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끝에는 집이 있고, 집의 시작에는 길이 있다.

집과 길의 상관관계를 생각하며

by 쏘스유


세상의 모든 일에는 두 가지 면이 공존한다. 당장은 나쁜 일인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좋은 일이라고 깨닫는 경우가 있다. 반대도 마찬가지다. 나는 집과 길에서 익숙함과 새로움이라는 두 가지 감정을 느낀다.


늘 그 자리에 있는 집, 늘 내가 머무는 집, 늘 변함없는 집. 나는 집에서 익숙함을 느낀다. 길 역시 마찬가지다. 늘 그 자리에 있는 길, 늘 내가 걷는 길, 늘 변함없는 길. 얼마나 익숙했으면, 위험하다는 사실도 잊은 채 휴대폰을 보며 길을 걷기도 한다. 한때는 집도 길도 각각 늘 똑같다는 생각에 극도의 지루함을 느꼈다. 집이 지겨울 때에는 한바탕 대청소를 하며 방의 구조를 바꿨다. 그래도 권태로움이 해소되지 않을 때에는 호텔에 머물거나 여행을 떠났다. 늘 걷는 길이 지겨울 때에는 빠른 길을 두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새로운 풍경을 보고 싶어서, 버스의 번호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목적지가 어느 곳인지 모르는 버스에 올라탄 적도 많다.


오랜 시간 동안 새로움을 느끼기 위해 애썼다. 나를 낯선 환경에 던지기 위해 숱한 시간을 보낸 뒤, 문득 깨달았다. 중요한 사실을 간과했다. 집과 길은 변함없지만, 집 안의 나와 길 위의 나는 매일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나라는 사람은 일, 시간, 분, 초 단위로 매 순간 변화한다. 집에서 읽는 책이 매일 다르고, 그 책을 읽으며 떠올리는 생각이 매일 다르다. 길을 걸을 때 어떤 날의 나는 땅 속으로 사라지고 싶을 만큼 우울했고, 또 다른 날의 나는 하늘을 날아갈 듯 즐거웠다. 나를 둘러싼 환경에 초점을 두는 대신, 나 자신에게 집중하면 매일이 새롭다.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과 새로움이 주는 설렘을 동시에 느끼는 삶은 행복하다. 얼굴의 눈보다 마음의 눈을 뜨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집과 길에는 상반된 속성이 있다. 길을 걸어 집에 도착한다. 그리고 다시 집을 나서 길을 걷는다. 매일 반복하는 단조로운 이 행동에 인생이 담겼다. 길은 과정이고 집은 결론이다. 동시에, 길은 도전이고 집은 휴식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살아가며 도전의 과정을 걷고, 결론을 맛보며 휴식을 취한다.


한때의 나는 내가 남들과 다르다고 믿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보다 길을 걷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집의 가치를 낮게 여기고, 길의 가치를 높게 산 탓이다. 잠을 줄이고 이를 악물며, 더욱 많은 성과를 내고 빠르게 성장하는 삶이 멋진 줄 알았다. 어느덧 주위 사람들로부터 쉬면서 일을 하라는 얘기를 듣는 날이 많아졌다. 휴식에 관한 책 선물도 많이 받았다. 사실, 스스로도 몸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이 모든 신호를 무시한 채 한 걸음이라도 더 내딛기 위해 노력했다.


인간은 한없이 강하지만 또 그만큼 나약하다. 특별한 줄 알았던 나는 결국 평범한 인간이었다. 나와는 상관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 갑자기 찾아왔다. 한동안 길에서 내달리기만 했던 내가 번아웃 증후군에 무너져 한참을 집에서만 지냈다. 무기력증과 자기혐오에서 벗어나 집 밖으로 나올 수 있었던 것은 다시 걸음을 뗄 에너지가 차올랐을 때다. 조심스럽게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과정과 결론 그리고 도전과 휴식, 그 어떤 단어도 부족함 없이 아름답다.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모두 훌륭하다. 인간은 그 누구도 길만 걸을 수 없고, 집에서만 쉴 수도 없다. 이 두 가지가 반복되고 적절하게 공존할 때, 비로소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을 느끼는 방법에 대해 오랜 시간 생각했다. 지금까지 내가 내린 결론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매일 조금씩 바뀌는 자신을 인식하며, 익숙한 환경에서 새로움을 찾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는 나에게 중심을 두고, 세상을 흥미롭게 관찰하는 것이다. 집 안에 스며드는 햇살의 밝기도, 길 위의 새들의 모습도 매일 다르다. 이를 깨달으면 오늘이 즐겁고 내일이 기대된다. 두 번째는 자신만의 도전과 휴식의 균형점을 발견하고, 그 중심을 지키는 것이다. 길 위를 걷는 도전의 시간과 집 안에 머무는 휴식의 시간을 모두 온 마음으로 사랑할 때 행복과 가까워진다. 나와 행복의 거리가 멀어지는 순간은 이 중심이 흐트러질 때였다. 나는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길 위에 선명한 발자국을 남기고, 집으로 들어와 아늑함과 편안함을 온몸으로 생생하게 느낀다. 길의 끝에는 집이 있고, 집의 시작에는 길이 있다.



cliffs-5646320.jpg 길의 끝에는 집이 있고, 집의 시작에는 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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