 귀에는 이어폰을 꽂아두고 어떠한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멀티태스킹을 하였다. 멀티태스킹이라는 말은 단지 어디에도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설명할 뿐이다. 시끄러운 유튜브를 틀어놓고 음악을 들으며 아이디어를 찾을 수는 없다. 아이디어는 속삭이기 때문에 침묵 속에 들어야 하고 조용함에 익숙해야 한다. 마음과 정신이 혼탁하면 안 된다. 집중력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다. 카페에 가면 다들 책을 펴놓고 휴대폰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나는 이어폰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잘 되었다고 생각하고 그 뒤로는 이어폰을 구매하지 않았다. 집중력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작가 아리이 하지메가 말하듯 "인간이란 원래 누구나 불완전하다.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고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얼마간이라도 도피하고 싶어 진다. 그러나 커피라도 한잔 마시면서 잠깐동안이라면 모르지만, 장 시간 자리를 떠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괴롭더라도 도망가지 말고 부딪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일 것이다." 집중력을 찾는 일에서 뛰어넘어 내가 원하는 것이 진정한 몰입을 이루었을 때 우리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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