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교단일지1

진단, 그 이전의 나.

by 시골쥐

나는 상당히 명랑하고 활기찬 성격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누가봐도 나는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그렇게 자라왔고, 그렇게 일해왔다.


크나큰 물의겠지만, 나의 발병은 교직에 몸담음과 뗄레야 뗄수 없는 사건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취직이라는 것은 상당히 당황스런 사건임이 틀림없다.

나의 개인적인 페르소나와 사회적인 페르소나가 충돌하는 크나큰 사건이다.

여태 그냥 살면 되었는데, 이제는 그러면 안 되는 멋진 사회인이 된 것이다.

어쩌면 그것을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그 충돌이 너무나도 컸었다.


하루하루 끝없이 밀려드는 일들을 그 때 그 때 처리하는 게 너무나도 숨이 막혔다.

제대로 된 사수도 없었고, 나는 그냥 일터에 던져진 상태에서 업무 인수인계 폴더 하나와 함께 업무를 시작했고 사안이 발생하면 모든 사람이 담당자인 나를 찾았다. 나는 발령난 지 이제 2주 째인데.

따라가기만도 벅찬 행정업무가 나를 덮쳐옴과 동시에 나는 아이들을 마주했어야하는 데, 나는 그것이 너무 힘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아이들이 상당히 귀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소중한 반면, 너무 귀중해서 거기서 따라올 민원이 너무나도 두려웠다.

그래서 심리적 거리를 항상 유지했는데, 거기서 오는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아껴주고 싶어도 아껴주지 못했다.

혹시 편해지면 나도 모르게 실수할까봐, 그래서 힘들게 임용고시를 통과해서 얻어간 내 자리가 위험해질까봐.

'옆 학교 선생님은 ~해서 이번에 민원걸렸다더라'하는 소식이 내 귀에도 들어오다보니, 겁이 많은 초보 선생님은 아이들을 마음껏 품어주지 못했는데 첫 아이들에게는 아직도 그 점이 너무나도 미안하다. 심적으로 많이 못 품어주다보니 보상심리로 아이들을 위해서 프로젝트도 상당히 많이 진행하고 사업도 따오고 했었으나, 그래도 여전히 나는 못해준 게 마음에 남는다.


아이들에게 나는 차가운 선생님이었을까


'명랑'과 '에너지'만으로는 해결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애정은 애정대로 넘치는 데 풀 수 없는 이 상태를 선배 교사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에게 "아이들에게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하라."라는 조언도 해주신 적이 있지만, 나는 아직 아이들이 무언가를 하나하나 해나가는 것들이 너무 아름다운 초보 선생님의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 조언을 공감하고 이해했지만 도무지가 실현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말은 못 붙여줘도 뭘 많이 쥐어줬었는데, 나는 알았어야한다.

내가 심리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면 아이들도 나에게 심리적으로 붙어오지 않는다는걸.

내가 아무리 이것저것 쥐어주고 뭘해주고 사업을 따와서 일을 하고 해도 아이들은 나에게 고마움이나 친밀감을 느끼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당연하다. 학교행사인데, 누가했는지 알게 뭐람.


바퀴벌레가 나오는 자취방에 앉아서 생각을 했다.

나는 어쩌다가 뭘 바라고 이 직업을 하게 되었지? 내가 바라던 선생님이란 무엇이었나.

나는 그냥 작은 봉급을 바라고 사무직으로 살아가면 되는걸까.

나는 뭐지. 그 헛헛한 마음은 이루말 할 수 없었고, 나는 그 모든 것을 배달음식으로 풀기 시작했다.


배달음식을 한 번에 먹지도 못할 만큼 시켜서 꾸역꾸역 쑤셔넣었으며 먹다가먹다가 못하면

옆에다가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열어놓고 씹고 뱉는 행위를 지속했다.

내 작은 월급은 그렇게 배달음식으로 모두 태워버리는 미친 짓을 나는 신규기간동안 지속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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