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함의 중요함 그리고 경이로움

사랑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니

by 쏘스유


세상의 사소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인생을 살아보니 그렇다. 매일 먹는 식사의 식단에 신경을 기울이니 몸이 건강해졌고,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하니 근육이 생겼다. 10년 이상 꾸준히 블로그에 글을 쓰니 취미가 직업이 되었다.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일을 하는 것. 우리가 매일 하는 행동은 사실 모두 사소하다. 그런데 그 사소한 것이 시간의 흐름 위에 차곡차곡 쌓여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그래서 사소한 것은 중요하다. 중요한 것을 한 번에 잘 해내기는 어렵다. 결국 사소한 것부터 잘해야 하는 이유다.


사랑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이 그렇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쳐다보는 것이 아닌 바라보는 것이다. 이 둘의 사전적 의미는 다르다. 쳐다보다는 '얼굴을 들어 바로 보다'를 뜻하고, 바라보다는 '어떤 현상이나 사태를 자신의 시각으로 관찰하다'를 뜻한다. 이 둘의 의미는 큰 차이를 지닌다. '자신의 시각으로' 그리고 '관찰하는' 이 두 가지 행동이 어렵기 때문이다. 게다가 '물끄러미 바라보기'는 볼 것으로 가득한 디지털 시대에 특히 어려운 일이다. 이렇게 어려운 일은 <글 쓰는 워크숍> 과제로 처음 접했다. "특정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글을 써보세요." 사실 과제를 처음 받았을 때에는 쉬워 보였다. 그 어떠한 일들 중에서 사소한 것이기에 내가 매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렸다. 나는 이 사소한 일을 매일 하지 않았다.


나는 결혼한 지 세 달 조금 넘었다. 신혼부부인만큼, 자연스레 글쓰기 과제의 대상은 신랑이었다. 글을 써야 할 것이 많은 요즘이기에,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은 이 과제부터 얼른 해결할 생각이었다. 신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1초 만에 고개를 돌렸다. 나와 신랑은 연애할 때부터 자주 붙어 다녔고, 결혼 이후의 지금은 더욱 찰떡처럼 늘 붙어있지만, 아무 대화 없이 그저 물끄러미 서로를 바라보지는 않았다. 생각해보니, 서로를 오랜 시간 바라본 것은 결혼식 맞절 이후로 처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 대화 없이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예상보다 어려웠다. 결국 첫 번째 시도는 실패였다.


첫 번째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예상보다 쉽지 않은 과제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신랑이 눈을 뜨고 있을 때 물끄러미 바라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랑이 눈을 감고 있을 때 두 번째 시도를 하기로 했다. 이는 결국 신랑이 잠들었을 때를 의미한다. 나는 잠든 신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잠든 신랑을 바라볼 뿐인데, 마치 나는 대단한 일을 하는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아기를 키우는 부모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한다. 아기가 항상 귀엽지만, 잠들었을 때의 모습이 가장 천사같이 예쁘다고. 그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을 테지만, 나 역시 잠든 신랑에게서 그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내가 그와, 그가 나와, 우리가 결혼하지 않았다면 이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결혼 준비를 하며 함께 설레기도 했고 다투기도 했다. 결혼 후에도 다름으로 인한 갈등을 겪기도 하고, 함께 의기투합해 어려운 일들을 헤쳐나가기도 했다.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웃고 울며 바쁘게 움직이던 눈과 입 그리고 얼굴의 주름들이 모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있다.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편안해 보이는 얼굴. 생김새는 다르지만, 어쩐지 신랑의 표정에서 내 얼굴이 보인다.


정확히 말하면 '내 얼굴이 느껴진다'. 나 역시 신랑의 얼굴을 따라 똑같이 울고 웃고 슬프고 행복했겠지. 정말 소중한 관계라면, 감정은 일방향으로 흐르지 않는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신랑의 얼굴이 편안해 보인다. 그리고 귀여워 보인다. 이전까지는 나를 향해 웃고 예쁜 행동을 해야만 귀여울 것이라 생각했는데, 물끄러니 바라보니 신랑은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간 얼굴도 귀여운 사람이었다. 나는 앞으로 신랑의 얼굴이 지금처럼 편안했으면 좋겠다. 늙어도 지금처럼 귀여우면 좋겠다. 온전한 신랑 그 자체로 남으면 좋겠다. 신랑의 얼굴이 나로 인해 변하지 않도록, 표정이 바뀌지 않도록 더욱 보듬고 아껴주고 싶다.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기에, 함께 편안하고 귀여운 부부로 늙어가고 싶다고 생각한다.


