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울증 교단일지6

조증, 달리는 폭주 기관차.

by 시골쥐

나는 나의 우울이 분노와 게으름임을 이젠 이해한다.

분노라고 하면 보통은 작은 것에 크게 분노하는 것을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나는 그것보다는 - 확실하게는- 나는 반복해서 분노하곤 했다.

작은 사건에 화났다가 가라앉았다가. 다시 그것에 대해 화가 또나는 식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분노를 크게 느끼곤 했다. 작은 분노여도 여러번 오게되면 크게 느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덕분에 나의 친구들은 들었던 이야기를 또들어야하는 고통을 매번 겪었어야했다.


나는 본체 예민하게 태어나서 그렇게 하면 진이 다 빠지고 모든 게 다 소용이 없어서 씻기 조차 싫어지는데,

저녁에 들어와서 잠을 자기 위해서 간신히 잠을 자고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서 간신히 씻고 나가면 집의 상태는 이제 상관도 없어지는 것이다. 다행인건, 출근하기 위해 빨래는 지속했다는 점과 집안의 그 무엇도 만질 힘이 없었어서 집안의 형태가 흐트러지지 않았다는 것일까. 그 누가 우리집에 와도 약간의 먼지 외에는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느끼고 있었다.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계속해서 채워넣는 방식으로 그것을 해소해내고자 했는데-, 그게 이번에는 배움이었다.

옷과 화장품은 이미 많고, 집도 이미 뭐가 많아서 더 들어갈 데가 없으니 이제는 내 머리에 무언가를 집어넣고자 한 것이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잘못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고, 어떻게든 고쳐보고 싶었다.

이걸 배우면, 좀 멋있는 선생님이 되겠지. 이걸 하고 나면 좀 더 괜찮은 사람이 되겠지. 그런 생각들이 나를 끊임없는 공부의 늪으로 몰아넣었다. 나는 마치 수능을 앞 둔 고3마냥 빈틈없는 스케줄을 가지고, 퇴근하면 몇 시부터 몇 시까지는 테니스, 몇 시 부터 몇 시까지는 토익, 몇 시 부터 몇 시까지는 엑셀 등등등...끊임없이 학원비를 지불해가면서 공부를 해갔다.


그러나 역시, 이 학원비들은 내 월급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는 활동들이었고

나는 다시 카드를 긁었다.




누적된 액수가 꽤나 엄청났다. 한 달 한 달이 버거웠다. 카드값을 갚고, 갚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공부를 해나가다가 문득, '약을 먹고 있는데도 이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전까지는 약이 만능은 아닐거야, 하는 생각에 애써 무시해왔었던 사실을 이제는 마주하게 된것이다. 약을 먹었으면 응당 문제 상황이 해결이 되어야하는데 이건 해결되긴 커녕 다른 형태로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던 것이었다.


나는 당장 정신과 선생님을 찾아가서 다시 상담을 요청했고-, 나의 진단명은 양극성장애 '조울증'으로 바뀌었다.



조울증, 양극성 장애.


두 가지의 양극단을 오간다고 해서 양극성 장애라고 부른다고 알고 있다.

조증과 우울증을 오간다고해서 조울증이라고도 부른다고 하고, '조증'상태일 때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왕창 실행하고 힘이 넘치고 우다다다 해내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우울증'일때는 무기력하고 슬프고 어두워지는 것이다. (개인적소감) 나는 그 두 개를 오가고 있던 것이었다.


조울증은 우울증보다 심각한데, 조증일 상태의 기분 좋은 상태에서 우울증으로 갑자기 '훅'떨어질 때가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약으로 기분을 조절해야하는 것이라고.


나는 나의 과소비를 이제야 이해했다. 내가 '조증'상태여서 무엇이든지 해냈어야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나는 앞뒤를 가리지 않고 카드를 긁어가면서 목적을 달성했어야했던 것이다. 진단명을 받고, 약봉투를 바라보면서 나는 '내가 낯설었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나를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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