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보고, 잔잔했던 군산 여행을 떠올리며.
2021년 11월, 인생 처음 전북 군산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겨울 군산의 첫 느낌은 고요함이었다. 고요한 탓에 추위가 더욱 매섭게 느껴졌다. 여행자들로 북적일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군산은 적막함 그 자체였다. 어디에도 사람은 없고 자연뿐이었다. 검푸른 산과 새파란 바다만이 이곳에 온 내가 궁금한 듯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차가운 비바람이 몰아치는 선유도의 선유봉을 기어가듯 오를 때에는 고립감을 온몸으로 느꼈다.
정신없을 만큼 분주하고 화려해야 다양한 감정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산산이 깨진 순간이었다. 사람도 없고 새로운 것도 없는 여행이었는데, 그 겨울의 군산에서 나는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감정을 느꼈다. 눈이 시릴 정도로 파란 바다, 짭조름한 맛이 느껴지는 바다내음, 촉촉한 빗방울이 섞인 비바람, 고요한 적막을 깨는 갈매기의 날갯짓 소리. 처음 마주할 때에는 정지된 화면 같았던 군산의 모습이, 어느 순간 총천연색 고화질 풀컬러 화면으로 바뀌어 오감을 자극했다.
주말을 맞아,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를 감상했다. 영화의 촬영지가 군산이어서 그럴까.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는 지난겨울의 군산 여행과 참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멈췄나?' 영화의 초반부에서 든 생각이다. 평소 화려한 CG로 가득한 블록버스터 영화를 즐겨보는 탓일 것이다. 군산 여행에서 산산이 깨진 편견처럼, 97분의 러닝타임 동안 다시 한번 생각이 조각조각 부서졌다. 단단한 생각일수록 깨질 때의 파편은 더욱 날카롭다. 정지 화면처럼 느껴질 만큼 잔잔한 영화를 보는 동안, 나는 그 어떤 화려한 영화를 볼 때보다 깊게 빠져들어 웃고 울었다. 군산 여행 명소인 '초원사진관'에서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사진을 찍는지, 그때는 몰랐고 지금은 알았다. 역시 사람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거부할 수 없는 절대 진리다.
영화에는 애틋함이 담겨있다. 주인공 '정원(한석규)'은 시한부 노총각이다. 어느 날 우연히, 주차단속요원 '다림(심은하)'을 만나게 된다. 다림은 정원이 불치병에 걸린 사실을 모른다. 그들의 만남이 잦아질수록, 정원과 다림의 마음속 파장이 깊어진다. 정원은 그만의 방식으로 다림을 사랑한다. 창문 너머로 그녀를 지켜보며, 그녀의 모습을 따라 어루만진다.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만으로도 슬픈데, 사랑을 시작하지 못하고 마음에 삼켜야 하는 모습은 애틋하다. 다림은 정원에게 묻는다. "아저씨, 왜 나만 보면 웃어요?" 정원은 다림을 보며 웃을 뿐이다. 정원의 웃음은 눈물겹도록 아프고 서럽다. 나라면 다림 앞에서 슬프다고 울었을 텐데, 억울하다고 절규했을 텐데, 사실은 사랑한다고 고백했을 텐데, 정원은 그저 웃을 뿐이다. 정원은 독백한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나는 긴 시간이 필요한 사랑을 하고 있다."
영화에는 애틋함을 넘어선 애절함이 담겨있다. 다림의 말처럼, 정원은 영화 내내 웃는다. 영화가 끝난 뒤, 까만 화면에서 정원의 따뜻한 웃음이 떠오를 정도로. 하지만, 그 역시 죽음 앞에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평범한 사람이다. 깜깜한 밤, 정원은 방 안에서 홀로 이불을 뒤집어쓰고 펑펑 운다. 죽음을 초연히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존재할까. 낮이든 밤이든 불안과 공포에 사로잡힌 것은 마찬가지일 텐데, 낮이면 울음을 삼켜내는 그 마음이 너무나 애절하다. 당장이라도 살려달라며 소리 지르고 엉엉 울 법도 한데, 그는 그냥 웃고 또 웃는다. 다림이 정원의 불치병의 존재를 몰랐듯, 나 역시 정원의 지인이었다면 그가 그저 건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원은 늘 담담하다. 그의 담담한 마음은 밤이 되면 눈물이 되어 애절하게 흘러내린다. 지나치게 밝은 사람의 마음에는 밝음에 비례하는 우울과 슬픔이 자리 잡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나 역시 소리 없이 웃으며 울어본 적 있기에, 정원의 행동과 마음에 깊게 공감했다. 정원과 함께 숨죽여 눈물지었다.
영화는 결국 폭발적인 슬픔을 담아낸다. 정원은 앞으로 혼자 남을 아버지를 위해 비디오 조작법을 알려준다. 연세 많은 아버지는 여러 번 배워도 쉽게 익히지 못한다. 결국 아버지에게 크게 화를 내며 밖으로 나가버리는 정원의 모습에서 폭발적인 슬픔을 느꼈다. 방안에 덩그러니 남겨진 아버지는 아무 말하지 않고 가만히 리모컨을 만질 뿐이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서도 폭발적인 슬픔을 느꼈다. 죽음을 앞둔 자식을 초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을까. 언제나 허허 웃으며 담담했던 아들이 화를 내며 나가버리는 그 모습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게 아플까. 입을 꽉 다문 아버지의 입에서 금방이라도 비명이 쏟아질 것 같다. 아들도 아버지도 슬픈 마음을 주체할 수 없다. 정원을 사랑한 다림 역시 마찬가지다. 정원의 입원으로 굳게 닫힌 초원사진관.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다 결국 돌을 던져 문을 깨뜨려버리는 다림의 모습에서도 폭발적인 슬픔을 느꼈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 아들을 향한 사랑, 이성을 향한 사랑. 사랑이 있기에 슬픔이 있다. 사랑을 수반한 슬픔은 핵폭발 이상의 커다란 파장을 일으킨다. 차마 어쩌지 못하고 새어 나온 감정, 이 감정이 너무나 폭발적이어서 영화를 잠시 멈추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였다.
애틋함, 애절함, 폭발적인 슬픔. 잔잔한 영화 속에 분주한 감정이 담겼다. "내 기억 속에 무수한 사진들처럼 사람도 언젠가는 추억으로 그친다는 걸 난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만은 추억이 되질 않았습니다. 사랑을 간직한 채 떠날 수 있게 해 준 당신께 고맙다는 말을 남깁니다." 죽음 직전, 정원의 담담한 독백은 관객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안겨준다.
<8월의 크리스마스> 영화는 한 마디로 잔잔함 속의 분주함이다. 잔잔함과 분주함은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웃음과 울음 역시 비슷할지도 모른다. 주위에 항상 잔잔한 미소를 짓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지화면 같던 한겨울의 군산 여행은 잔잔함이 때때로 가장 많은 것들을 내포한다는 사실을 일깨웠다. 그 깨달음을 되새기기 위해, 겨울이 오면 다시 한번 군산에 다녀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