세 번째 시도, 신랑의 잠든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는 성공했지만 의식 없는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과제의 의도는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제대로 해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신랑에게 고백했다. 특정한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글을 쓰는 것이 과제라고. 역시 부부는 일심동체인 덕분일까? 신랑 역시 처음의 내 반응과 다르지 않았다. 그게 뭐가 어렵냐고, 지금 당장 과제를 하자고 호기롭게 말했다. 나와 신랑은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 늘 길을 걸을 때에는 나란히 걷고 식당과 카페에서는 옆으로 앉는다. 신랑의 제안에, 우리는 오랜만에 마주 보고 앉았다. 늘 손에 들고 있던 각자의 스마트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마주 앉고 스마트폰을 내려놓았지만, 그 순간마저 외부로 시선을 끄는 요인이 많았다. 무엇이든 습관이 중요한 것인데, 물끄러미 바라보기가 습관이 되지 않은 탓이다.


모든 장애 요인을 애써 무시한 채, 나와 신랑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눈과 눈이 마주하는 순간, 아무 표정이 없었던 서로의 얼굴이 바뀌기 시작했다. 눈가의 근육이 움직이고 입가의 근육이 조금씩 꿈틀거렸다. 그저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을 뿐인데, 순식간에 무수히 많은 시간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죽기 전에 머릿속에 살아온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는 것을 간접 경험했다. 우리가 연애를 한 1년 9개월의 시간, 그 속에 포함된 결혼을 준비한 10개월의 시간, 그리고 결혼 이후의 3개월의 시간. 신랑의 눈동자 속에 시간이 겹겹이 쌓인 것 같다. 단단히 쌓인 시간을 바라보니, 가슴속에서 무언가 툭 올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행복, 슬픔, 기쁨, 분노, 아쉬움, 만족감. 참 다양하다. 나도 신랑도 결혼은 처음이라 서툴다. 처음은 무엇이든 힘들다. 하지만 잘 해내기 위해 늘 최선을 다했다. 어떻게 한 문장으로 이 많은 감정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여러 겹의 생각과 감정이 신랑의 눈동자 너머로 일렁였다. 이대로 계속 물끄러미 바라보다가는 눈물이 날 것 같아서 웃어버렸다. 복합적인 감정의 결론은 행복이었다. 행복해서 웃었다. 그리고 웃으니 행복이 커졌다. 왜 웃는지 아무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신랑 역시 나를 따라 웃는다. 나와 같은 감정일까, 물어보지 않았다. 웃는 순간에도 나는 잠든 신랑의 얼굴을 떠올린다. 편안한 표정의 신랑, 귀여운 표정의 신랑. 나를 따라 웃는 신랑에게서 잠든 신랑의 얼굴이 보인다. 내게 웃어줘서 고맙고 존재해줘서 감사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일은 참 사소하다. 돈도 들지 않고,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참 어렵다. 그래서 소중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어떤 모습으로 나를 마주하고 있는지, 눈동자 너머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나는 이렇게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축적되고 습관이 되면 그 관계가 더욱 견고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금부터 사소한 것을 더욱 자주 시도할 생각이다. 소중한 사람은 신랑뿐만이 아니다. 사랑하는 엄마, 아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인 나 자신도 마찬가지다. 그리고 그런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도 마찬가지이다. 그동안 나는 늘 여행을 떠나고 싶었고, 끝없이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었다. 물끄러미 사람을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니 매일이 새롭고 일상이 여행이다. 생각을 바꾸니 경이로운 날들이다. 역시 사소한 것은 가장 중요한 것과 맞닿아 있다.



eye-913966.jpg 사랑하는 존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시간이 많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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